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등
정형외과 레지던트 시절, 전국에서 1등 한 이야기
전국에서 1등!
대단하지 않은가? 전교에서 1등만 해도 대단한데 전국에서 1등이라니!
따져보면 크게 놀랄 일이 아닌데 내 인생에서 최초로, 아니 믿을 수 없게도 전국에서 1등을 한 일이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이기에 잊지 않고 기억한다.
1년간의 인턴 생활을 마쳐가는 즈음에 앞으로 평생 먹고살아야 할 전공과를 선택하는 과업이 남았다. 먼저 나를 진열대에 올려놓고 가감 없이 자신을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외과 과목에 어울리는지, 아니면 내과 과목에 어울리는지 우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중요한 결정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추고자 하면 왜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법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외과 쪽인가, 내과 쪽인가?
결국 친구나 주위 지인들의 판단을 참고하기로 하였다. 굳이 비겁하거나 처참하지는 않다. 어차피 인생은 바닷가의 회오리처럼 방향 없이 돌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거의 일치된 의견으로 외과 쪽이라 하고 나 또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수술을 해야 하고 피를 마주해야 하는 외과 전문의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갔다.
피를 마주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피를 뒤집어썼다고 할 정도로 수술복 가슴이 피에 흠뻑 젖어 피비린내에 후각이 마비가 되어야 하고 수술이 잘 안 되어 출혈로 생명이 경각에 이른 환자의 척추 수술을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담대함 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전문의가 된 후에 체감하였다. 그만한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전문과를 지원한다고 하여도 "어서 오시오"하고 반기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인턴 성적을 맞춰 넣어야 하고 미리 한 달간의 인턴 생활 중 선배 레지던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교수님들께 어떤 인턴이 다음 신입 레지던트가 되는지 열과 성의를 다해 인신공양을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공정의 가면을 쓴 시험을 응시하여 합격하여야 한다.
나는 정형외과에 응시하여 보기 좋게 낙방하였다. 무수한 시험을 거쳐온 나는 최초로 실패라는 결과에 봉착했다. 실로 그것은 아프고 처참했다.
점점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전국 1등 한 이야기는 어디에 갔나? 잡설이 많아지고 이야기기가 지리멸렬해져 초조하다.
여하튼 전문의 시험에 실패한 나는 군대를 갔고 운 좋게 공중 보건의로 3년을 보내고 다시 정형외과에 응시하였다. 여기서 '킴스'와 '난 킴스'라는 말이 있는데 영원한 이인자로 한 인생을 살다 간 김종필 씨의 성인 '김'을 따온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남아라면 예외가 있을 수 없는 병역 의무인 군의관의 발탁에 정치인의 복안이 들어간 것이다. 군대를 가지 않은 상태의 미필을 '킴스'라 하고 군필을 마무리한 상태를 '난 킴스'라고 하였다. 2명을 뽑는 '킴스'에는 낙방하고 5명을 뽑는 '난 킴스'에 다시 도전하였다.
1차 시험의 실패를 반성하며 나름 열심히 준비하였다. 정형외과 교과서의 개정판 이전의 지식도 비교하고 신판 교과서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여 시험에 대비하였다.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정형외과 의국에 합격하여 입국식을 치르고 레지던트 1년 차가 되었다.
겨우 이야기의 중심점으로 돌아왔다.
정형외과 4년 레지던트 기간 동안 매년 '인트린식'이라는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는 정형외과 전공의의 실력을 향상시키면서 수술 테크닉뿐만 아니라 지식의 양을 측정하고 연마하기 위한 학회의 노력이다.
이 시험에서 전국 정형외과 1년 차 중에서 1등을 한 것이었다. 입국 시험을 철저히 준비한 이유로 지식이 머리에 많이 남아 있었고 과도한 업무에 지친 정형외과 1년 차들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험이라 우연히도 내가 1등을 한 것 같다.
그래도 학교의 명예를 올리고 교수님들로부터 칭송을 들으니 긍지도 생기고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쓰고 보니 참 재미도 없고 글도 지루하다. 그래도 또 잡설을 달아 욕을 먹고자 한다. 아직도 읽고 있는 고마운 분이 있다면.
왜 정형외과를 선택하였느냐?
너무 세분화된 현대의 전문과는 의사가 가진 고유의 능력에 제한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의사라면 감기 환자 치료부터 신생아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상처를 꿔 매 거나 부러진 뼈도 척척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의사라고 생각하였다. 만약 전쟁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닥쳤을 때 무슨 과 전문의가 가장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았다. 단연코 정형외과였다.
그리고 생명을 다투는 일이 적어 스트레스가 덜하고 돈도 좀 벌 것 같았기 때문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