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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everie

형용할 수 없는 가치

[Arrival] 요한 요한손의 'Heptapod B'와 막스 리히터..

by harmon

<컨택트>(2016) 영화의 원제는 <Arrival>이다. '컨택트'와 'arrival'은 의미가 전혀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타이틀이다. 먼저 '컨택트'는 언어와 의사소통이 영화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계인과의 소통 못지않게 인간 사이의 언어적 소통도 다뤄지고 있는데, 상호작용과 접촉은 사용하는 언어로 말미암아 영화가 전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arrival'은 도달, 도입, 도착이라는 목적지향성이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제기하는 목적론적 사고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주연 인물인 Louis Banks(Amy Adams)는 원작이자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단다.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컨택트'에 집중한다면 외계인들이 사용하는 헵타포드(Heptapod)라는 단일 도식 문자와 사피어-워프 가설을 놓칠 수 없다. Louis Banks는 물리학자인 Ian Donnelly(Jeremy Rener)와 비행물체를 조사하고 이들과 접촉하면서 의미를 해석한다. Heptapod A라는 음성 언어와 Heptapod B라는 '비선형적 철자법' 구조를 지닌 원형의 로고그램이 있으며(이재현, 2017), 스위스의 언어학자 Ferdinand de Saussure(1857 ~ 1913)의 이론에서 본다면 기표와 기의로 구성된 언어적 기호로 볼 수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인류학자 Edward Spair와 언어학자 Benjamin Lee Whorf가 내세운 언어와 사고를 규정하는 메커니즘으로써 언어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는 언어 결정론(이예은, 2021)을 말한다. 언어가 사고에 제약을 가한다는 주장도 일 리가 있으나, Noam Chomsky처럼 보편 문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형적으로 조합지 않은 채 동시적으로 발화되거나 이를 배운다고 사고방식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점이 비약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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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로고그램의 언어적 특성을 포착한 Johan Johansson(1969~2018)은 콘셉아트를 살펴본 후 아날로그 테이프 루프를 활용했다. "언어와 소통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보컬을 주요 악기로 활용하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기에(<theguardian>), 시퀀서나 샘플러의 비중을 줄이고 폴리리듬을 활용하며 Theatre of Voices 합창단의 음색, Robert Rowe와 Joan La Barbara의 협력을 받아 <stockhausen: Stimmung>와 같이 기괴한 하모닉 심포니를 연출했다. 'Arrival'에서는 그랜드 피아노 드론을 레이어링 했고, 'Kangaru'에서는 현악기, 목관악기 등의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텍스처링되어 성대에서 나는 마찰음과 공명음을 부각한다. 개인적으로는 'Heptapod B'라는 트랙이 마음에 들었는데, 아이가 언어를 구사하기 이전의 훨씬 고차원적인 사고회로를 거치게 되는 경이를 담아내는 듯했다. 이외에도 독백과 함께 시각적 내러티브가 전달될 때 <The Blue Notebooks>에 수록된 'On The Nature of Daylight'이라는 Max Richter의 곡이 있다. 낮은 톤의 사운드트랙과 대비되게 초반부와 후반부의 여운은 Hannah라는 팰린드롬의 이름처럼 곡은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크레디트를 균등하게 맞추며 감정선을 건드린다.


'arrival'에 집중한다면 목적론을 말할 수 있겠다. <컨택트>의 결정론적 논리에 따른다면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헵타포드어를 배우는 일이 곧 비선형적인 지각으로 이어지므로 목적론적 사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루이스 박사는 언어를 연구하고 이해할수록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지각되는 현상이 발생하며, 현재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물리학자인 '게리'는 페르마의 최단 시간 원리와 변분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고 하며,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한국영화학회, 2018). 영화 속 루이스 박사는 고정된 미래를 더듬어 실마리를 찾아나갔고 샹 장군과 통화하며 전쟁의 위험을 극복하는데, 이마저도 세계 정세의 위기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멸종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외계인들의 합목적성 테두리 안이다.


영화를 본 시청자들은 <컨택트>의 핵심이 사랑임을 안다. Villeneuve 감독이 플래시포워드 기법을 통해 앞으로 닥칠 일을 펼쳐놓았듯 Hannah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목적이나 의도를 초월하는 것이다. 또 사랑은 제로섬 게임도 아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과 별개로 다가 올 딸아이의 상실을 겸허히 껴안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느껴진다. Louis 박사는 순환적 인과관계의 고리를 알고 있음(미래의 기억과 사건이 현재 행동의 원인을 제공)에도 다시 한번, Hannah를 잃게 되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기 위해 똑같은 미래를 선택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랑은 인간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자 유일한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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