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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13. 2022

싸가지

싸가지의 유래에 대한 의문점

" 너만 먹냐? 이 싸가지야! "

"  싸가지 없는 자식! "


욕이 참 매섭다.  머리 털이 쭈뼛 선다. '싸'에 들어있는 경멸과 비난은 비수와도 같다.


'싸가지'에 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당연히 국어사전 검색창을 열었다.


'싹수'의 방언이라고도 하고 '''아지'의 합성어라고 한다. 씨앗이 발아하여 솟아나는 '싹'과 어린 아이나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합쳐져 송아지나 망아지처럼 싹아지가 싸가지로 되었다 한다.


나는 건방지게도 이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말에서 자가 되면 좀 더 믿어지고, 백과사전에 오르면 정설이 되고 반론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싸가지에 대하여는 나의 겁 없는 반론을 제기하여 보고자 한다.


가령, '싸가지가 없다'라고 하면 '싹수가 없다, 또는 어린싹이 없다'라고 해석되는데 예의가 없고 버릇이 없는 사람을 비방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표현이다. 오히려 '싹수가 노랗다'라고 하면 맞아떨어진다. 식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비천하여 미래에 기대할 것이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이때 ' 싸가지가 노랗다 '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싸가지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넉 '사'자의 네 가지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네 가지가 없다 ---> 사(4) 가지가 없다 ---> 싸가지가 없다, 이렇게 변형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이 네 가지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론을 이야기한다.  사단 칠정 중에 형이상학적이고 높은 단계의 도덕적 인간 본성을 사단이라고 한다. 이는 맹자 철학에서 그 뿌리를 찾아갈 수 있다.


맹자는 인간 내면의 본성은 배우지 않아도 선한 인성을 본래 타고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동물과 다른 인간 고유의 심성에 주의를 기울여 원초적으로 선한 본성을 지닌 인간의 도덕적 능력을 신뢰하였다. 여기에 네 가지의 선한 본성이 인•의•예•지, 즉, 사단이다.


이러한 공•맹 사상이 5 백 년, 조선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통해 정신의 유전자로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 네 가지의 인간 본성이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별시키는 소중한 덕목이기에 그토록 중요시하였다. 이 네 가지, 사가지, 싸가지가 없으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금수와도 같았기에 쌍시옷을 써가며 경멸하였다.


" 싸가지 없는 종자 같으니..."


맹자의 공손추 편에 나오는 사단설을 좀 더 읽고 넘어가야겠다.


무 측은지심은 비인야이고

 수오지심도 비인야이며

 사양지심도 비인야이며

 시비지심도 비인야이니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양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이 또한 사람이 아니니라


측은지심은 인지단야이고

수오지심은 의지단야이며

사양지심은 예지단야이고

시비지심은 지지단야이니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며
양보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니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발현이다.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발단이며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것을 확충한다면 능히 천하를 보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의 부모마저도 제대로 모실 수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없는 인간을 싸가지가 없다 하고 욕을 하였던 것이다.


나에게도 부끄러웠던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부끄러워서 오줌을 누지 못한 아픈 기억이다.


때는 2008년 경이다. 나이 오십을 향하여 기울어 갈 때 밤에 소피를 보러 자주 가고 오줌 줄이 가늘어져 힘이 없었다. 아마 전립선이 비대해져 요도를 조여 가고 있었나 보다.


추석 귀향길에 운전하기가 싫어, 실로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를 선택하였다. 홀가분한 마음과 해방감에 젖어 아내와 같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막걸리와 도토리 묵을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가올 비극을 모른 체 희희낙락하였다.


안성 근처를 지날 때 신호가 오기 시작하였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수록 더욱 급해졌고 천안 즈음을 지날 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옆에 앉은 아내마저 성가신 얼굴인데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약 40명의 승객에게 어떻게 양해를 구한단 말인가! 그리고 버스 운전사는 어떡하냐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운전사에게 달려 나갔다.


" 저... 막걸리를 마셨어요! 급해요! 차 좀 세워 주세요! "

" 아!... 차 타기 전에 막걸리를 마시면 어떡해요! "


근엄하고 귀찮은 표정의 아저씨는 경부 고속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버스 문을 열어 주었다. 웅성거리는 승객을 뒤로하고 고속도로 옆 언덕을 향해 튕겨 나갔다. 버스에서 조금 떨어진 풀밭에 자리를 하고 바지를 열고 지퍼를 내렸다.


그런데, 오줌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아랫배는 팽창으로 아우성치는데 괄약근이 도무지 자물쇠를 풀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40인의  눈에서 발사되는 안광이 내 초조한 뒤통수에 꽂혀있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나의 파이프를 더욱 움츠리게 하였다. 몇 번 더 시도해보다가 도저히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였다.


" 좀 눴어요? " 운전사가 물어보았다.

" 아니요! "


나와 운전사의 얼굴색이 하얗게 창백해졌다. 아내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비감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버스 기사님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예정도 없는 천안 휴게소에 정차를 하여 겨우겨우 소변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를 타기 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워내었다. 10분간의 정차 후 다시 버스에 올랐을 때 무심한 승객들은 아무도 타박하지 않았고 덕분에 두 번이나 쉬어간다고 안도하는 듯하였다. 본 휴게소인 금강 휴게소에서 정차하여 다시 일을 보고 무사히 마산까지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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