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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Oct 24. 2016

'처음'이라는 잔향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찾은 '첫사랑'의 모습

처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을 것이다. 설렘과 두려움 그 익숙지 않은 색을 안고선 '처음'이란 단어는 다가온다.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이기에 전에는 알지 못했던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맛보지 못한 절망과 고통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 '처음'을 행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살아가다 보면 원하지 않았더라도 '처음'의 순간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처음'은 서투름 속에 담긴 풋풋함을 통해 조금은 다른 색을 갖기도 한다. '첫사랑'이란 단어는 그것이 영원토록 평생의 순간을 꾸며주기를 원하는 이상과,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의 경계에서 자신의 모호성을 뽐내듯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첫사랑'에 대한 속성을 한껏 품은 영화가 있다. 2012년 '구파도'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볼 만한 '첫사랑'을 소재로 작은 공감을 일으키거나 위로를 건네고 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첫사랑'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들 마음 한편에 자리할 수 있었는지 그 풋풋함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모범생과 문제아의 거리는 너무도 멀다.


'인생의 모든 사건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영화는 이 한 문장을 안고 시작한다. 이어서 보이는 파랗게 물든 조금은 낡은 교복 셔츠와 그 뒤로 번듯한 셔츠를 차려입은 '커징텅(가진동 분)'이 바로 이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학창 시절 한 소녀를 좋아했다. '션자이(천옌시 분)'은 그와 같은 반 친구로 성적이 나쁜 커징턴을 '관리'하라는 차원에서 그녀의 앞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들의 모습은 서투름 투성이었다. '처음'이라는 것이 주는 설렘과 자신의 마음과 동시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더 생각났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장난이나 조그만 반항들이 그들에게도 있었다. 커징텅에게 그녀는 단지 우등생 여자애이었고, 션자이에게 그는 단지 관리대상이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먼저 마음을 표현한 것은 커징텅이었다. 그는 교재를 놓고 와 당황하는 션자이에게 자신의 것을 주고는 당당하게 벌을 받았다.


바로 사랑의 첫걸음인 '희생'을 그는 행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것을 써서 무언가 주려고 한다. 그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시간과 같은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것들 모든 것에 해당된다. 옛말에 '사람은 자신이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의 출발점은 '희생'이 가능 해질 때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때문에 단순히 '받기만 하기'를 원하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욕심'을 사랑이란 단어로 포장해 상대방의 호의를 갉아먹는 것이며, 결국 그 거짓된 연결 고리는 깨어지고 말 것이다.


이렇게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가지만 그들이 '사랑'이라는 목표지점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사랑에 동시에 수반되는 '두려움'이 그와 그녀에게는 있었다.


어쩌면 네가 좋아하는 건, 상상 속의 나일지도 몰라.


그는 여과 없이 그의 마음을 맘껏 보여주지만, 그녀는 자신 스스로가 '완벽'하다는 것을 부정하며 그가 좋아하는 건 상상 속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자신을 한없이 좋아해 주는 커징텅에게 자신의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면, 그가 실망할 것을 우려해하는 말이다. 그녀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 그는 '난 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아.'라고 받아치며, 그녀의 단어들은 그에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라도 충분히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 마냥 이타적일 수만은 없으므로, 자신의 본모습을 포기하는 것은 쉽게 행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러한 본모습을 사랑해주는 것도 또한 사랑의 한 부분이겠지만, 그 모든 모습을 상대에게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언젠간 거쳐야 할 부분이었지만, 서툴렀던 그들에겐 그조차도 커다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커징텅 또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그녀를 앞에 두고 고백을 한 뒤에, 대답을 해줄 수 있다는 그녀의 말 앞에서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것이 '거절'이라면, 그는 좋아하는 마음을 접어야 하므로 그것이 두려워 결국 대답을 듣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숨길수 없는 마음을 상대에게 거침없이 드러냈다가, 큰 상처만을 안고는 황급히 숨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특히 사랑하는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것들이 마음에 응어리져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렵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그들을 하나로 맺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뱅글뱅글 돌던 그들에게 서로가 원하던 사랑의 모습의 차이는 결국 그들을 뒤돌아 서게 만들었다.


바보 천치야!


그가 그녀에게 잘 보일 방법은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속상하기만 했다. 연신 그에게 '유치해'라고 말하던 그녀의 단어들은 무게를 싣고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형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영화에선 '성숙함'의 차이로 묘사된 것이 결국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여자의 칭찬을 먹고살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먹고 산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남자는 표면적인 부분에 주목하고 여자는 심적인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두 가지는 분명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를 살려준다며 건넨 몇 마디 칭찬이 그를 하루 종일 당당하게 만들 수 있고, 무심한 듯 건넨 꽃 한 송이가 그녀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주는 경계점에서, 서툴기만 했던 커징텅과 션자이는 이해해주지 못하는 서로에게 실망하며 상처만을 받고 결국 멀어지게 된다.


연인과의 싸움 또한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마음의 표현의 방법에서 직접 표현해주지 않은 데서의 서운함과, 별 의미 없이 한 사소한 행동에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상처를 받고 서로의 투정이 격해져 결국 영화에서처럼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첫사랑'의 '끝'은 아니었다.


평행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우린 함께일 거야.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넌 영원히 내 눈 안에 사과야.


지진이 일어나고 혼란에 빠졌을 때, 서로는 서로를 다시 찾았다. 2년이란 시간이 그들 사이에 놓였지만, 그것은 곧 그들 사이의 다리가 되어 서로를 닿게 했다. 등을 돌린 채 멀어지고 있었던 줄 알았던 서로는 등을 맞대곤 서로를 향해 남긴 추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평행세계에선 그들이 함께 일 것이라고, 영원히 내 눈 안에 사과라며 그들 서로에게 남긴 여운을 지우지 않고 가슴속에 품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에 평행세계에서의 그들의 키스장면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에 잔잔한 위로를 보내준다.


누구나 '사랑'의 마지막을 그들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은 '끝'이 아닌, '간직'하는 것을 향해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잊는 것보단 '그리움'으로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들이 잊는 법조차 서툴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처음이라는 잔향'은 결국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남겼고, 그 향기는 앞으로도 길게 길게 우러나와 그들의 삶 한편에서 그들을 꾸며주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커징텅이 했던 그 행동은 그들의 추억 속에 깊게 남겨진 향기에 취해 '첫사랑'을 간직하기 위한 그만의 '유치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의 유치함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곳에는 서투름과 함께 '희생', '두려움', '이해' 등등의 많은 단어들을 품고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다시 영화의 맨 처음 장면이 떠올랐다. '인생의 모든 사건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들이 맞이했던 '처음'이라는 순간들은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들이 결국 '연인'으로 결실 맺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기준은 누구나 다르다. 처음 짝사랑을 했던 사람일 수도, 처음 연인이 되었던 사람일 수도, 또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슬픔으로 남은 것이 아닌, 하나의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잔향으로 남아 우리의 마음속에서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커징텅이 말했듯이 평행세계에서 그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어쩌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닌,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대로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되어 우리들의 기억 속 한편을 바라진 색과 함께 우리들의 남은 삶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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