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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erie

별점으로 규정되는 당신의 존재 가치

[Black Mirror] 막스 리히터의 'On Reflection'

by harmon

아침에 눈을 뜨고 SNS 앱을 키면 거짓과 허영, 온갖 정보와 영상이 도파민 샤워를 예고한다. 화면에 갇혀 시야가 터널만큼 좁아지고, 평판을 위한 용도로 끊임없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당신 앞에서 미소짓는다. 현실과 비슷한 내용의 '추락(Nosedive, <블랙 미러> 시즌3)'은 Joe Wright 감독이 연출하고 Rashida Jones와 Mike Schur 공동 시나리오 집필을 맡았다. 해당 에피소드는 소셜 미디어의 평점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렌즈를 끼면 모든 사람들의 평점이 뜨고, SNS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점이 높은 사람들은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자 명예를 거머쥔 인간이지만 평점이 낮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되고 자존감과 사회적인 위치까지 박살난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지웃음'을 띠고 호감을 사기 위해 과도한 예의를 장착하며, 자신을 위선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이면 아래에는 박한 평가질을 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과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거친다.


"본인의 삶에 골몰하다 보면 진짜를 놓치기 쉽습니다. "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평점은 4.2 정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혜택을 위해 평점을 올리려고 가식에 자신을 내던지는 Lacie가 허풍스럽게 말한다. 동기가 불순할지는 몰라도 외부 기준으로부터 평가되는 디스토피아라면 사회적인 기대에 부응하는 Lacie의 노력을 터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상류층의 방식과 평판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점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부작용 때문인지 유감스럽게도 자신마저 기만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진실과 허상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진정한 '나'가 무엇인지조차 고민할 겨를 없이 멀어졌다.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플루언서 Naomi가 자기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얻는 타인의 신의는 얼마나 두터울 수 있을지를 신랄하게 증명하는 것 같다. TV시리즈나 콘텐츠가 현실의 거울이 될 수 있듯이, '추락'은 SNS와 사회적 문제를 '나'와 깊게 연결시켜 성찰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송용창, 2024)

'Nosedive' 속 4.8을 유지하는 Naomi

<Black Mirror - Nosedive>(Music From The Original TV Series) 살펴보자. 수록된 앨범 중 가장 철학적인 곡 'On Reflection'은 섬세하지만 단순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현악기의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대략 2분 40초 즈음부터 들을 수 있는 바이올린은 모던 클래식의 향기를 흩뿌리고, 희미한 신스는 타이틀명처럼 여운을 주며 유토피아에 대한 의심과 불안한 인상을 남긴다. Richter는 팩트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Joe Wright 감독이 제시한 Nosedive 세계의 깔끔한 미학과 일치하길 원했지만 불안한 음표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외의 곡도 세계관에 잘 스며든다. 'Dopamine 1'과 Dopamine 2'는 비교적 짧은 곡이지만 Lacie가 별점을 매기거나 Naomi의 레시피를 따라 하는 등 신분 상승 욕구와 맞물려 보상 심리를 반영한다. 'The Journey, not the Destination' 역시 드럼 비트와 더불어 현악기를 통해 버튼 누르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모순을 남긴다. Richter가 작품이 "행복이 주는 횡포" 같은 것이며 "파스텔톤의 거짓된 행복으로 가득 찬 시각적 공간에 음악적 언어로 보탬이 되고 싶었다"라고 말했듯이, 완벽할 것만 같은 세상에 잔잔한 음악으로 기저에 괴리가 있음을 표시한다. (<Den of Geek>) '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와 'On Reflection'과 거의 동일하지만, Lacie가 구치소에 갇혀 서로에게 막무가내로 욕을 퍼붓는 장면에 배치되어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며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서로에게 가식으로 대하며 억지로 미소를 띠는 세상이 나을지, 거침없이 서로를 헐뜯으며 욕하는 솔직한 세상이 더 나을지 저울질을 요구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과 타인에게 혐오를 배설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을까?


덧붙이며

Taylor Swift의 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는 곧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로 정의될 수 있어요(We are What we love)." 화면 너머로 전시되는 것들이 우리 자신이 원하는 삶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게 보여주기식 인생과 타인의 인정 욕구만을 위한 것이라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과 사랑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타인에게 비춰질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그 자체로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기준과 원칙을 갖춘 행동일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는 건 너의 비하인드 장면을 남의 하이라이트와 비교하는 셈이다(Never compare myself to other people. It is comparing my behind the scenes to their highlight r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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