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PE INDIE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harmon Aug 05. 2023

전지적 스위프트 시점의 구비문학

[리뷰] 테일러 스위프트의 [folklore]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 힘입어 여섯 번째 콘서트인 <Lover> 투어를 진행하고, 글래스톤베리의 헤드라이너로 팬들을 반길 예정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휘황찬란한 이십 대를 보내며 2010년을 장악한 팝스타가 팬데믹까지 통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2년마다 새 앨범을 낸다는 암묵적인 룰도 산산조각 난 뉴노멀의 시점에서, 조용한 발걸음으로 암막 커튼을 걷고 나온 <folklore>는 고독 속에서 피어난 창작물로써 스위프트의 주체적인 스토리텔링을 한층 부각한다. 스위프트는 자신이 시청하고 읽었던 영화와 소설을 따라 올라가며 내면의 상상력을 근원으로 삼는다. 


스위프트는 사람들이 이 앨범을 듣는 건 잡지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노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folklore>를 민담과 설화처럼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하나의 구비(具備)문학으로 본다면, 해석은 다음과 같다. 피아노가 특징인 'the 1'은  코로나 당시 특수한 상황에 지친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를 멀리서도 묻고 싶어 하는 심리를 반영한다. "새로운 것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말이야." 가스펠 곡 'epiphany'는 바쁘게 움직이며 바이러스와 투쟁했던 의료진과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딘의 대칭, 숭고함을 기리는 담담한 어조를 통해 안도감을 조성한다. "당신과 함께 싸우고 함께 무너지겠습니다." (현실반영론적 관점)


집단의 '민간전승'의 개념은 전통적인 의식이나 전설에서 벗어나 개인이 공감할 만한 소문과 가십으로까지 퍼져나간다. 십 대의 사랑을 다룬 삼각관계ㅡ'cardigan', 'august', 'betty'ㅡ는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있으며 베티와 제임스, 영문 모를 여성 총 세 사람의 관점에서 풀이된다. 하모니카와 페달 스틸 기타가 어우러진 컨트리풍의 'betty'는 밥 딜런의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과 흡사한 이미지다. 곡을 아우르는 상징물인 카디건은 'cardigan'에서 회수된다. "마치 내가 누군가의 침대 아래에 있는 오래된 카디건처럼 느껴졌을 때 / 너는 나를 꺼내 입으며 나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행적이지 않은 스토리를 흐름에 따라 퍼즐처럼 맞추는 일은 스위프트 특유의 액자식 구성을 받아들이는 팬의 몫이다. (절대론적 관점)

스위프트는 내러티브 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팩션(Faction)처럼 사실과 허구를 엮는데,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스스로를 캐릭터로 대상화시켜 제4의 벽을 뚫는다. 연애사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 보도와 빅머신 레이블 그룹과 벌인 마스터권 분쟁 등 싱어송라이터로서 겪은 일조차도 서사로 작용한다. 레베카 하크니스의 일대기를 다룬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 가스라이팅을 고발하는 'mad woman'은 차분하되 아리송하지 않은 주제의식이다. 노골적으로 겨냥한 트랙 'my tears ricochet' 속 저주의 애드리브는 커버아트에 그려진 숲 속 귓가를 맴도는 메아리이다. "당신이 잠 못 드는 밤에 / 내게서 훔친 자장가를 듣지." (표현론적 관점)


본 이베어와의 합작은 발라드 감수성을 자극하며('exile'), 더 내셔널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아론 데스너와의 교감은 순수한 인디 포크의 정수를 끌어낸다. ('seven') 사람은 레드 머신(Big Red Machine)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인디 신과의 교집합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팝과 컨트리를 전문 분야로 하던 스위프트에게 위화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folklore>는 사색과 침묵, 슬픔과 비극을 닮은 포크 음반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팝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1989>, <Reputation>에 참여했던 프로듀서 잭 안토노프의 비중이 적지 않아 보인다. 'mirrorball'은 말할 것도 없으며, 오르간과 색소폰이 더해진 'this is me trying'는 'This Love'와 'The Archer'를  회상시킨다.


고무 프렛 기타의 어쿠스틱 리프와 전자 리듬이 절묘하게 배치된 'peace'는 코티지코어 스타일과 낭만주의를 한껏 끌어올리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친근하게 향유하고 싶다. 앨범의 흥행과 차트 성적을 떠나서 피치포크 질리언 메이프스의 글처럼, <folklore>는 스위프트가 예술적으로 성숙해지는 단계인 동시에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치를 고수하는 작품이다. 이런 리뷰조차도 앨범을 와전시키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보니,  이제는 우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차례가 되었다. 의식의 흐름을 타고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folklore>는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등극한 바 있다.

1. the 1

2. cardigan

3. the last great american dynasty

4. exile (feat. Bon Iver)

5. my tears richochet

6. mirrorball

7. seven

8. august

9. this is me trying

10. illicit affairs

11. invisible string

12. mad woman

13. epiphany

14. betty

15. peace

16. hoax

매거진의 이전글 팝 음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아방가르드-아키텍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