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마치, 투명한 분홍빛을 칠하려다가 내두르던 혀 끝에서 가시 돋친 탁색의 언어가 묻어 나온 것만 같은 그런 보라색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매직 캐슬' 주변의 온갖 불안 요소는 무니의 놀이터였고, 모텔이란 단기성 속에서 만남과 이별은 가벼운 인사만으로도 충분히 후련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철저히 외면당한 환상의 세계 변두리에서, 자신만의 자색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던 것이 무니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한 꺼풀 벗겨서 보면 분명 어른들의 세상이었다. 숫자와 법칙으로 얼룩져있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는 단지 미소와 치기 어린 투정이면 넘어가는 것들 뿐이다. 때문에 소녀의 타인에 대한 신고식은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무방비하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유쾌하여,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보다면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고 있을 터였다. 취기와 함께한 난동은 젊음의 현상이고, 먼 미래보단 시야가 닿는 오늘 하루 끝에 모든 걸 쏟아낸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모습들은 장난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고, 환하다 못해 투명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들의 미소는 모든 문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니는 오늘도 집 밖으로의 작은 여행길을 거침없이 내딛을 수 있게 된다.
헤일리(브리아 비 나이트 분)는 어쩌면 매직 캐슬에 꼭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환상과 현실의 틈에서, 그리고 어른과 아이의 사이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텔과 장기 투숙객이라는 이질감이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불안 요소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즐기며 지내는 그녀의 모습이, 부실하게 세워가는 탑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 가운데 무니는 만연한 미소로 서있었다.
헤일리가 성장통을 앓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녀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은 맛없는 햄버거를 먹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무니의 환한 미소와, 헤일리의 불안으로 뒤덮인 여린 환경은 모텔 매니저 바비(윌렘 데포 분)의 마음을 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완벽한 타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덕분에 보호자와 엇비슷한 모습이 되어버린 그였다. 관계의 모호성이 그녀들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었다. 너무 가깝지 않아 그녀의 잘못된 길을 응원해주지도 않았고, 너무 멀어 추락하는 그녀를 보고만 있지도 않았다.
불행히도 이러한 바비의 노력에도 그녀들은 환상의 세계에 영원이 갇혀 있을 순 없었다. 환상이 깨지는 모습을 영화는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해프닝이라고 속이는 영화 속 사건들은 순수함이 새어 나왔지만 분명한 씁쓸함으로 혀끝을 차게 만든다. 게다가 현실을 꽤나 정이 없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잔뜩 장착하고 다가와도, 그들의 펜 끝에서 갈라지는 모녀의 관계가 그들을 아프게 한다.
현실의 뒤편에 꼭꼭 숨겨놓았던 추잡한 장면들 정 가운데 무니가 서있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속인 세상 속에서 무니는 사실 무방비하게 놓여있었다. 그 세상은 색을 조금씩 바꿔서는 방화는 불구경이, 매춘은 수영복 놀이가 되어버린 무니의 세상이었다. 마치 얼룩진 콘크리트 위에 억지로 분홍색을 덧칠하여 보라색이 되었듯, 소녀의 세상은 지독한 현실의 악취를 가득 안고서 열심히 코를 틀어막고 있었을 뿐이다.
어른들은 그런 무니의 세상을 필사적으로 지켜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다독였지만 무니가 맞이하는 환상으로부터의 탈피는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꽤나 독한 성장통이었다. 그동안 불장난에 대한 환희가 무니의 것이었다. 어린 소녀의 눈 앞에 놓인 암담한 현실은, 솟아오른 불꽃처럼 따스하고 빛날 뿐이다. 그녀에게 온전한 세상은 완벽함을 저버리고 오히려 무너져 내렸을 때가 돼서야 진짜 세상이 될 수 있었다.
영화 내내 철없이 웃고 있던 무니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마주한 현실의 쓴 내를 한껏 느끼곤 울면서 현실 속으로 달려 나간다. 이젠 그곳이 온갖 환상으로 꾸며놓은 곳임을 알지만, 어린 소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그동안 지켜져 왔던 완벽한 세상의 벽은 무너져 내렸어도, 영화는 그녀가 지금 맞이하는 성장통이 진짜 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보여준다. 어쩌면 앞으로 그녀가 맞이할 세상은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다져진 마음은 몇 번이고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무니가 앞으로 맞이할 세상으로의 희망찬 여행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