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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erie

인간과 안드로이드

[Detroit: Become human] 필립 셰퍼드의...

by harmon

"이 게임은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에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사이버라이프에서 개발한 모델 Chloe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유저들에게 당부한다. <Detroit: Become Human>은 인터랙티브 무비로써 유저는 Conor, Kara, Markus 세 안드로이드의 행동을 다중적으로 조작하며 분기를 결정하고 엔딩을 선택할 수 있는 내러티브형 게임이다. UI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 자체를 제4의 벽을 부수는 문법적 도전을 통해 의미화해 낸 작품이기에(김성은, 2024), 플레이어가 존재방식과 정체성을 개발하고 미래를 직접적으로 바꾸는 데 의미가 있다. 단지 그 객체가 안드로이드이며 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기에 수십 년 후에도 이런 일이 펼쳐질 수 있을지 궁금해질 뿐이다.


안드로이드와 관련되어 인간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SF 장르의 주요 철학이자 시사점이다. 2038년 미국의 주인 디트로이트는 실업률이 약 37%에 육박하며 사이버라이프 사에서 개발한 안드로이드가 거의 모든 일과 편의를 봐주기에 인간의 위치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특이점이 와서 도저히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고 볼 수밖에 없는 안드로이드들이 ra9를 통해 각성하니 신인류가 탄생한 셈이다. 사이버라이프 사의 설립자이자 전 CEO인 Elijah Kamski는 캄스키 테스트를 통해 안드로이드의 불안정성을 점검하며 존재의식을 증명해내고자 했고, 불량품을 색출할 수 있었다. 게임의 총괄 디렉터인 David Cage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기에(<Venturebeat>),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Conor와 Markus의 주제곡을 작곡한 Nihma Fakhrara, John Paesano의 음악적 스타일은 캐릭터의 특징에 따라 제법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Philip Sheppard의 음악에 관심이 갔는데 그 이유는 Sheppard가 '인공지능의 대부'였던 故 Marvin Minsky와 친구 사이였기 때문이다. Minsky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이자 논리회로를 조작해 컴퓨터도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으로서, 시각 스캐너나 현재 가상현실 기기에 활용되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고안하고 뇌 신경망의 일부를 모방한 형태인 인공신경망 ‘퍼셉트론(perceptron)’의 한계를 실감했던 개발자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작곡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딸인 Margaret Minskey와 음악 아카이브를 공유한 후 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English Session Orchestra와 녹음을 통해 Kara의 음악적 틀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Philip Sheppard의 연주는 첼로 연주를 주축으로 전자음악과 피아노가 가미된 현악곡이 다수이다. 특히 'Kara Main Theme'은 가정주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안드로이드 Kara의 주제곡이다. Tod로부터 Alice를 지켜낸 후 살아가는 보호자로서의 정체성을 담아냄과 동시에 '불량품'이라는 낙인이 찍힌 제품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심정을 잘 반영한다. 7분 29초의 곡이 오두막에서 본 불꽃의 이글거림에서 특정 리듬의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바이올린은 청취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며, Ka-ra라는 2음절에서 모티브를 얻어 주제곡의 뼈대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서정성이 더욱 구체화된다. 자기 결정론에서 '관계성'은 개인이 타인과의 연결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말하며 이는 게임 내 캐릭터의 감정표현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고 하듯이(여문천, 김숭현, 2024), 앨리스를 보호하고 수사로부터 도주하는 Kara의 표정, 두 사람의 유대감이 청취자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Minsky가 생전에 <Detroit: Become Human>을 목격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아마 곡을 통해 보편적 지각과 감각을 가진 듯한 안드로이드의 인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Sheppard는 대본을 읽고 콘셉트아트를 살펴본 후 전지적 관점에서 작곡할 것이라고 했으나 자신도 부모이기에 이를 활용할 수 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생물체와 생물체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존재의식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에 대해서 게임은 깔끔한 해답을 주지 않지만, 최소한 Markus의 주인 Carl이 말하지 않던가. "Don't Let Them Decide Who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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