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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02. 2022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 소원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 말기 암환자의 이야기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로가 스승에게 물었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이에 공자가 대답하기를,

"아직 삶도 다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2,500년 전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고, 매우 궁금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이 있다거나 죽음과 삶이 윤회한다는 믿음은 확신 없는 종교적 신념일 뿐, 아무도 죽음의 너머에 있는 세계를 객관적이나 과학적으로 검정해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무지의 세계로 인해 항상 죽음은 두렵고 삶의 집착에는 끝이 없다.

 의료계에 있으면 많은 죽음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있다. 그러나 병에 걸려 시한부의 삶이 정해지고 서서히 죽음의 시간이 다가올 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을 가리고 있는 그림자만 옮겨 달라고 했던 그리스의 자연주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죽음 앞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항시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탄생이 성장을 거쳐 소멸해 가듯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우주만물의 질서에 우리의 삶이 존재한다고 보면, 죽음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순환의 한 과정인 것이다.




 위암 말기를 진단받고 죽음을 앞둔 한 늙은 환자를 돌보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89세의 정정한 노인으로 평소 요통과 관절통으로 나를 찾았던 분이었다. 다른 분에게 비해 학식도 높고 인격이 깊어 내심 존경하였고, 겸손하기까지 하여 깍듯하게 모셨다. 어르신으로 대접을 받고 서로 대화가 통하니 나를 진정으로 따라 주었고 서로 신뢰가 쌓였다.

어느 날, 변이 새카맣게 나오고 보라색 핏빛까지 비친다며 내과의사도 아닌 나에게 문의를 하였다. 9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위장 출혈로 인하여 흑색변이 나오면 십중팔구는 위암 출혈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웬만한 증상은 괜찮다고 안심시켰으나 이번 증상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색도 유난히 희게 보여 빈혈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효자 아들인 50대의 보호자에게 좀 큰 병이 의심되니 진료의뢰서를 써서 3차 병원인 대학병원으로 모셔가서 진단받으라고 하였다.

그 후, 한 달가량 지나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진단 결과는 예상데로 위암 말기로서 이미 다른 장기로 퍼지고 1년 이상 생존이 힘들겠다는 판정이었다. 수술로 암 부위는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근본 치료가 아니므로 환자나 보호자가 결정해야 될 문제였다. 이런 경우 대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집착으로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겠다 하고 퇴원하였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그분은 거의 매일 물리치료를 하고 나를 찾았다. 인간인 이상 죽음을 앞두고 불안하지 않은 이가 없겠지만 이 노인은 자신의 죽음 앞에 초연하였다. 손을 잡으며 '정말로 괜찮으시냐'고도 물어보았다. 그런데도 빙긋이 웃으시며 '후회 없이 살았다'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다.

흔히들 불치의 병이 사람에게 진단되면 부정, 분노, 수긍과 달관의 4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보통 2,3 단계에서 머물다가 인생을 정리하지 못한 채 삶을 마치고 마는 것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달관에 이르러 도에 경지에 달해 삶을 조용히 관조하고 있는 것 같이도 보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인가? 억 겹의 윤회를 거쳐 고•집•멸•도를 넘어선 억만창생의 해탈을 이루어 내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착한 양으로 살다가 천국의 부름을 받고 영생의 복된 구원을 약속받은 것일까?

 할아버지는 눈이 쑥쑥 들어갈 정도로 점점 야위어 갔고 조용한 미소는 점점 깊어져 갔다. 미소 속에 가끔씩 보이는 쓸쓸함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이나 분노, 두려움, 후회 따위의 부정적 감정은 끝까지 찾을 수 없었다. 점점 병원 방문 횟수가 뜸해지다가 어느 날 아들이 나를 찾았다.

 오늘 새벽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고 하였다. 예상된 죽음이긴 하지만 그분이 병원에 남긴 오랜 체취로 인하여 비감하였다. 그런데 그 보호자는 청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자기 집으로 방문하여 사망선고를 해주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주길 원하였다. 왜냐하면 생전에 가장 신뢰하고 의지했던 의사였고 자기의 마지막을 내가 해주었으면 바라 왔던 것이 그분의 유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난감하였다. 나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환자의 사망이나 사망진단서와는 먼 전문과이기 때문에 거의 사망진단서를 떼어본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는 나를 붙잡고 그 효자 아들은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할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사무장과 같이 청진기를 들고 환자의 집에 방문하기로 하였다. 오전 진료를 잠시 중단하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환자는 작은 방에 고요히 안치되어 있었다. 사후 경직은 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미 시신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흰 얼굴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고 미동도 없는 그에게서 잠을 자고 있는지 돌아올 수 없는 영면의 세계로 떠났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과연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는지, 영혼이 분리되어 따로 떠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무의 세계, 그 자체일 뿐 다른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심박동과 동공 반응, 그리고 항문검사를 하여 죽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고 사망을 공식적으로 선고하였다.
그리고 '곡'을 하였다.

"어이! 어이! 어이!..."

 당황해하는 보호자와 사무장을 무시하고 고인을 보내는 우리 유교의 법도데로 슬픔을 표시하고 고인과 유족을 위로하였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곡'을 하다 보니 삶의 허무나 회한 등이 솟아 올라 진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더 좋은 곳에서 평화롭게 잘 지내세요"

라고 마무리 짓고 흰 천으로 얼굴을 덮어 준 후, 병원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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