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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y 06. 2018

사랑의 민낯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를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그려보았다.


아무리 선 하나에 신중을 가하더라도 어떻게든 어긋날 뿐이었다. 사랑을 완벽하게 매듭짓지 못한 곳에서는, 온갖 모진 말과 서로에 대한 날 선 시선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끝을 떠나지 못한다. 흐려진 펜 끝을 다시 이을수 있는 이유도 사랑이기에, 그들은 다시 또 한 번 사랑을 그려본다. 관계는 그렇게 이어지곤 한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득 담아 묘사할 때면, 그것은 이상적이기보단 이질적이고 낯선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란 것이 불완전한 개체임을 아무리 부정해보아도 마음속 깊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사랑의 대단함을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사랑의 환상이 아닌 현실만을 노래한 영화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한 번쯤 생각해봤을지도 모른다.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줄 영화가 여기 있다. 바로 '드레이크 도리머스'감독의 <라이크 크레이지>가 그것이다.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사랑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사랑은 조금 다르다. 스크린 속에서 깊숙이 꺼내서는 현실 속에 툭 던져놓고는 그대로 얼룩지는 것을 바라본 것만 같다.



미친 듯이(Like Crazy), 사랑을 수식하기에 이것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까 싶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한 명의 광인(狂人)이 되어 온 세상의 모든 것을 지우고 오롯이 상대방만을 내 중심에 놓는 것.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의 범주나 기준이 사랑에 휘둘려 무너지기도 한다. 몇 시간을 달려가 잠깐 얼굴을 보기도 하고,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도 없이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장면 뒤에는 현실의 대가가 찾아오곤 한다. 시간의 소모로 해야 할 스케줄을 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거나, 빗속에서의 대화가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할지도 모른다. 다른 영화에선 이러한 사랑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난관은 극적인 요소를 담아 아름답게 그려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영화의 위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요소를 담아, 로맨스 영화의 도구로써는 어쩌면 가장 건조한 모습으로 놓여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 졸이기보단, 고개를 끄덕이며 장면을 이어나가게 된다. 갈등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어떤 화려한 색채나 뜨거운 온도 없이, 비자·결혼·돈·직업과 같은 단어들로 얼룩진 현실의 근방에 놓여있는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사랑에 있어서 현실적인 방해물들은 어째서인지 머리로는 쉽게 납득이 가능하다. 사랑을 아무리 서술하더라도 현실 속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하단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만은 문제없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사랑엔 의심이 없다. '두 분의 사랑에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아요.'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랑을 계속해서 그려 나갈 수 있었다. 매듭을 짓지 못했기에 다시 한번 또 한 번 그려 나갔다. 조용한 방안 천장에 떠오르는 얼굴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한 문장으로 끊어지지 않은 관계는 다음 문장을 이어나갔고, 그것이 목소리가 되어 실존하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 한번 함께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함께라는 단어 속 그들은 어느새 각자의 현실을 마주 보며 서로를 등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뿐이었기에 그것만으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몇 번이고 덧칠한 사랑의 모습은 더 이상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어딘가 찢어지고 뭉개지고 멍들고 흉 지고. 미친 듯이 서로를 찾아온 그곳에서 사랑이라 믿었던 모습은 몇 번이고 무너지고 실패하고 부서졌다. 오랜만의 재회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들의 표정은 굳어져갔고 지난날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이 순간도 망가진 사랑 모양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실은 그들을 또 힘들게 할 것이었다. 불행히도 사랑은 그렇게 위대하지 않았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로맨스/멜로'이다. 영화는 여느 로맨스 영화와 다름없이 두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반(反) 로맨스'가 더욱 어울리리는 듯 싶다. 그토록 낭만적이지도 애틋하지도 않다. 오히려 탈색되는 사랑의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사랑의 민낯을 폭로하였다. 반전도 격정적인 장면도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른 맛이 난다. 밋밋하지만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만든다. 사랑은 불완전하다.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는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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