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몬태나'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어떤 철학적 의미를 담기 보다도 단순히 생명에게 적용시켰을 때, 이 문장은 더욱 무겁게 들려오는 듯하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죽음으로 맺어지는 수많은 이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의 형체 속에, 상실감이라는 구멍을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 묻어두고 살아가게 된다. 이따금씩 기억 속의 누군가와 마주할 때면, 구멍에선 막을 새도 없이 새어 나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 이런 구멍을 가득 안고 사는 한 남자가 있다.
스콧 쿠퍼 감독의 영화 '몬태나(원제 Hostiles)'에는 적과 불편한 동행을 하게 되는 '조셉(크리스천 베일 분)'이란 구멍투성이의 군인이 등장한다. 대위 직급의 그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떠나보낸 수많은 전우들이 그를 대신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원수와 함께 동행을 하라는 명령은 마음속 깊은 곳 간신히 시간으로 채웠던 구멍을 다시금 후벼 파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그와 함께 길을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가득 상실감을 안고 있다. 조셉에게선 명령서 앞 한 명 한 명 읊던 전우들의 이름을, 그리고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 부인에게선 텅 빈 눈동자로 사라진 생의 뒤안길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드넓은 땅 위에 그들의 행렬이 유일한 광경의 변화였고, 이러한 황량함은 그들이 마음속 깊이 느끼는 공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상실감의 표현을 철저히 절제한다. 울부짖는 조셉에게선 소리를 빼앗고, 로잘리의 복수는 적의 시체를 향해 내 꽂는 총알 몇 발로 대신한다. 이러한 상실감의 표현은 이야기가 한없이 우울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영화는 단순히 무법지대에 놓여있다는 사실보다도, 상실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텅 비어있는 대화가 더욱 분위기를 무겁게 한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화가 이어지지만 그 누구도 온전한 답을 내세우지 못한다. 이러한 내외적 혼란 속에서 이어지는 상실의 과정이 그들을 다시금 뒤덮고, 상실의 끝에서 각자 어떤 답을 찾았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슬픔'과 같은 잔류의 감정보다도, '확실함'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때문에 주인공 일행이 몬태나에 다다를수록 선명해지는 빈자리가 영화를 우울하게 만들기보단, 감정의 올가미에 감춰져 있던 정답을 향해 차근차근 다가가게 만든다.
영화는 그렇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눴지만, 그들은 같은 무대에서 똑같이 상실을 겪은 한 명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문에 영화 속 치열했던 전투는 조셉의 영웅담이 되지 못하고, 또 한 번 그가 안고 살아가야 할 구멍들로 남게 된다. 결국 마지막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그곳에서 마주한 질문은 다시 '사람', 그것도 바로 자기 자신으로 귀결되고 조셉은 한 가지 답을 내린다. 그제야 군인과 인디언 그리고 말과 총. 이 모든 것들이 영화의 내용을 이끌어가지만, 결국 불편한 동행 속 '사람들의 대화'들이 영화가 던지고자 했던 질문임을 마지막에서야 알게 된다.
사실 크리스천 베일과 군인의 조합이 이토록 인간적으로 다가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서툴게나마 액션 영화의 탈을 뒤집어쓴 휴먼 드라마를 이영화의 수식어로 붙여본다. 영화는 상실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몬태나로 간 이유는 더 이상 명령서와 같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한 이유가 조셉에게 있었고, 그리고 그것이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한 가지 대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몬태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