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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09. 2022

교회

크리스마스 휴일에 교회를 가본 추억


인류사에서 위인이 남긴 명언들은 대개 시대를 넘어온 공감이 있고 의미있는 여운을 남기는데 유독 이 명언만큼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알다시피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인류에게 충격을 준 말이다. 19세기에 뿌린 그 말의 여파가 정신적 충격을 넘어 인류의 20세기 전체를 혼란과 공포의 세계로 몰아넣은 말이기도 하다.


몇 안 되는 단어 속에도 많은 사람들을 대비시키고 증오와 대결의 편싸움을 가능케 하는 혐오가 들어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고 난 뒤 대략 300년쯤 후에 나는 처음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빵을 얻어먹었다.


1974년 겨울,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 중학교로 진학하기 위하여 겨울 보충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에 시골 교회가 하나 있었다. 일요일이 아닌 휴일이라 수업이 있는 줄 알고 10리 길을 걸어 등교하였으나 그날은 갑자기 쉬는 날로 바뀌어 버렸다.


오전 일과를 잃어버리고 갈 길을 헤매는 아이들 중 하나가 제안을 하였다.


"오늘 크리스마스 날이잖아! 교회에 가면 공짜로 빵을 나누어 준다더라."


오로지 '빵'이라는 말에만 현혹되어 기도라든지 성경이라든지 찬송가 같은 것은 세상에 있는지도 모르고 동네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12명의 동네 아이들이 생후 처음으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성탄절에 제 발로 찾아온 12명의 길 잃은 어린양들을 맞이하는 시선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줄을 서서 나누어 주는 빵만 받아 들고 나오는 줄 알았는데 교회 관계자 분이 친절하게도 신자들이 앉는 긴 나무의자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천장이 높고 알 수 없는 한기가 도는 공간을 빵도 먹어보기 전에 나가고 싶었으나 이미 늦은 것 같았고 우리에게 향한 무수한 크리스마스의 시선이 출입구를 막아 버렸다.


목사님의 설교에 교회라고는 생전 처음 온 우리 12명의 배고픈 아이들에 대한 격려도 있었고 다 같이 부르는 찬송가를 립 싱크로나마 따라 하면서 빵만 주기를 고대하였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찬양은 1시간 이상 길어지면서 마음이 초조해져 갔다. 지루한 기도의 마지막쯤에 가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 일어났다.


매미 채 같았다.


긴 장대로 매미 채 같은 헌금함 주머니가 뒷줄에서부터 신자들을 향해 천천히 한 사람 , 한 사람 앞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헌금 주머니이고 어떻게 할 줄 몰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니 동전이며 지폐며 주머니에서 꺼내 헌금을 하는 것이었다.


헌금을 하든 안 하든 매미 채 주머니는 신자들의 앞에서 짧으면서도 길게 머물다가 이동하였다.


드디어 내 앞으로 헌금 주머니가 왔다. 나는 재빨리 눈을 피하였으나 장대를 든 교회 분의 눈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호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는 12명의 시골 아이들 중에 아무도 헌금을 못하였고 무사히 매미 채는 지나갔으며 모두 얼굴이 벌게졌다. 빵 전에 이러한 절차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신자들에게는 일상이었겠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 예수님의 그림자조차도 접해보지 못한 태생적 무신론자들에게 교회의 첫 경험은 충격이며 신세계였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상기된 시골 아이들은 각자 빵 두 개를 받아 들고 교회를 나왔다. 약간의 후회도 있었지만 묘한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빵은 맛나게 먹었다.


그 후로 5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의 간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교회 장로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교회 의료 봉사로 목사님을 따라 멕시코까지 다녀오기도 하며 교회 권사님이 나의 딸을 10년이나 키워 주시기도 하였다. 그러한 과정 속에 수하게 많은 손길이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였건만 아직도 신을 믿지 않는 괘씸한 무신론자로 살고 있다.


믿음 없이 교회 다닌다는 것은 자기부정이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라는 좀 비현실적인 논리로 포장하여 신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다. 또는 생물학을 필두로 과학 과목을 좋아하다 결국 의학을 전공하여, 증명되어야지만 믿는 과학이라는 학습 속에 세뇌처럼 매몰되어 과학이라는 종교를 맹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칼 마르크스가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말한 원문을 참조하도록 해보자.


"종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탄식이며, 잔악한 세상의 정서이고,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며, 결국 민중의 아편이다"


이 글에서 앞 문장과 끝 문장만 따 온 것이다. 글을 자세히 보면 자본가들로부터 핍박받는 민중의 괴로움을 대변하고 있다. 이는 현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힘없는 민중을 사랑하고  평등을 외치는 것은 1800년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외쳤던 말씀과도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사랑의 종교와 대척점에 서 있는 유물론적인 사고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며 두 이념의 대결이 모두 그 출발에서 핍박받는 민중에 대한 같은 사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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