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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Feb 02. 2018

긴장 속 유희

영화 '12 솔져스'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용기를 가져라


 줄곧 들어온 말이다. 어느 거대한 도전 앞에서만이 아닌,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 앞에서도 우리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란 존재로 태어나서 인생을 꾸미면서 채워나갈 많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세상에 발을 내딛을 때마다, 굳은살과 상처가 지나온 발자국을 채우곤 한다. 현실의 풍파는 용기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고, 어느새 용기를 내는 것보단 현실에 타협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처세로 여겨진다.


 그리고 용기를 행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인'이라는 특수한 직책에 어울리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니콜라이 퓰시'감독의 '12 솔져스'에서는 9.11 테러 후에 탈레반과의 전투를 위해 비밀 임무에 파견된 12명의 군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의 상황은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르지만 분명 같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편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밋치 넬슨(크리스 햄스워스 분)'은 9.11 테러를 보고 자신의 전우들과 다시금 전장으로 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겨지는 가족들에 대해서 넬슨은 '꼭 돌아오겠다'라는 다짐을 한다. 때문에 그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편지'조차 쓰지 않는다. 꼭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그에게 있었고, 그것이 용기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믿음이 있었다.


 용기는 그렇다. 마음속에 담겨 있으면서도 발휘되기 힘든 것이다.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용기에 믿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것은 어느 한쪽이라도 등을 돌린다면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내의 믿음은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군인의 아내'라는 것이 그녀의 수식어였다. 때문에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한번 물고, 남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전했다.


 또한 함께 움직이게 된, '도스툼 장군'과도 그는 서로 믿음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했다. 타지에서 느끼는 전쟁이 주는 긴장감은 신뢰에 큰 장애물이 될 터였다. 그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전쟁에서, 날카로워진 눈초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런 서로에게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가 아닌, 자신이 잃은 것들을 말하며 서로 같은 어깨선 위에 놓이는 것이 그들을 신뢰로 이어주었다. 도스툼 장군의 말에 넬슨은 불가능을 가능할 수 있도록 마음먹게 만들어주었으며, 서로를 동맹에서 전우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도스툼 장군이 발휘한 용기는 '선택적'였다. 함께 탈레반과 맞서 싸우지만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장군과의 '땅싸움'에 있어서 그의 용기는 불이 꺼질 뿐이었다. 그가 말한 가슴속 불꽃은 숫자들로 보이는 현실의 계산법에 의해서 빛을 잃는다. 그의 태도는 낯선 곳에서 보는 익숙한 모습일 수도 있다.


 인간은 일상을 휘어잡지 못하면 일상에게 잡아먹힌다. 분명 자신의 것이지만 일상에 갇혀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는 이러한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용기이다. 일탈을 꿈꾸지만, 용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쌓여가는 위시리스트 앞에서 현실의 안정을 바라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버린 현대에서 용기란 불필요한 요소로 치부해버리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더더욱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넬슨은 그곳에서 자신의 용기를 발휘한다. 냉정하게 상황을 계산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던 그는 '할 수 있다'로 무장하여 한없이 불리하기만 한 전투에 나서게 된다. 그에게 후퇴란 없었다. 반복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그는 전장으로 향했다. 변화를 위한 용기. 바로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울림에 솔직했을 뿐이다. 그것은 전쟁처럼 치열한 우리의 삶에서도 꼭 필요한 그것이다.



 상황은 분명 최악이었다. 9.11 테러라는 역사적으로도 손꼽히는 최악의 사태 이후에, 온갖 전투 화기로 무장한 몇만 명의 적군과 싸워야 했다. 영화 초반부에 꼭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은,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하는 영화적 장치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주인공 일행은 마치 복선을 제공하듯 불길한 농담들로 불안감을 제공한다. 때문에 전쟁이 주는 긴박한 상황은 이러한 영화적 요소들을 적절히 이용해 이야기 끝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용기'를 내세운다.


 긴장 속 유희. 그것은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일희일비로 간신히 일상을 이어간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전술적이기만 하다. 효율성을 따진다면 물론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겠지만, 아무리 길게 이어봐도 이대로는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정해져 있고,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갈 뿐이다. 똑같은 삶을 살면서 변화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란 굴레를 타개할 용기는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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