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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28. 2017

이단아의 모범

영화 '청년경찰'을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청년(靑年)'이었다.


 그 청년이란 이름에 물든 푸른색은 드넓은 하늘을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 부푼 마음을 가득 담아 마주한 세상은 그리 맑지만은 않았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갈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20대가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인'이라는 맞지 않은 크기의 겉옷이 걸쳐져 어깨를 짓누르고 있고, 멋쩍은 웃음으로 어색하게 미소 짓다 보면 그마저도 익숙해져 버려 본래의 표정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청년'의 자리는 어느새 비좁아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돼버렸다. 


 흑백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푸른 세상은 더 이상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모르지만, 청년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끝에 찬란한 무언가가 놓여있다고 생각하면서 발자국을 남겼다. 문득 돌아봤을 때 청년은 의문에 빠졌다. 지금의 이 길의 자신의 '본의(本意)'인가 하는 그런 의문. '그래도 청춘이니까'라는 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에 깊숙이 질문 하나가 날아온다.


그런 거. 돈도 안되는데 왜 해요?  


 결국 돈이 문제였다. 창밖을 볼 여유가 있다면, 지갑의 남은 지폐수를 간신히 세는 것이 청년의 것이었다. '돈'이란 것을 세면 셀수록 점점 그것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자신이 꿈꿔온 것이 돈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돈을 자신의 본의에 집어넣기엔 순수했던 열망을 타락시키는 과정으로 변모시켜버리는 것이기 때문인지. 결국 '돈'이란 것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채, '고려한다'는 정도로 합의를 본 뒤엔 씁쓸함이 밀려올 뿐이다.


 

 다른 이유로 같은 곳에 오게 된 기준(박서준 분)과 희열(강하늘 분)은 답을 찾길 원했다. 경찰학교에 입학하여 몇 년 동안 이것저것 배웠지만, 마음속 심지에 불을 붙일 만한 것들은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만들어져 놓여있는 절차에 발을 맞춰 걸을 뿐이었다. 그 길을 걷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을 걷기 때문'이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믿던 청년들이었다. 만들어놓은 절차와 길을 따라 걷는 것. 남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대보곤 안심하는 것이 청년들의 생존전략이었다. 그것에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은 곧 도전이었기에 청년들은 함부로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의심의 시작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본의'에 있었다. 경찰의 기본 마음가짐인 '시민을 지킨다는 것' 그들을 경찰의 길에 나설 수 있게 했던 첫 발걸음이 다시금 그들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것이다.



 절차와 순서는 물론 중요한 것이다. 질서와 순서란 것은 사회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고, 언제나 지켜져야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정답'에 의문을 던진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범행이 발생한 것을 목격하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간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그들 앞에 벽이 나타난다. 절차와 순서를 지켜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이 그들을 막아선 것이다.


 언제나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길 원한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칙을 요구하며, 그것에 벗어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너무 꼭 맞춰놓은 세상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 융통성이 결여된 체계는 생겨나는 변수를 제거하고 억압하려고만 한다. 이렇게 닫힌 체계는 바람이 불어올 때 흔들리지 못하고 버티다가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경찰'이란 길에 대해 의문을 갖던 그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싸웠다. 그것이 바로 청년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고, 잿빛 세상에서 하나의 '색(色)'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분명한 오락영화이다.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전반적으로 경쾌한 장단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또 분명히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깊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들이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에는 단순히 '물품 수사, 현장 수사, 피해자 수사'와 같은 것들 뿐만 아니라, '열정, 집념, 진심'과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어느 하나 부정하지 않고 함께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길을 완전히 벗어나기보단, 그것들을 발판 삼아 더욱 나아가는 '이단아의 모범'을 그려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들의 미소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들이 맞서 싸운 것들이 여전히 사회의 문제점으로 존재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들을 나타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그 길에 잊고 있던 '본의'를 담아 도약할 수 있다면, 이 사회에 하나의 '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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