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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Aug 26. 2016

'헬조선' 속 우리들의 '임무'

영화 '암살'에서 찾은 '희망'과 '기억'

헬조선


'헬조선'은 인터넷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심심찮게 나오는 단어이다.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영단어인 '헬(Hell)'과 대한민국의 옛 이름인 '조선(朝鮮)'을 합해 만든 신조어이다. 해석해보자면 단어 그대로 '지옥 같은 한국'정도를 뜻하며,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어디까지 추락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어이다. 최근 있었던 광복 71년 축사에 있었던 연설에서도 '헬조선'이란 단어를 부정하며, 그것이 분명 대한민국의 '자랑거리'가 아닌 것임을 보여준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수식어에 대한 반응들이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같은 부정적인 모습을 가진 여러 수식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헬조선'에 기름을 붓는 듯하다. 'N포세대'나 '수저 계급론'등 많은 단어들이 대한민국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며, 현시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가운데 '애국심'과 같은 것은 쉽게 배제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러한 '애국심'마저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치'로 여겨지는 듯하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애국심'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려 했던 이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한편 있다. 2015년에 개봉한 '최동훈'감독의 영화 '암살'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1933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독립투사'들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마음'은 어떠한 모습이었고, 그리고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임무'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대한 독립 만세


각기 다른 곳에서 단지 '애국심'만을 갖고 한데 모인 '독립투사'들이 만나 하나의 '임무'를 받게 된다. '안윤옥(전지현 분)'과 '속사포'로 불리는 '추상옥(조진웅 분)'그리고 '황덕삼(최덕문 분)'까지 이 세명은 하나의 목적을 갖고 한데 모인다. 그들이 선택된 데에는 물론 총을 다루는 기술과 같은 것들도 고려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앞서서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바로 '마음'이었다. 배경이 되는 1933년은 그야말로 암울한 시대였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은 이것을 '성장'이라는 핑계로 정당화시켰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에 많은 사람들은 좌절하고 우울해했으며, 심지가 곧지 않은 사람들은 '친일파'가 되어버리곤 했다. 이러한 가운데 그들이 '대한 독립 만세'라고 외치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이 그들에게서 뺏지 못한 단 하나 바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은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것과 동시에 현실 속 우리에게도 '희망'은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에 국한된 희망이 아닌 영화에서 보이는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은 모호한 감이 있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이러한 '희망'은 거짓된 빛을 뿜어내 '고문'이란 단어와 함께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러한 희망마저 저버린 'N포세대'가 오히려 삶에 안정감을 주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되기도 한다. 영화 속 일제시대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희망을 품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며 맞춰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곤 했다. 영화에서 '염석진(이정재 분)'이 이러했다. 그는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결국 일제의 밀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립투사'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은 의문을 갖는다.


하와이 피스톨 : 솔직히 조선군 사령관이랑 강인국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안윤옥 :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영화에서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희망'에 의문을 품는다. 영화는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킨다.'라는 이상적인 결과론적 사고방식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와이 피스톨은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를 찾아 '독립투사'가 되지 못한 자신을 억지로나마 위로한 듯 보였다. 하지만 윤옥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수적인 접근이 아닌, 깊이를 도모한 사상적인 영향력을 꾀하고 있었다. 동시에 결과가 본 목적을 바로 드러내기보다는, 과정 자체에 목적을 둠으로써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작전의 성공 여부보다는 수행과정 자체가 주는 영향력을 무시 못할 것임을 그녀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하와이 피스톨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결과'만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인생을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과정들을 생략하고 포기한 채 단순히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곤 한다. 그리고선 내린 답은 '노력'이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노력'이란 단어는 더 이상 과거의 것과는 뜻을 달리하는 느낌이다. 과거의 '노력'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인정받고,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현재는 '결과'에 따른 과정의 '평가 기준'으로 전락해버린 듯하다. 결과만이 중요시되는 현대에는 '성공'은 곧 '노력한 것'이 되고 '실패'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노력했지만 실패'와 같은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시각에 대해 단순히 '노력'을 내세우지만 '과정'을 인정해주지 않는 역설적인 모양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작전은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정받아야 할 것들이었다. 그 의미가 희미해져 버린 '과정'이라는 것에 그들은 뜻을 두고 있었다. 이런 그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당부한다.


어이 삼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


'하와이 피스톨'의 동료 '영감(오달수 분)'은 그녀와 인사하며 한마디 더한다.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그의 말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그 단어들에 들어있는 묵직함은 스크린을 뚫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현실 속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잊지 않기'만을 원할 뿐이었다.


'기억하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중 하나이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할 수 있게 되지만 만약 잊힌다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무(無)'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위안부 문제'나 '세월호 사건'등 많은 것들이 기억되기를 희망하면서도, 동시에 잊히는 것에 안타까워 하기 마련이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해결'보다는 '지나가기'를 답으로 내세우곤 한다. 그래선 절대 안 된다. 그것들을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리는 것은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넣어놓고는, 그 무게가 '적응'되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해결되지 않은 채 응어리로 남는다면, 언제 간 그것들은 다시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 수도 있으며 더 큰 멍으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기억하기'이다.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 옳지 않다.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억지스러운 '애국심'보다는 그들이 보여준 나아질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다. 독립투사들은 그들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희망'을 갖고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맞서 싸웠다. 그리고 '해방될지 몰랐다.'라고 말하는 염석진은 '희망'을 저버린 모습 그 자체였다. 영화는 그러했던 그의 마지막을 매우 비참하게 그려냈다.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쓰러지는 것뿐이었다.


영화는 우리들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단 한 가지 '희망'만은 품고 있기를 원했다. 해방의 순간에서 그들 모두가 '희망'을 저버리고 모두가 순응해버렸다면, 결코 해방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언젠가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만 한다면, 때가 되었을 때 놓치지 않고 우리들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단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나은 세상에서 다시금 잃어버린 '애국심'이 생기고 '헬조선'이란 단어는 과거의 시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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