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Jan 31. 2017

'일상'에 '사랑'이 더해진다는 것

영화 '이프 온리'에서 찾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

인생은 마라톤이다.


옛날부터 우리들의 삶은 마라톤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간 목표에 다다를 것이라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끈기로 초점이 맞춰지곤 한다. 끊임없이 발을 내디뎌 결승선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마라톤의 코스와 같이 평탄대로만으론 이루어져 있지 않다. 때론 오르막길이 또는 장애물이 놓여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막다른 길이 당신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찰 것이며, 그런 식으로 결승선을 도달한 것은 결국 상처뿐인 승리일 뿐일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잘 드러나게 되었다. 자신의 밥그릇만을 챙기기도 급급한 상황은 사람들의 관계를 삭막하게 만들고, '응답하라'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사람들 간의 정()은 어느새 정말로 텔레비전으로 밖에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더욱 감정적인 가치들은 색을 잃어가기 마련이고, 자신의 삶에 다른 사람을 더하는 것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를 짐을 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바쁜 일상에 치여 사랑을 보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길 정거' 감독의 <이프 온리(2004)>에서는 자신의 삶에 사랑을 더했지만, 그것을 무겁게만 느껴 차마 보지 못하고 언제나 '나중에'라는 말을 달고 사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의 삶에서 '사랑하는 상대'라는 수식어의 그녀는 언제나 만년 2순위였다.


시간 내면 좋은데, 일이 너무 바빠서.
미안해.


주인공 이안(폴 니콜스 분)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일이 바빠서.'라고 핑계를 대는 그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의 그런 모습에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 분)는 연신 실망하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역설적이게도 그에게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의 삶에 그녀는 단지 자신의 스케줄 중 하나일 뿐인 듯 보인다. 그녀는 그를 위해 온 신경을 쏟지만, 그가 '그녀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 아래에 한 행동들은 단지 '행동'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도 놓여있지 않고, 말 그대로 겉모습뿐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에 '사랑'을 더한다는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라는 나선에, 또 하나의 나선을 만들어 언제나 양립할 수밖에 없는 '이중 나선형 구조'가 되는 듯싶다. 함께하는 삶을 위해선 그들을 담을 삶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하고, 그 그릇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은 현실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가 매번 말하는 '일이 바빠서'는 현대 사회에서 용인되는 핑계이며, 이해하지 못해준다면 속이 좁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언제나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나중'은 결승선에 놓여있지, 현재에는 단지 달려 나가야 할 길밖에 보이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뜻밖에 사고가 찾아온다.

둘 중 한 사람이 상대를 더 사랑할 수 없다지만,
제발 그게 내가 아니기를.


그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슬퍼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거기엔 그녀의 작은 바람 아닌 바람이 적혀있었다. '상대보다 상대를 덜 사랑하는 것', 이것은 소박하면서도 이루어지기 어려운 순수한 욕심이었다. 수많은 감정 중에서 적절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마저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맞춰져야 하는 것은 '사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줄 때에는,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배제된 채 영원히 온전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만약에 상처받은 마음을 돌려받을 상황이 생길 때면, 그 과정은 고통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감정은 마음대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 간의 관계는 특히 연인 간의 관계는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기적이 찾아온다. 그녀를 잃었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온 것. 그는 자신에게 놓인 그 상황에 기뻐하지만, 곧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돌려받은 그녀와의 소중한 하루를 온전히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계산 없이 사랑하는 것', 그가 그녀를 데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먼 곳을 가고 평소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고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그의 계산과정의 결과에서 언제나 '나중'에 놓였던 것이다. 


한정적인 삶의 시간에서 최대의 효율을 뽑기 위해선 '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는 결국 손해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인간'의 것이 아닌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의 유구한 역사를 살펴본다면 정신적인 가치들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어왔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예술 작품들과 문화재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음악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람의 감정을 놓고 계산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다채로운 색을 빼고 흑백만을 놓은 채,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살아갈 뿐이다. 무릇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밤이 짧은 법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야. 5분을 살던 50년을 살던 중요하지 않아.
사만다, 오늘 네가 아니었다면 난 절대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을 거야.
나한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줘서 정말 고마워, 또 날 사랑해준 것도.


시간은 다가왔고,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에게 받은 대로 사랑을 보여준 그의 하루는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하루였다. 낭만으로 가득 차있었으며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사랑이 일구어낸 변화는 분명 그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제대로 된 삶'으로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 것은 '나중'이 아닌 계산과정 없이 나온 '지금'에 놓여있었다. 그의 일상에 더한 사랑이란 나선은 서로의 것과 짝을 이루어, 감정의 결속을 통해 완전한 삶을 이루어내는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그는 회사에서 있었던 미팅 중간에 이런 말을 한다.

저는 돈 계산이나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에게 소중한 선물 '시간'을 주자는 겁니다.
둘도 없는 기회를 잡으십시오.


그의 대사는 그 자신에게 향한 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울림은 벽을 뚫고 우리의 마음속에 다가와 가슴 깊이 와 닿기 마련이다. 우리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녁 없는 삶이 보통이 되어버리고, 바쁘다는 핑계가 이해 가능한 범주안에 놓여있다는 점은 그의 대사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동시에 우리를 서글프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 중요한 것은, 그의 바쁜 삶에 놓여있던 그녀는 '짐덩이'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결승선만을 바라보며 고독을 안고 혼자서 힘들게 내달리는 길로만 인생을 꾸미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가 옆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사람이 아닌 그와 함께 나란히 옆에서 그의 짐을 덜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어버렸을 때였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늦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선 시간을 되돌려 다시금 사랑을 깨닫게 해준다.'라는 단순한 구조가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고 눈물짓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 답은 '사랑'은 몇 번을 다시 쓰더라도 아름다운 단어이고, 우리들의 삶에는 앞으로도 그 아름다운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 사랑이란 요소를 가득 담아낼 수 있다면, 끝내 결승선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제대로 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통'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