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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우리들의 삶
By 나호정 . Jul 12. 2017

하루살이 인생,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하루살이 인생


 그런 인생이 있다. 하루살이 인생. 오늘 하루 동안 번 돈이 온전히 오늘 하루를 위해 사용되는, 당장의 빈 지갑을 채우기 위해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죽어라 날개를 퍼덕이는 그런 인생이. 하루를 마치고 눈을 감으면 그것은 곧 공포와 같다. 다음날 새벽을 기다리는 것은 창문 틈 사이 기지개를 켜는 밝은 햇살이 갖는 의미보다는, 늘어나는 공과금 연체일이 더욱 큰 무게로 다가온다. 차라리 눈을 감고 진짜 그 하루살이처럼 다시 눈뜨지 않는 것이 편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들기 전 감은 눈 속 어둠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빛이 남아 있었다. 그의 귀를 통해 들어온 딸의 여린 숨소리, 그것은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마지막 숨결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금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살이 인생을 연장한다.


 이것이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의 것이었다. 1980년의 하루, 그가 여전히 하루살이 인생을 이어가고 있던 그 날이었다. 밖은 시끄럽기만 했다. 학생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대학들은 텅텅 비어 휴교령이 내려졌고, 모두들 거리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다. 만섭의 눈에는 그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를 누비며 한 명이라도 더 태워야 할 택시의 무대를 온전히 목소리를 내는 그들에게 빼앗겼으므로, 미소보다는 삐죽 내민 입술로 그들을 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니 혹자들은 말한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데, 사우디에 5년만 살아봐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 중 '적응'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참으로 편한 능력이기도 하지만, 분명 위험한 것이다. 그는 적응해 버린 것이었다. 하루살이 인생 속에서 더 먼 앞날을 보기엔, 당장의 눈 앞에 놓인 벽이 너무나도 높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적응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가 하루살이 인생에서 터득한 최고의 처세술일 것이었다. 밀린 집세와 해져버린 딸아이의 신발이 목구멍에 턱 하고 걸려 숨 쉴 때마다 신경을 박박 긁어 댔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리슬쩍 웃으며 한 푼이고 더 깎아내거나 더 받아내는 것이 그가 삶에 적응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귀에 '10만 원'이란 금액은 달콤했고, 그 수많은 단어들을 뚫고 귀에 단단히 들어와 자리했다. 그 10만 원에 그날의 '광주'로 향했고, 만섭의 눈 앞에는 붉게 물든 목소리가 가득했다.


 독일에서 온 '위르겐 힌츠페더(토마스 크레치만 분)'라는 기자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바로 그날, 그러니까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그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또 다른 '택시 운전사'들이 있었다. 분명 그들 또한 하루살이 인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들의 날갯짓의 박자는 만섭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더욱 힘차고 커다랬다. 거리와 병원을 오가며 부상자들을 나르고, 돈이 아닌 더 큰 무언가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택시 운전사의 옷을 입었지만 만섭과 그들의 첫 만남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그것이 곧 지금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외신기자의 카메라에는 당시의 그 '잘못'이 그대로 담겼다. 



  군인이 총을 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군인은 총을 쏜다. 그런데 총구의 방향이 이상하다. 목소리를 내는 그들을 향했다. 공포탄인가. 아니다 사람이 쓰러진다. 한 명 두 명 연달아 쓰러지고 있다. 뉴스는 말했다. '공산주의자' 즉, 빨갱이라고 불리는 작자들을 물리치고 있다고. 분명히 아니었다. 만섭과 피터가 만나고 얘기를 나눈 올곧은 눈빛의 사람들이 거리 여기저기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참극 속에서 크게 외친 민주주의를 향한 목소리가 전국, 아니 전 세계가 들어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마지막 숨조차도 편히 내쉬지 못하고 만섭과 피터에게 말했다. 


부탁해요


 그들의 마지막 단어였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연이 갖고 있는 '정의감'때문인지. 두고 온 딸과 눈앞의 비극 사이에서 만섭의 마음은 여러 번 흔들린다. 공포. 분명한 공포였다. 그것은 당장 내일 만섭을 기다리던 힘겨운 하루가 주던 공포의 무게와 같지 않았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그 공포,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추악함과 진실이 무너지는 현실이 주는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만섭이 혼자서 서울로 향한다면, 그것으로 다시금 자신의 하루살이 인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날의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힘찬 날갯짓의 형상이 남아 있었다. 빗발치는 총알들 사이로 총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고, 그것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옳은 길'로 향한 것이었기에 만섭은 다시금 운전대를 돌려 광주로 향했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마치 오늘 하루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하루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고, 온전히 하루를 살아냈기에 내일의 태양을 보지 않아도 만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그리고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그 믿음이 그들의 찬란한 마지막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곳에서 목소리를 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만섭과 피터 그리고 또 다른 택시 운전사들까지. 그들이 외쳤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도 메아리쳐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는 듯하다.


 만섭은 마지막에 영웅이 되기를 거부했다.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는 피터에게 가짜 이름과 가짜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마치 그날 민주주의를 외치며 떠나간 그 모든 희생자들에게 자신의 공을 돌리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그는 마지막까지도 '택시 운전사'로 남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리운 미소를 슬쩍 보여주고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그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의 정신을 가득 싣고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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