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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Feb 23. 2018

계절을 머금은 '괜찮아' 한마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귀하의 불합격 소식을 전하게 되어, 굉장히 유감으로...'


문장이 매섭게 핸드폰을 울렸다. 텅 빈 방 안에 홀로 앉아서 드러난 문장을 따라 찬찬히 눈을 옮긴다.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에 또 한 번 쌓인다. 문장이 짓눌러버린 마음은 온전한 형체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읽어보려 하지만,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을 떼 버린다. 테이블 위에 던지듯 핸드폰을 놓고는, 천장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이곳에 이사 올 때만 해도 텅 빈 천장을 꿈으로 가득 채웠지만, 지금은 무거운 공기와 함께 낮아진 하늘뿐이다.


속이 허하다.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걸어온 것만 같다. 쉴 새 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내뱉은 한숨이 차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밥도 먹질 않았다. 입맛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입맛이 돋아 밥을 먹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돼서, 흘러가는 세상에 마지못해 발맞추기 위해 밥을 먹게 되었다. 한 번은 편의점 도시락에 도전해 보았다. 밥 한 덩이를 목구멍에 밀어 넣어보았지만, 도통 넘어가질 않았다. 입 가득 가시가 돋아 밥을 뱉어버렸다. 덕분에 배는 줄곧 고파왔다.


그녀는 이 도시의 영원한 타인이었다. 거친 유화에 떨어진 파스텔 한 조각처럼, 억지로 선을 긋다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나를 품어줄 수 있는 곳. 그곳으로 향했다. 희미한 빛 속에서 연한 미소로 드러나는 내일을 맞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숲'으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는 그렇게 고향으로 향한 '혜원(김태리 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골의 한적한 풍경을 배경으로 요리와 감성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치열함은 노래되지 않는다. 언제나 다음 박자를 맞추기 위해 지금의 마디를 소모시킬 뿐이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치열함 사이에서 여유를 가졌다. 자연이 서로 음을 맞춰 요리란 화음이 되어 그녀의 빈 마디를 채워 주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박자 찾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 무엇도 재촉하지 않았다. 겨울날 눈 밭 위의 발자국 속에는 작은 그림자가 생겼다. 어두운 낯빛을 만들기엔 그 그림자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금 새길 필요도 없었다. 눈이 또 쌓이거나, 또는 눈이 녹아 발자국이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고향에서 다시금 겨울을 만난 그녀는 그러했다. 도시에는 잔뜩 후회를 남겨놓고 왔다. 빌딩 숲 안에서의 시간은 당장의 어제라도 후회를 남긴다. 그런 재촉뿐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또 하루를 바삐 살아간다. 발맞추지 못하면 곧 낙오와 실패라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배운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은 사실 모났을 뿐이다. 억지로 굴러가기에 사람들 마음에 구멍을 낸다. 혜원도 재하(류준열 분)도 그리고 우리도 마음에 구멍을 갖고 산다. 그것을 통해 속내가 터져 나오지 않도록 힘겹게 잡고 사는 것이, 이 시대 현대인들 모두의 삶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혜원과 재하는 깨달았다. 그것이 완벽한 거짓말이었음을.


도시는 우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유를 주는 척하면서 결국은 우리를 옭아맨다. 자유로운 구속. 그것은 매력적이다. 가능성으로 달아올랐다가 현실에 데인다. 그렇게 혜원과 재하는 도시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빛에 조금 더 민감해지고, 시간에 더욱 무력해진다. 잠들지 않는 콘크리트의 것보다 자연은 훨씬 계절에 대해 솔직하다. 숫자보단 색과 소리로 보여준다. 잠들지 않는 도시와 달리 언제나 시골의 밤은 고요함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더욱 크게 마음에 닿는다. 이렇게 혜원과 재하는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괜찮아'라는 말은 짧고 무겁다. 괜찮지 않다는 그 사실 위에 덮어쓰는 말이다. 몇 번이고 덧칠해보아도 그 투박함은 나아지지 않는다. 삐져나온 한숨 한토막이 다시금 가라앉은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런데도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뛰어가지 않아도, 천천히 걸어가도, 심지어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넘어져봤자 바닥이다. 다시금 발돋움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이다. 궂은 날씨에 쓰러진 벼들은 다시 세우면 되고, 가지 끝에 남은 사과는 더욱 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아냈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계절을 한 아름 담은 그곳이었다. 각각의 시간은 각자 그대로 온전히 놓여있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그 안에 놓여있었다. 어느 하나 잘못한 점 없이, 각자의 색 안에서 미소 지으며 빛을 마주할 수 있기에 포기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상한 속을 계속 짓이기며 살아갈 필요가 없었다. 혹자는 그녀의 삶이 아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영화는 '아주 심기'를 답으로 내놓았다.


먼 길을 돌아와도 괜찮다. 바로 뿌리내리기 힘겹다면, 한 번쯤 다른 길을 걷고 와도 좋다. 방황은 여행이 되고, 힘들어 쥔 주먹은 다짐이 된다. 겨울을 버텨낸 양파의 뿌리는 강해지기 마련이다. 힘들었다며 내뱉은 마지막 한숨이 눈을 녹이고 긴 뿌리로 자신만의 작은 숲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그렇게 우리를 위로한다. 따스한 봄이 이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는 지금 아주심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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