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휠'을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단지 그뿐이었다. 물론 언제나 주변엔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요동치는 바다, 조금 비린 사람들의 땀냄새, 내뱉지 못해 텁텁해진 입가와 지구의 박자에 맞추지 못해 생긴 두통까지.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온화한 미소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일그러진 얼굴을 태양 빛 탓하고, 웨이트리스의 '연기'를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다. 그녀는 과거 다른 삶을 살았다. 여전사로, 유능한 변호사로, 매춘부가 되었다가, 반대로 순수한 소녀까지. 무대 위 그녀는 빛이 났다. 누군가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빛이 아닌, 환하게 비춰주어 박수갈채를 받는 선망의 빛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엔 빛을 등진 그림자뿐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원더 휠'속의 '지니(케이트 윈슬렛)'의 삶은 그러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눈을 꿈뻑이며 듣게 되는 아들의 방화 소식. 때문에 그녀는 '화(火)'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활기와,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비난하고 간간히 목을 축이는 술로 하루를 연장한다. 코니 아일랜드의 바다는 그녀에게 그런 곳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는 그녀에게 있어서 새로운 자극이었다. 그 또한 하나의 불과 같았지만, 지니의 것과는 색을 달리했다. 예술가적 기질과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그의 따스한 불은 그녀에게 새로운 빛이었다. 그녀의 배우였던 과거가 작가를 꿈꾸는 그의 미래와 겹쳐 보였고, 그녀 마음속 깊은 공백을 그의 말들로 채워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탈색돼었던 삶에 대한 열정을 되찾은 것이었다.
각자의 열정은 불타올랐다. 두 번째 남편 험티(제임스 벨루시 분)는 딸아이의 성공이 열정이 되고, 그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는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찾길 원한다. 지니는 사랑을, 믹키는 작가의 꿈속 완벽한 여주인공을 원했다. 그것이 자신의 완성된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서로는 간절히 믿었다. 분명 그것이 절름발이의 발걸음이라도, 한걸음 내딛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억지로 이어나간다.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눈앞에 목표가 가까워진다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발걸음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그렇다. 눈 앞에 놓인 현재를 부정하면서,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진정한 자신으로 여긴다. 마치 지니가 웨이트리스 연기를 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라고 여기는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킨다. 그것이 익숙해졌을 때에는 이미, 빈 껍데기 만이 남아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삶이 바쁜 현대인의 것이다. 지니의 최면술은 효과 적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늘도 웨이트리스의 옷을 입고, 달콤한 몇 마디가 섞인 밀회에서 꿈을 찾는다. 어쩌면 그것이 여기 코니 아일랜드와 어울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비명이 소음 속에 묻히기에 딱 좋은 곳이기에.
그 과정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녀의 아들은 불을 지르고, 험티는 자신의 딸에게만 헌신한다. 그리곤 거지 같은 웨이트리스라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험티에게 지니는 화내지 않는다. 그녀 또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기에 그렇다. 이렇듯 각자의 죄들이 뒤섞여 있는 가족은 사랑의 부재를 만들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서로를 다시금 묶는 것 또한 사랑이었다.
사랑은 고통스럽고도 달콤했다. 사랑은 자신의 일부를 떼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자진해서 서로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부여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지니는 그렇게 믿었다. 상대의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상대의 말속에 자신이 담기길 원했다. 욕심이라면 욕심일 것이다. 사실 정말 안타깝게도 사랑에게 쌍방의 의무는 없다. 사람 사이를 잇고 모든 로맨스의 주체가 되는 사랑조차도 소모적일 뿐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은 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기적을 그녀 또한 바랐을 것이다. 코니 아일랜드에 찾아오는 수많은 연인들처럼 자신 또한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이 그녀에게도 깃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불행을 떠안은 삶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끊임없이 흘러간다. 망설임은 후회가 되고, 과감함은 실수가 된다. 코니 아일랜드의 커다란 관람차 '원더 휠'처럼 그들의 삶을 돌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잠시 올라간 꼭대기의 삶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 정신 차려보면 이미 바닥에 내려온 뒤일 것이다. 속도가 더욱 빨라지거나,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기적처럼 다시금 하루하루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렇다.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쉽게 바꿀 수 없는 인생이란 것이 오히려 기적과 같았던 것이다. 어느 관람차 하나가 정말이지 큰 힘을 발휘해서 빠져나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고장일 뿐이다.
영화는 우리를 속인다. 스토리가 결국엔 잘 풀릴 것이라는 희망이 영화 안에 가득하다. 축제의 분위기와 드넓은 바다, 즐겁게 웃는 사람들과 빛을 가득 품은 세상이 그곳에 있었기에 그렇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마치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오늘을 희생하면 더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나는 '가짜'라고, '진짜'는 여기에 없다고. 영화는 이러한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가짜의 어제와 내일에 취해 진짜의 오늘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가득하다. 그녀가 마침내 자기 자신이 진짜라고 여겼던 모습으로 현재를 맞딱뜨리는 장면은 파멸의 절정이자 각성의 순간이었다.
더 이상 속지 말자. 세상은 반드시 해피엔딩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을 제대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 걸친 것 하나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눈앞의 바로 오늘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