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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Apr 13. 2018

실패한 사랑의 연작,
그럼에도 주인공 그녀

영화 '렛 더 선샤인 인'을 보고

시사회를 통하여 관람하였습니다.


이자벨은 사랑을 원했다.


어느 갓 20대에 접어든 소녀의 설렘으로 충만한 소망이 아닌, 체념과 실망으로 얼룩진 모습이 그녀의 사랑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엔 순수함이 가득했다. 풋내기 소녀에게나 어울릴법한 가슴 뜨거운 사랑을 그녀는 원했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안타까워할지라도, 그녀의 매력은 충분히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그녀 주변에는 많은 남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맺음이 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딸도 있는 유부녀였고, 그녀의 남자들 또한 가정에 속해 삶의 경계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중년 로맨스는 막장이었다기 보단, 절박함이 더 어울리는 수식어가 될 수 있었다.


클레어 드니 감독의 '렛 더 선샤인 인'에서 이자벨(줄리엣 비노쉬 분)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중년의 여인이다. 수식어를 더 붙여봤자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완성한 그녀였지만, 어째서인지 사랑에서만큼은 구멍 투성이었다. 그 사랑은 어떠한 격정적인 사건 없이 단지 시간이란 불가항력에 의해 식어갈 뿐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다른 촉매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안정된 삶에서의 새로운 사랑의 태동은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것을 꺼트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불타기 바라며 길거리에서 주고받는 인사조차 가벼이 넘기지 않는 그녀였다.



사랑이 죄책감을 갖기 시작하면, 더욱 아프게 붉어질 뿐이다. 이자벨의 것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붉음이 그녀의 잿빛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뿜어냈다.

 

'불륜이 취미도 아니고'


이것이 그녀가 그리는 사랑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나와선 안 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환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랑을 더욱 환상적이게 만들었다. 현실이 환상적이지 않았던 만큼, 그녀에게 사랑은 더욱 빛났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불륜 상대의 배우자에게 들킨다거나, 겉과 속이 다른 사생활을 들킨다거나 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자벨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다. 복잡한 인간관계도 없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충분히 혼란스럽다. 사랑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자신이 놓여있는 현실의 자리를 계속 확인한다. 영화는 중년의 좌충우돌 판타지 싱글 라이프 속 크고 작은 해프닝 대신, 짧은 독백극으로 이어나가는 장면들이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사랑을 보여준다.



결말 부분의 십몇분에 해당되는 두 명의 고요한 대화는, 그동안의 쌓여왔던 의문을 단번에 해소함과 더 나아가 영화 내내 맘 졸이게 했던 이자벨의 사랑 시련들이 무색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영화 내내 그녀는 사랑을 제대로 맺지도 못하여 주인공으로서의 실격을 받은 것만 같았지만, 설렘을 또 한 번 안고서 앞으로 맞이할 운명이란 폭풍우에 또 한 번 주인공으로 나설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이자벨이 수없이 사랑에 상처받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설레는, 어쩌면 소모적이다고 생각될 수 있는 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사랑에게서 환상을 지우지 못하고, 여전히 또 누군가가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싶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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