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서디나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 피비 브리저스(Phoebe Bridgers)는 데뷔 앨범 [Strnager In The Alps](2017)를 통해 인디 신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싱글 'Funeral'을 두고 기타리스트 존 메이어는 '거대한 신예의 등장'이라며 호평하였고, 보이지니어스와 베스트 오빌리비언 커뮤니티 센터의 멤버로도 활동하며 '연쇄 협업자'란 칭호를 받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에 발매한 소포모어 앨범 [Punisher]에서도 에단 그루스카, 토니 버그와 스스럼없이 작업하며 너바나, 플릿우드 맥, 닐 영등 전설의 음악이 탄생한 사운드 시티스튜디오의 기운을 흡수했다.
피비 브리저스를 수식하는 또 다른 말은 '카피캣 킬러'이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기도 한 'Punisher'에서는 자신의 우상인 故 엘리엇 스미스가 살아 있으면 어떨까 하는 가정 속에서 섬세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헌정한다. "저는 광팬이라서 스미스의 음악에 대해서 빠삭해요. 내가 그 사람에게 응징자인 것처럼 곡을 썼던 거죠." (<뉴요커>) 실버 레이크(Silver Lake)의 음울한 광경과 빙빙 하늘을 도는 펠리컨을 늘어놓던 'Smoke Signals'를 통해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듯이, 브리저스의 음악은 스미스 특유의 창법과 더블 트래킹 기법을 따라 할 정도의 집착에 기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제가 당신을 아는 것 같다고 / 말한다면 어떨까요? / 그렇지만 우린 만날 수 없죠." 먹먹한 신서사이저에 묻혀 파편화된 것만 같은 'Garden Song'에서도 의식의 흐름을 따라 엘리엇 스미스의 'Rose Parade'로 이어진다는 걸 환기시킨다. "마당에 있는 정원을 가꿀 거야 / 평평한 트레일러에 장미를 붙이겠지."
그러나 우리는 브리저스가 독립적인 인간이자 창조적인 싱어송라이터로서 발돋움했다는 걸 알아챈다. 아버지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담은 'Kyoto'는 멜로트론, 호른과 드럼의 경쾌함과 상충되고 있고, 이모 포크의 'Graceland Too'에서는 약물 중독을 겪고 있는 친구를 위해 밴조를 활용한 컨트리 텅으로 밝게 맞이해 준다. 'ICU'에서는 연인 사이로 지내다가 오랜 친구로 돌아간 마샬 보어와 호흡을 맞춘다. "네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면 / 난 너무 가까이에 서 있어 / 붓놀림하는 법도 알아." 스켈레톤 후드를 입은 채 기괴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공연하는 행위도 외적인 콩트로써 고유의 정체성을 창출한다.존경하던 작가 존 디디온이나 반려동물 맥스의 죽음 역시 긴요하게 여기고 이를 반영했다.
개인의 트라우마와 경험 등 자유자재의 테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에 맞춰 아포칼립스 영역에 자리 잡는다. 믿음과 과학 사이에서 떨리는 자아를 표현한 'Chinese Satellite'의 철학적 갈등은 앨범 전체의 음산하고 오싹한 멜로디와 멜랑꼴리하고 서정적인 가사를 한데 아우르며 초월한다. 이는 'I Know The End'에서 극에 달하는데,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촉발된 관계의 단절과 종말의 위기감, 공포와 슬픔이 혼재되며 반전의 효과를 거듭 실감하게 만든다. 희열과 비관이 교차하며 그룹 보컬로 완성시킨 클라이맥스는 헤비메탈에 가까운 괴성으로 카타르시스의 여운을 남긴다. "아니, 난 사라지는 게 두렵지 않아 / 광고판에 '끝이 도래했다'고 적혀 있었고 / 뒤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지 / 맞아, 여기가 끝인가 봐."
피비 브리저스는 "항상 좋아하던 수백 가지의 것들을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는지 발견하는 중"이라며 앨범에 대해 "아방가르드한 느낌은 없다"라고 말한다. (<NPR>) 실제 범죄를 다루는 팟캐스트 'My Favorite Murder'에서 영감을 받거나 앨범에 참여한 블레이크 밀스의 음악에 이끌렸고,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차를 몰고 가던 중 발견한 스페이스 X의 로켓이 발사되는 광경을 보고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기이한 경험을 소환시켰다. 브리저스는 독창적인 방식을 개발하며 제작진들과 긴밀하게 협조함으로써 인트로부터 엔딩 크레디트까지 지켜보게끔 만드는 것은 물론 동시대의 사회에서 찾을 수 있는 공감대를 모순적으로 묘파한다. [Punisher>]는 2021 그래미 어워드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 후보로 오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