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형목수 Aug 16. 2022

자장면을 비비면서

영혼의 음식, 자장면을 사랑한 두 남자의 '공화춘' 탐방기.


나는 장면을 사랑한다.


13세 무렵, 이름 모를 읍내 중국집에서 처음으로 맛보았던 그  짜릿하고도 황홀한  맛에 매료되어, 아직까지도 게는  영혼의 음식이다.


자장면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은 이렇다.


1975년, 온 나라가 새마을 운동으로 분주했던 시절, 시골 초등학교에서  떠난 보이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 중,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을 지나 허기에 눈알이 벌게진 아이들을 데리고 인솔교사가 인도한, 경남 창녕군의 한 중국 식당에서, 나와 장면의 첫 조우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먹는지 몰라, 동료의 조언을 받아가며 비벼 먹어본 그 첫맛의 기억은, 가을빛에 비친 단풍나무 이파리처럼 세밀하게 남아 있다.


지고 쫄깃한 면발은 촉촉한 윤기로 빛나고 있었고, 깊고 검은 빛깔의 짜장은 고소한 단맛으로, 한 올 한 올 면과 어우러져 있었다. 입안의 맛세포들이 다 일어나 환호를 지르듯, 그야말로 처음으로 맛보는 새로운 세계였다.


자장 위에 놓여 있몇 가닥, 오이채의 선명한 색깔과 신선한 향기는 지금도 나의 식욕을 자극한다. 그 이후에 먹어 보는 장면 맛의 평가는 항상 그때의 맛을 100점으로 한  뒤 점수를 주었다.


나에게 장면 같은 친구가 한 사람 있다.


친구라 하기에 짬뽕과 장면처럼 서로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이지만 20년 넘게 서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면서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우선 나이 차이가 나보다 13살이나 많고,  40년간 영어 선생님이란 문과를 걸어왔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교회에 봉사하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장로의 직책을 맡아, 신앙생활이 인생의 중심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 나는 자연과학을 배우고 진화론을 확신하는 무신론자로  서로의 대화가 엇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닮은 점이 있다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고 장면을 좋아하는 정도이다.


장면과 짬뽕의 색깔만큼이나 다른 우리는 완충역할을 하는 두 아내가 있어 구불거리며 세월을 흘러왔다. 자장면과 짬퐁이 하나의 공간에 있듯이 그렇게 두 사람을 공존하게 해 주었다.


그 두 사람이 자장면의 시발점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인천의  '공화춘'을 찾았다. 우리나라 장면의 역사가 인천, 과거 제물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 신기하게도 장면은, 그 시작과 번영이 비교적 명확하게 규명되어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다.


자장면은 1908년경, 인천의 선린동에서 시작되었다. 산둥반도에서 건너온 화교중, '우희광'이란 분이 신해혁명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이란 뜻으로 '공화춘'이란 중국 식당을 개업하였다.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과 더불어,  중국에서 유래된  북경식 작장면 (炸醬麵) 이  느끼한 맛을  싫어하는 조선인과 일본인들을 위해 변형되어 달콤하고 고소한 자장면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자장면은  어린이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대표적인 서민음식이 되어 전국에 퍼져  나갔으리라. 그리하여 자장면은 탄생 , 근 70년 만에 멀리 경남 창녕 땅에까지 내려와 나와 조우하였던 것이다.


인천의 차이나 타운은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행인들이 삼삼오오로 북성동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다들 배가 고파 허기를 채울 음식점을 찾기보다는 외국 관광객이나 호기심 가득한 젊은 연애족들이 더 많아 보였다. 이제 장면은 배고픈 서민의 한 끼를 넘어 추억을 부르는 관광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같다.


거리는 정결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음식점들은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으로 온통 황금색과 붉은 페인트로 마치 북경의 거리를 가져온 듯했다.


음식점들은 크고 화려했다. 모두 자기들만이 100년이 넘은 인천 자장면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이, 건물을 3층  또는 4층으로 올리고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음식보다도 차이나 타운 거리만 해도 충분한 관광거리가 된 듯하다.


낮은 어투로 호객을  하는 오십 대 남자들을 따라 ' 공화춘 '으로 들어갔다. 4층이나 되는 건물은 동시에 많은 식객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 종업원들도 적당히 친절하게 대응하며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오래된 대형음식점의 포스가 느껴졌다.


시킨 음식은 장면, 유니 짜장, 그리고 탕수육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실로 그 맛은 평범했다. 맛이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실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첨면장(춘장)에서 오는 깊은 고소함이 조금 더 진할 뿐 기계면의 균일한 굵기만큼 맛은 평범했다. 다만 유니 짜장에서 풍겨 나오는 불맛은 음식의 맛을  더욱 풍미롭게  하였다.


그러나 이 실망도  미리 예측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3대 욕망 중, 식욕의 만족은 애당초 어려운 것이다. 조금 더 조금 더 맛있는 곳으로 향하다 보면 그 끝은 없는 법이다.


다만 그 어릴 적  이름도 모른 체 먹어본 그 장면의 근원을 한번 찾아보고 싶을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싸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