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백주 대낮에 순간의 악마 모습을 본 이야기.
악마를 보았다. 악마 같은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진짜 악마의 형체를 보았다.
흰색이었다. 무너지는 군중의 머리 위로 양손을 크게 벌려 움켜쥐듯이 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덮쳐오는 악마를 피해 군중의 무리는 비명과 함께 휩쓸려 무너지고 쓰러졌다.
1977년, 초 여름, 월요일 아침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나는 중학교 전교 대대장으로 1,500명의 학생 앞에 서서 구령을 하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하였다.
"전체 차려~엇!"
"교장 선생님에 대하여 겨~응~랫!"
전쟁이 끝난 지 25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라의 혼은 전쟁의 상흔에 놀라 아직도 전쟁 대비를 하고 있었다. 1,500명의 중학생을 대대 병력이라 가정하고 대대장을 뽑아 교복을 입혀 군대 열병과 사열을 흉내 내었다. 고등학생은 교련 과목을 통하여 전시가 도래하면 언제든지 보충병으로 차출되도록 훈련시켰다. 실로 엄한 시기였다.
월요 조회의 교장 선생님 훈시는 지루하였다. 늦 봄, 초 여름의 햇살은 넓은 운동장에 도열한 학생들의 검은 머리 위로 서서히 내려앉아 각자의 체온을 덥히고 있었다.
그때,
'우~우~우우!' 하는 저주파가 나의 등 뒤로 밀려왔다.
순간, 뒤를 돌아보니 오른쪽 2학년 줄에서 도열이 무너지며 나를 향하여 덮쳐왔다. 그 장면은 스포츠 영화의 슬로 모션처럼 사람들이 서서히 구겨지고 쓰러지고 달아났다. 그 위에 악마가 두 팔을 벌리고 군중을 움켜쥐며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리며 하얗게 웃고 있었다.
같이 도망을 쳤다. 도망을 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흩어지는 군중을 막았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의 머리 위에 엉겨 붙었던 그 악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내가 본 악마의 형체는 2초나 3초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사건의 시말은 이러하였다.
한 여학생이 발작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뇌전증(Epilepsy)을 가진 소녀가 몸도 좋지 않은 상태로 아침 조회에 끌려 나와 초여름의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대발작(Grandmal seizure)을 일으킨 것이다. 거품을 물고 흰자위의 눈을 치켜뜨면서 쓰러져 간질로 몸이 비틀려 떠는 모습은 솔직히 참혹하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주위 어린 소녀들은 공포의 도가니였고 그녀를 피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옆줄의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구 뛰었다.
선생님들이 뛰어들어 소녀를 안고 양호실로 달려가고 놀란 학생들을 다독거려 그날은 예정보다 빨리 조회가 끝났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간질의 현장을 만나기는 드물지만 그래도 1000명당 6,7명의 정도로 뇌전증 환자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꾸준한 항전간증 약을 복용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는 문제없다. 간질 발작 중에 숨이 막히지 않도록 기도만 확보해주고 이가 상하지 않도록 무언가 물려주고 10분 정도 기다리면 다시 의식이 돌아오고 환자는 숙면을 취한 것처럼 개운하게 깨어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본 그 악마는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오감은 허망하다. 불완전하다 못해 보이고 들리고 냄새나는 것들은 모두가 헛것이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태양이 내는 빛의 부분에서 일부, 가시광선만 보는 것이다. 빨간색의 극단에서 보라색의 극단까지. 빨간색보다 더욱 붉을 것 같은 적외선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보라색을 지난 자외선은 물론, 엑스선, 감마선도 볼 수 없다. 분명히 그 파장은 거기에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를 보고 그것이 다 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20 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는 들을 수 없고 2만 헤르츠 이상의 음파는 초음파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들리는 것이 소리의 전부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냄새는 말할 필요도 없다. 불쾌한 분변의 냄새는 5분도 못가 후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찌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가 있겠는가?
이는 도가사상과도 일맥을 통한다. 우주 만물은 '도'로 이루어져 있고 '도'가 항상 존재하고 '도'가 없지 않은 곳이 없다. 소리에도 '도'가 있고 빛에도 '도'가 있고 냄새에도 '도'가 있다. 우리는 '도'의 일부만 보고 듣는 것으로 스스로 재단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만이 옳고 정당하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분열시킨다.
'희언 자연'
자연은 말이 없고 말이 없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 속의 극히 일부인 미미한 인간의 감각 속에서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인 것이다.
그만, 내가 본 악마의 결론을 내리고 싶다.
헛것을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눈으로 본 것은 사실이다. 혹시 그 순간에 존재하기는 하나 평시에 볼 수 없던 악마의 모습이 초공포라는 충격을 받은 뇌가 오작동하여 잠시라도 보이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