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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목수 Sep 13. 2022

분노

나는 분노 조절 장애 환자인가?


장면 1.


술병을 들어 테이블을 내려쳤다.


'와장창!' 맥주잔은 쓰러져 거품을 뿜어내고 회 접시는 튕겨 오르며 물고기의 살을 뱉어 내었다. 날을 세운 유리 조각은 사방으로 튀고 깨진 병을 든 나는 담당자의 목을 향했다.


둘러앉은 세무사와 사무장은 혼비백산하였다. 하마터면 피를 보는 자리가 될 뻔한 것을 병원 사무장의 만류로 가라앉았다.


병원 개업 중 세무 관련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던 시절, 사무장들이 마련한 접대 회식 자리였다. 식사 후 술이 한순배 돌고 병원 재무를 담당해 주던 나의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는 일이 발생했다.


접대를 받던 담당자 중, 한 잡놈이 나의 아내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내 아내라는 사실을 미리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술을 따르라는 것은 원장인 나를 향해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리라.


그들은 7급 또는 8급 정도 되어 보이는 실무급의 양아치들이었다. 아마 아가씨들이 나오는 룸살롱 접대로 알고 나왔는데 일식집 회식이라 실망의 조소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깨진 맥주병을 휘둘렀다. 액션 배우처럼 상을 뒤집고 달려들었으나 크게 놀란 병원 사무장의 방패에 막혔다. 나는 나대로 세무의 압박에 켜켜이 쌓여온 분노가 터진 것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주어 담을 수도 없고 주워 담기도 싫었다. 그래도 사무장은 담당자를 달래어 사과하고 봉투를 건네고 마무리하였다.


그 후, 괘씸죄로 더욱 세무 압박이 있을 것 같아 노심초사하였으나 오히려 일은 잘 마무리되고 나의 분노 폭발에 담당부서는 고요하였다.


장면 2.


이번에는 유리 글라스를 탁자 위에 엎어쳤다.


'파팍!' 큰 유리잔을 다른 잔 위로 치니 유리가 깨지면서 내 손목을 그었다. 깨진 유리잔을 든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고등학교 선배와 초밥집에서 사케를 마시고 있었다. 변호사를 하는 선배에게 내가 눈밖에 난 것 같았다. 어떤 피해의식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정형외과 의사로 돈 좀 벌었다는 후배가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관계가 틀어졌던 모양이었다. 미국 연수로 온 후배를 환영하기 위한 동문 모임에 그를 처음 만났다. 캘리포니아 최 남단의 휴양도시, 샌디에이고에도 고등학교  선배가 4명이나 있었다. 도시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가며 졸업한 고등학교라 동문에 대한 애정도 없는 데다 동창회 조차도 참석하지 않는 내가 한 선배의 이끌림에 할 수 없이 참석하였다.


나름대로 선배 대우를 잘하고 후배로서 얌전하게 귀여움을 떨면서 회식을 마쳤으나 그 후에 뒷말이 나왔다. 변호사 선배가 자기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내가 남에게 먼저 인사했다고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성격이구나'


면전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던 사람이 뒤로는 특이한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았다. 일종의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거나 자기애성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였다.


하루는 동문 선배와 골프를 하는데 분위기가 수상하였다. 그 변호사 선배가 골프를 거부한 것이다. 골프장까지 도착해서 골프를 거부하는 이유는 골프 동반자로 괘씸한 후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싸운 것도 아니고 깊이 대화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닌 타인인 그가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혼자서 매우 분개하고 나를 자신의 입맛대로 단정 짓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서로 만날 일도 없었고 만나기도 싫었다.


그 이후 어느 날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다. 처음으로 만남을 주선했던 선배가 그래도 장례식을 참석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조화와 조의금을 준비하여 그의 부친상을 조문하니 변호사 선배는 고마워하였다.


그리고 난 뒤, 장례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초밥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친한 선배와 내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이번에는 나의 말투를 꼬투리 잡았다. 선배의 말에 내가 긍정의 뜻으로 추임새를 넣는 말투가 마치 반말하듯 그에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 내가 너에게 말했지! 선배에게 그렇게 아!, 아! 하지 말라고!"


아무도 반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친 형님처럼 친근하게 모시던 우리의 대화에 그가 이러라, 저러라 하는 것에 분노가 올라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괴롭히던 1학년 동창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어금니에서 '빠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씨팔! 내가 무얼 어쨌다고 그래요!"


피가 나는 손으로 탁자를 한 번 더 내려치니 그 변호사 선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같이 간 후배가 말리면서 수건으로 손목을 동여매고 식당을 나왔다.


직업이 변호사이기에 뒤에 또 꿍꿍이 송사를 펼칠까 약간 걱정되었으나 그 후로 어떤 소식도 없었고 다시 만날 일도 없었다.


대충 1년에 한 번 정도는 분노 폭발을 하는 것 같다. 지표로 솟아 오른 마그마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과 함께 용암이 분출되어 흘러내린다. 그 속에 뭉쳐진 에너지의 균형은 평형을 이루지만 내뿜은 화산재에 의해, 불타는 용암에 의해 그의 후폭풍은 만만하지 아니하다.


나의 분노 폭발은 꼭  그 화산을 닮아있다. 폭발 이후에 후유증은 실로 적지 다. 인간관계의 오해나 단절, 뒷수습에 드는 비용은 물론, 많은 시간의 낭비와 물적 피해를 입힌다. 송사라도 이어지면 마음의 괴로움은 심대할 수가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빙산에 비유한다. 90%의 무의식인 Id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고  10%의 자아, Ego가 수면 위에 떠있는 형국이다. 그 위에 보이지  않게 초자아, Super-ego가 위치하고 있다.


Ego야 말로 건강한 자신을 유지시키고 무의식의 동물적 욕구와 초자아의 도덕적 절제를 조절하며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를 통합함으로써 나를 나다운 사회적 존재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Ego가 위험할 정도로 공격을 받으면 응당, 분노라는 반응으로 자신을 지키는 본능적 행위는 정상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안으로, 안으로 무의식의 마그마 속에 잠재되어 부글부글 끓다가 자신이 파괴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이지 않게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 또한 문제이다. 이른바 '분노 조절 장애'라는 애매한 진단이 붙을 수도 있다.


글쎄, 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세상은 나의 감정을 그대로 모두 배설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는 너무 참다 보면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가 있다.


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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