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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Sep 01. 2016

사랑은 이루어졌다

영화 '미 비포 유'에서 찾은 '사랑'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사랑'이란 단어는 흔히들 '달콤 씁쓸'하다고 말한다. 두 개의 상반되는 맛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단어는 '사랑'이란 단어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는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고 꿈꿔왔다. 때론 잔혹하게, 때론 달달하게, 때론 슬프게 다루면서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냈다. 사랑은 그 어떤 모습으로도 형용될 수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란 것은 거대한 힘을 가짐과 동시어 어떤 모습으로도 그려낼 수 있는 요소이고, 그중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언제나 안타까움을 더해 더욱 애틋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다.


그리고 2016년에 이렇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영화가 하나 개봉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전혀 몸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주인공과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그의 간병인으로 취직한 그녀가 만든 로맨스는 위태로운 외줄 위에 애틋한 사랑을 담아냈다. 그와 그녀가 내세운 사랑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당신이 걱정되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요.


주인공 '루이자(에밀리야 클라크 분)'는 실직자였다. 그녀는 당장 가족을 부양할 돈이 부족했고, 때문에 닥치는 대로 식의 직업을 구했다. 때문에 그녀의 열의는 다소 '가식'처럼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윌(샘 클라플린)'을 만날 때에도 그녀의 목적은 윌을 간병하는 것보다,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아'받는 스트레스를 억지로 꾹꾹 참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환자'의 모습과 '간병인'의 모습만을 보고 있었다. 돈에 얽힌 둘의 관계는 나아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현실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이 아닌 그들의 직책이나 직업과 같은 부차적인 요소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어쩌면 '공과 사를 확실히 해야 한다.'라는 개념에서 이와 같은 시선들은 용인되는 것이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 문장에 담겨있는 '공과 사'는 서로를 표면적인 관계로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사람'을 보되 그 선을 확실히 지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서로를 진실히 대하지 못한 것은 그들관계를 악화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 그의 주변에는 연민과 동정의 눈빛으로만 그를 보았고, 있는 그대로라기 보단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어느 정도 '가식'적인 모습을 보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녀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그를 향한 동정과 연민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직 목적이 '돈'이라는 다소 불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의도까지 내비치고 만다. 그녀의 솔직함이 통한 것인지 그는 그녀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을 시작으로 그와 그녀는 '환자'와 '간병인'의 모습보다는 '친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윌 : 근데 왜 안 갔어요? 당신이 가진 게 뭔지 알아요? '가능성'이에요.


둘은 점차 가까워져 속내를 털어놓는 관계까지 이르게 된다. 그녀는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단지 현실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기 보단, 그녀에게는 '용기'가 부족한 듯했다. 그런 그녀에게 윌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멀리 보라고 말해주기까지 한다.


우리는 어쩌면 그녀와 같이 익숙함과 안락함에 속아 밖으로 손을 내밀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응'이란 것은 우리를 가둬놓기 위한 장치 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상황에서 변화 없이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적응'이다. 물론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적응'에 취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 그녀 또한 현재의 삶에 '적응'해 버린 것이다. 그 가운데 소소함을 찾아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윌이 보기엔 그녀가 알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도 좁고 그녀가 더 큰 세상을 보기를 원했다. 이것은 그녀가 그의 눈에 겁쟁이가 아닌 '가공되지 않은 보석'과 같은 존재로 느껴진 듯싶었다.


그리고 서로는 더욱 가까워져 '사랑'에 점점 다가서는듯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루이자에겐 따로 남자 친구 '패트릭(매튜 루이스 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7년을 만났던 사이이기에 패트릭과 루이자는 쉽게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영화는 '윌'에게 손을 들어줬다. 그 가운데에는 사랑에 빠진 남녀 사이에서의 중요한 원칙이 있었다.


노르웨이? 와... 멋지겠네..!


그녀의 남자 친구 패트릭은 열혈 청년이다. 언제나 큰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기를 원했다. 그의 도전들은 그를 이끌었고, 앞으로도 그는 승승장구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의 미래에 그녀는 '장신구'와 같은 느낌이었다. 휴가에 같이 갈 여행지 또한, 최소한의 상의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바이킹 철인 3종 경기'가 열리는 '노르웨이'로 반강제적으로 정해버렸다. 그녀는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이미 '적응'해 버린 모습이었다. 또한 그녀의 생일선물 또한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기 보단,  마치 자신의 소유물에 이름을 새기듯 자신의 이름이 담긴 '목걸이'정도가 다였다.


반면 윌은 달랐다. 그는 그녀의 요구를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경마장에 가보고, 클래식 음악 감상도 해보고,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주었다. 7년 동안 만난 패트릭이 해주지 못한 것을 몇 개월 되지 않은 윌은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실 그것이 하고 싶어 갔다기보다는 열의에 넘쳐 그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을 좋게 본 것이었고, 그녀가 만족하는 것을 보며 그 또한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윌에게는 '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패트릭에게 돈이 있었다면 그녀를 위해 사용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단순한 '돈'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처럼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윌과 패트릭의 차이는 선택권을 누가 얼마큼 가지고 있었느냐의 차이이다. 무조건 한쪽에만 주는 것이 아닌, 서로 동등하게 가질 수 있을 때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영화에서 결국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언제나 자기 멋대로였던 패트릭은 그녀가 자신의 선택대로 행동하려 하자 마찰을 일으키곤 마침내 싸우게 된다. 그리고 패트릭과 윌에 있어서 그녀와의 사랑에 큰 차이는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이해'였다.


윌 : 같이 있어 줄 거죠?
루이자 :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 까지나요.


사실 윌은 그녀를 만나기 전에서부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퉁명스러웠던 행동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녀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사랑'을 알려주고 삶의 밝은 부분들을 많이 보여준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는 '사랑'은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진심을 보았음에도 그는 '죽음'을 택했다. 사랑의 힘으로도 그의 고통과 절망감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녀도 처음엔 자신과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는 그의 제안을 뿌리친다. 사랑에 빠져버린 지금 너무나도 가혹하고 이기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의 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가 아직 죽지 않았기에 그리고 아직도 사랑하기에. 그녀는 그를 향해 떠났고, 둘은 사랑을 속삭이며 길고도 짧았던 로맨스를 끝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녀는 그가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나?'라는 점이다. 물론 그들은 더 이상 만나지도 볼 수도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 서로에게 보이지 않은 흔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삶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떠나려 했던 그에게 '사랑'을 통해 마지막 순간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었고, 고향에서 급급하게 돈벌이에만 여념이 없던 그녀를 더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고, 이것은 결국 '끝난 사랑'이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졌다. 그녀가 어떤 세상을 맞이할지 몰라도 그녀의 마음속에 그가 살아 있을 것이고, 그의 가족들이 그를 떠올릴 때 그녀의 모습과 함께 할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고, 영원히 서로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사랑'에 후회하고, 미련을 남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패트릭'에게 그랬던 것처럼 과감히 뒤돌아설 필요가 있고, 짧았지만 자신에 삶에 좋은 변화를 주었을 때에는 '윌'과 같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도 좋을 것이다.


'사랑'은 그동안 무한한 힘과 거대한 에너지 정도로 그려지기 마련이었다. '미 비포 유'에서 보여줬던 사랑은 어쩌면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닐지 싶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수많은 '가능성'들로 가득 차있다. 그 가운데 영화가 보여준 '사랑'의 힘으로 나은 변화들을 추구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더욱 아름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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