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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10. 2022

서울 구경

시골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서울을 구경한 이야기.

[ 135억 년 전에 탄생한 GLASS-z13 은하/NASA ]


최근, 제임스 웹 망원경이 또 인류의 관측 기록을 경신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09년경, 망원경을 발명한 이래로 인류는 가장 먼 곳에 있는 사물을 발견하고 기록을 남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는 무려 135억 년 전 탄생한 은하로 약 350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무리를 찾아내어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란 것을 감안할 때 빅뱅 우주 탄생 이후 약 3억년 후에 태어난 은하가 위치해 있는 거리이다.


1광년의 거리는 얼마인가?


초속 약 30만 km를 간다는 빛이 1년 동안 쉼 없이 달려 도착하는 아득한 길이다. 굳이 숫자로서 그 길이를 나타내고자 한다면 약 9조 4천6백억 km라고 한다. 그것조차도 350억 년 동안 광선을 타고 날아가야 하는 길이니 우주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모르고 하루를 살아가는 벌레는 한 달의 세월을 모른다.


동양의 현자들 중에 약 2천3백 년 전 중국에서 활동하였던 장자는 그의 통찰을 통하여 무한한 우주의 크기와 현상계의 유한성에 대하여 깊이 깨우쳤고 그 생각의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상을 기록한 저서, '장자'의 추수 편에 보면 황하를 주름잡던 하백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백은 가을장마로 황하의 물이 불어 건너편 동물이 소인지 말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강줄기의  주인으로 기고만장하였다.

우쭐해진 마음으로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북해에 다 달으니 끝도 없이 펼쳐진 물이 반대편조차 보아지 않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북해를 다스리고 있는 신인 ''을 만나 가르침을 받게 된다.


" 천지를 크다하고 털끝을 작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

그러나 북해 약은 말한다.

" 사물이란, 수량은 무궁하고 시간은 그침이 없으며 분수는 상도가 없고 끝과 시작은 뿌리가 없다. 이런 까닭으로 만물의 무궁함을 알고 시간의 끝없음을 알고 분수의 무상함을 알고 끝과 시작은 뿌리가 없음을 아는 것이 큰 지혜이다. "


망원경도 없었고 우주선도 없었던 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장주라는 현인은 어찌하여 이 넓고 깊은 통찰을 하였는가!


서설이 너무 길었다. 여기까지 나의 알량한 인문학적 사색의 조각을 넓은 아량으로 읽어준 분들에게 엎드려 감사를 보낸다.


사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나와 세상이 넓은 줄 알았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서두를 꺼내 보았던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여행은 1975년,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으로서의 서울 구경이었다. 태어난 고향에서 50리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내가 경남 창녕에서 서울까지 약 1000리 길을 여행한 것이다. 그야말로 하백이 북해 약을 만나러 황하에서 대양으로 나온 꼴이었다. 


진취적이었던 한 선생님의 야심작으로, 시골 아이들에게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봄부터 염소를 먹이고 국회의원, 통일 주최 대의원을 찾아다니며 여행비를 마련하였다. 그해 가을에 6학년 학생 120명 중, 지원한 약 50명의 학생과 인솔교사는 우물 안을 벗어나 세상으로의 모험을 강행하였다.


4박 5일의 일정으로 경남 밀양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서울역 앞 여인숙 촌에 숙소를 잡았다. '칙칙폭폭' 소리가 나는 줄로 알았던 기차의 소리는' 덜커덩 덜커덩'하는 소리가 났고 차창으로 지나가는 바깥 풍경은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가을 황금색 들녘이 스스로 알아서 빙그르르 돌면서 뒤로 도망갔다.


서울역을 매운 사람들은 다른 행성에서 이사 온 우주인처럼 보였고, 그 속에서 도시의 향기로 경유 기름 냄새가 나는 듯 하였다.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눈이 빛을 내었던 것은 시골 학생뿐만 아니라 인솔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산 케이블 카를 타보고, 어린이 회관 앞에서 단체 촬영을 하였다. 창경원을 구경하고 경복궁을 돌아보았다. 무엇보다도 여행의 백미는 그해 최초로 개통한 1호선 지하철을 타보는 것이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다 타보기 전인 우리나라 지하철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세계에 내어 놓아도 조금도 부끄럼이 없는 서울의 서브 웨이 시스템을 최초, 저 멀리 경상도 시골 어린이들이 먼저 타 보았던 것이다.


'쉬~~ 익' 하고 열차의 문이 열리면 밑으로 빠질세라, 문에 끼일세라 두려움에 떨었던 그 지하철 출입구가 가장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2만 5천 리 길을 날아서 인천 공항과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그때의 서울 여행만큼 불안하지도 생경하지도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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