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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Aug 06. 2022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전신마취의 위험성.

 의사가 진료차트에 휘갈겨 쓴 글씨 때문에 매년 전 세계에서 7000명이 죽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좀 모호한 통계이긴 하지만 종이 진료 차트에 기록하던 시절,  의사의 무성의로 소중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병원에서의 죽음은 은폐되고 쉽고 그 죽음의 원인과 책임이 왜곡될 수 있다.


1993년, 정형외과 레지던트 2년차로 지방 종합병원에 파견근무로 나가 있을 때였다. 금요일 저녁 무렵 응급실에 콜을 받고 내려갔다. 환자는 35세의 건장한 남자 환자로 교통사고에 의하여 요추 1번 압박골절로 진단되었다.


 특별한 신경마비의 증세가 없고 압박 정도가 50%정도인 상태로 응급수술 케이스가 될지 애매하여 상세한 내용을 담당 과장에게 보고하였다. 담당과장은 서둘러 수술 준비를 하라고 오더를 내렸다. 여기서 수술 케이스가 되는지 여부에 대해 나의 의견을 주장하기에는 2년차라는 신분이 낮았고, 군대식 정형외과 분위기의 경직성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정형외과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되는 분위기였다.


주치의로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의 필요성, 위험성, 후유증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응급수술 준비를 시켜 수술실로 향하였다. 금요일 밤의 찝찝한 수술이 방금 도착한 집도의와 레지던트, 인턴, 수술 간호사, 그리고 마취과 전문의가 모여 완벽히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수술은 갑자기 중지되고 불행하게도 그 젊고 건강한 환자의 목숨이 마취과 의사에 의해 위험하게 되고 만 것이었다.


여기서 전신마취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전신마취를 한 상태로 수술을 하지만 사실 매우 위험을 동반하는 의료행위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수액관을 통하여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펜토탈 소디움이라는 약을 투여한다. 흔히들 "10에서 거꾸로 세어 보세요" 하면 5,6까지도 가지 못하고 기분 좋게 잠에 든다. 그다음에 강력한 근육 이완제를 투여한다. 이는 기관에 튜브를 삽관할 때 기관지 수축과 환자의 움직임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고 라링고 스코프라는 성대 내시경으로 턱과 혀를 들고 기관지를 확인하고 신속하게 마취 튜브를 삽입하여야 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튜브가 정확하게 삽입된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제야 느긋하게 산소와 마취가스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입에서 튜브를 고정하고 수술 자세를 잡아 수술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부터 마취과 의사는 수술이 끝나기까지 지루하게 혈압과, 산소 포화도, 심전도 등을 감시하며 자동 또는 수동으로 마취가스를 주입한다.


이 날, 사달이 난 것은 근육 이완제를 넣고 난 후 튜브를 삽입할 때였다. 워낙 근육질의 건장한 남성이라 근육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목이 짧아 기관지 입구를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환자는 마취과 의사가 조심하고 긴장하여야 하는 체형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마취과 의사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모두 수술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료진의 눈길은 마취과로 향하였고 넓은 수술실은 순간, 긴장으로 공기가 팽팽해졌다.


"아! 피가 흐르네" 마취과 의사가 외쳤다.


무리하게 튜브를 진입시키다 연약한 점막의 혈관을 터뜨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흐르는 피로 인해 더욱 기관지 입구는 보이지 않고 급기야 '코튜베이션'이라고 하는 코를 통하여 튜브를 넣어도 불가능하였다. 이 모든 것이 3분 이내에 기도확보를 하여야 하는데 벌써 5분이 넘어가고 있고 환자는 청색증이 오기 시작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환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벌써 수술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각 개인에게 돌아오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 가늠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주치의로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18 게이지라는 굵은 주사 바늘로 설골 밑에 기관지를 뚫어 입김으로 세게 불었다. 아무리 세게 불어도 그 조그만 바늘로 들어가는 공기는 한계가 있어 저항이 심하였다. 그나마 그 조금의 공기에 반응하여 환자의 혈색이 홍색으로 돌아왔다. 죽지 않으려고 하는 목숨의 본능이 얼마나 강한지 그 순간 절감할 수 있었다.


떨어져 보고 있던 정형외과 과장이 소리쳤다.


"물러 서!"


집도의로최고 상사가 나를 제지한 것이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냉기와 냉소가 돌았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


어이가 없었다. 평소, 마취과 과장과 정형외과 과장과의 악감정이 이 순간 절체절명의 시간 속에서 폭발한 것이다. 둘 사이에 어떤 감정의 굴곡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전통적으로 수술방을 둘러싸고 외과 파트와 마취과는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순간에 터진 갑작스러운 표변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윗사람의 오더이니 나는 군말 않고 물러섰다. 정형외과 과장은 그때부터 팔짱을 끼고 죽어가는 환자에게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므로 그 책임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로움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허둥대는 마취과장에게 냉소를 보내며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될 정도였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악마적 인간의 악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더 악해질 수 있는가?


15분이 지나고 환자가 뇌사에 빠질 즈음, 지원군이 도착하였다. 마침 당직실에 있던 일반외과 과장이 헐레벌떡 수술실로 뛰어 왔다. 기관지 절개술을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30분이 넘어서야 목으로 직접 뚫은 기관지 절개술로 튜브를 삽입하고 겨우 심장이나마 살려 내었다. 살아난다 해도 깊은 뇌사상태로 식물인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중환자실에서 생명의 끈을 붙잡고 씨름하다가 운명하고 말 것을 이미 예상되었다.


그야말로 난감하였다. 주치의로서 말이다.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창구는 오로지 나뿐이었고 수술로 이끈 의사도 보호자가 보기엔 나뿐이었다. 비열하게도 정형외과 과장은 최종 수술 책임은 오더를 내린 본인에게 있음에도, 모든 보호자와의 접촉은 정형외과 전문의 과정도 마치지 않은 2년차 레지던트인 나에게 미루고 자기는 빠지겠다고 하였다.


어떻게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여야 하는지 정말 난감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형외과 수술 절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의료사고이므로 정형외과의 책임은 회피할 수가 있었다. 하나의 죽음 앞에서 나 또한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발동하고 있었다.


"마취가 안 되었습니다"


궁색한 변명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취를 못하였습니다'가 아니라 마취가 안되었다는 말이다. 즉, 환자의 체형이나 체질에 따라 마취가 안되었다는 것은 책임이 의료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있다는 논리이다. 참으로 가소롭고 비열하였다. 부끄러웠다. 환자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와 의료진을 믿고 수술을 맡긴 보호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당장 멱살을 잡고 '아들을 살려 내라'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보호자가 고마웠다.


그 후, 환자는 2개월 정도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다투다가 절명하였다. 의료사고의 법정 소송에 나갈 수도 있는 과정에서 병원과 보호자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마무리되었다.


어느 날 밤, 그날도 응급수술 때문에 수술실에 있었는데 밖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은 환자의 동생이 수술실 문을 발로 부서져라 세게 찬 것이었다. 그리고 욕을 하며 '형을 살려내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다 사라졌다. 아무도 그 동생을 말리지 못했고 수술실 문에 난 신발 자국으로 동생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한풀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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