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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harmon Feb 15. 2024

팝 음악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아방가르드-아키텍처

[리뷰] 캐롤라인 폴라첵의 [Desire, I Want to...]

2008년부터 일렉트로닉 밴드 체어리프트의 프런트우먼으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한 캐롤라인 폴라첵(Caroline Polacheck)은 쉴 새 없이 내실을 다졌다. 찰리 XCX, 칼리 레이 젭슨과 협업했던 PC 뮤직의 프로듀서 대니 할과 손을 잡은 이후 독창적인 팝의 레시피를 개발했고, 슬리퍼 히트 앨범 <Pang>(2019)을 통해 촉망받는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팬데믹을 뒤로하고 두아 리파의 투어와 스튜디오 녹음, 원격 작업을 전략적으로 병행하며 소포모어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이룩한다.


댄 니그로가 작사에 참여한 오프닝 트랙 'Welcome to my isalnd'의 기세에 압도당한다. 폴라첵은 두 옥타브를 올라가며 타잔처럼 날카롭게 부르짖는데, 아웃트로에서 휘몰아치는 일렉기타와 리드미컬한 효과음이 리스너를 지대한 음악세계로 이끈다. "내 섬에 온 걸 환영해 / 날 좋아하길 바라, 떠나지 않길 바라." 이후 폴라첵의 인공섬에서 플라멩코식 일출을 보게 된다.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건져낸 'Sunset'은 팬데믹 당시 세가 보데가와 떠난 스페인의 향취가 느껴진다. "그래서 후회는 없어 / 왜냐하면 네가 이글거리는 나의 일출이니까 / 평생 겁먹지 않는." 'Billions'는 코르누코피아처럼 풍성한 사운드 메이킹을 연출하고 트리니티 합창단을 엮어 출구 없는 섬의 미로를 밝혀낸다.


폴라첵의 음반이 아찔할 정도로 빼어난 건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일단 저질러보는 대니 엘 할과의 파트너십에 기인한다. 휘익 부르는 휘파람과 키득키득 변조된 웃음을 곁들인  리듬과 재즈 베이스가 만나고('Bunny Is a Rider'), 오케스트라 히트 스타일링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음악가 소피에게 헌정하며('I Believe'), 브레이크 비트를 몇 방울 떨어뜨린다('Smoke'). 트립 합, 프로그레시브 팝, 아방 팝의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지만 어떤 형식의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는 팝의 실험장이자 전자음을 효과적으로 집약시킨 복합물에 가까운데, 그라임스의 피처링으로 골격을 절충시킨다.

카르만 효과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자유자재의 와류가 집중하게 만든다. 백파이프가 일품인 'Blood and Butter'에서 무아지경의 순간을 만끽하다가 벌스와 코러스의 서사에 관계없이 흘리듯 노래하는 'Pretty in Possible'은 환상을 깬다. 전자에서는 'Wikipediated' 같은 자신만의 언어가 특이하게 발음되고(아홉 번째 트랙 'Hopedrunk Everasking'도 실제로 존재하는 합성어일까? 그렇지 않다.) 후자에서는 흉성과 두성을 넘나들며 오토튠 같이 느껴질 만큼 흐느낀다. "내가 거리 위에 있다면, 마지막으로 알게 거야 /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그런 자유를 견딜 수가 없어져."


케이트 부시, 뷰욕, 셀린 디온 등을 비롯해 여성 아티스트를 조목조목 파고드는 일에 대하여 폴라첵은 거부할 수 없는 힘찬 팝디바의 순간들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본받고 탁월한 싱어송라이터로서 비슷한 노선을 걷는다고 간주한다면, <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 문자 그대로 디바가 되는 게 아니라 디바의 순간과 본질에 뛰어들겠다는 각오로 볼 수 있다. 60년대 리버브 효과가 들어간 'Butterfly Net'는 동시대의 싱어송라이터 웨야즈 블러드를 연상케 한다. 디지털 음악 속 아날로그 웨이를 걷는 폴라첵은 팝의 미래를 찬연하게 반사시키며 판테온에 입성할 소닉 아키텍트가 되어가고 있다. 소포모어는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엔지니어드 앨범(클래식 제외)의 후보로 지명된 바 있다.

1. Welcome to my island

2. Pretty in possible

3. Bunny is a rider

4. Sunset

5. Crude drawing of an angel

6. I believe

7. Fly to you

8. Blood and butter

9. Hopedrunk everasking

10. Butterfly net

11. Smoke

12. Bill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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