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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armon Mar 07. 2023

지구에 남은 마지막 인류인 것처럼 구는 사람에게,

[리리시즘] 울프 앨리스의 'The Last Man on Earth'

CREDIT: Jordan Hemingway/Press

"독특한 여행길에 오르는 제안을 받는다는 건 곧 신에게 댄스 연습을 지도받는 것이다." 커트 보니것의 단편소설 <고양이의 요람>(1963)을 읽고 메모를 남겨 둔 엘리 로우셸은 의문을 품는다. 리드 싱글 'The Last Man on Earth'는 꿈결 같은 사운드와 조용한 피아노의 독백으로 출발하지만, 음악적 여정에 과도한 의미를 붙이기라도 하듯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노선을 변경한다. "단지 여행을 추천받은 거잖아요! 왜 모든 건 그 이상의 의미가 필요한 걸까요?" (<NME>) 곡에서 화자는 한 남자가 받는 계시의 빛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누구에게나 종교적으로 염원하는 바가 있고 신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정작 자신을 구원하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사랑에 관해서는 빈틈투성이면서 / 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잖아." 화자가 볼 때 신의 빛과 은총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한 남성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첫 번째 벌스와 비해 짧은 두 번째 벌스는 간략하게나마 거짓된 허물을 독백으로 벗겨내지만, 합창단의 백보컬과 드럼이 들어가며 거룩한 환영에 비친 한 남성의 나르시시즘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진다. 프리 코러스에서도 긍휼의 감정을 용납하기보다 에고이스틱하게 대처하는 그를 냉대하려는 심산이 앞선다. "문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 / 너 자신이라는 책만 읽어 / 너에게 정말로 빛이 비칠까?" 


가파르게 넘어가는 브릿지에서 합창과 오웬 팔렛(Owen Pallett)의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솟구치며 가스펠로써 의도를 심화시킨다. 코러스에서 화자는 털어놓는다. "넌 이곳에 처음이었던 사람이자 / 지구상의 마지막 인간이었지 / 너에게 정말로 빛이 비칠까?" 자신이 죽을 때, 세상도 같이 끝나는 것처럼 화자의 심정은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 신의 은총이 있기를)'가 아닌 '갓 블레임 유'로 전환된다. 절정에 달하는 프리 코러스에서는 종말을 고하듯 도도하게 지탄한다. "거짓말에 거짓말이 반복되니까 / 넌 자신도 속일 수 있는 거야? / 그리고 다시 빛이 너를 비춰."


아웃트로에서는 인트로의 독백으로 돌아가며 말을 아낀다. "하지만 빛은..." NME의 리안 달리(Rhian Daly)는 곡에 대해서 "울프 앨리스는 여전히 영국 음악과 그 이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한다"며 호평을 금치 않았다. 네오-사이키델릭 장르의 'The Last Man on Earth'는 첼로와 트럼펫 등 오케스트라적 요소를 원색적으로 배치하며 얼개를 짰다. 앨범의 트랙 중 하나를 꼽는다면 이를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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