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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y 30. 2018

마주한 현실에 내딛은 발걸음 하나

영화 '초행'을 보고



#0. 초행(初行)이었다.


 변명도 투정도 되지 못했다. 단지 이 단어가 서툰 발걸음에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었을 뿐이다. 시간이 재촉하여 간신히 뗀 발걸음은 지독하게 무거웠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소년과 소녀는 이젠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듯했다. 스스로 무력함을 한껏 비난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제자리에 머문 두 발 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쩍 하고 나오는 하품이 유독 밉다. 30대라는 나이 위에서 그들은 그렇게 버텨 서고 있었다.


 김대환 감독의 영화 '초행(The First Lap)'에서의 수현(조현철 분)과 지영(김새벽 분)은 오래된 연인이다. 오래된 만큼 결혼이란 것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술 강사와 방송국 계약직이란 현실은 결혼이란 단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함께라는 단어보다 결혼이란 단어는 훨씬 강렬한 현실의 채도를 갖고 있었다. 머릿속을 난자하는 여러 고민들은 결국 숫자의 형상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따뜻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은 결말이었지만, 그들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시작에 앞서 무방비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수현 : 고양이 키울까?
지영 : 우리가?
수현 : 어. 왜? 키울까?
지영 : 우리가?
수현 : 왜? 키우자.
(...)
지영 : 생리 안 해.
수현 : 진... 짜로?


#1. 우리가?


 몇 번이고 되물었을 질문이었다. '우리가?'라고 되묻는 지영의 목소리에 맞춰 현실은 무게는 점점 더 짙어져왔다. 고양이를 키우자는 수현의 말에 그녀는 다시금 서로의 자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억누른 고민 하나를 터뜨린다. 새 생명의 탄생을 마주한 그들은 마냥 설레고 행복해할 수 없었다. 대신 속으로 몇 번이고 '우리가?'라는 질문을 되뇌었을 것이다. 슬픈 대답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질문을.


 우리란 단어는 2인 3각과 같다. 서로의 발걸음을 확인하고 나아갈 거리를 맞춘다. 서로를 붙잡고 함께 나아가기에 서로 의지하며 더욱 강한 힘을 가진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서로의 박자가 익숙해질 때면,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지 않고도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넘어질 때도 함께이다. 지치거나 무너지거나. 멈춰있는 상대를 두고 혼자 나아가려 하다가는 상처 입고 말 것이다. 때문에 익숙한 만큼 조심해야 하는 관계가 바로 우리란 관계이다.


 그들이 천천히 내딛던 걸음은 돈·임신·나이 그리고 주변의 눈살에서 시작된 가파른 경사를 만났다. 그것은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에 가까웠다. 서둘러 내려간다면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 추락해버릴 것이었다. 가끔은 시계 초침이 너무 빠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열 번 중에 두어 번 정도 쉬어준다면 참으로 고맙겠지만,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기에 '다시'라는 기회조차 야박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느려질 뿐이었다.


수현 : 길을 몰라? 인천 살면서?
지영 : 나도 여기는 처음이니까...


#2. 길을 몰라


 단지 몰랐을 뿐이다. 그것은 무지(無知)가 아닌 서툶의 색이 짙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그들은 몰랐다. 그들이 향한 곳들은 모두 처음이었기에 그렇다. 그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다. 날 선 미움이 아닌 친절함 속 우러나오는 진심 가득한 걱정과 우려가 더욱 그들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들의 대답은 여전히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숨기거나 속이는 것이 아닌, 정말이지 순백의 색으로만 존재하는 머릿속 세상을 소리 내어 대답했던 것이었다.


 모른다라는 말은 그렇게 모든 질문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이어서 '왜 몰라?'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더라도 또 한 번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마치 무적의 대답처럼 들리는 이 대답은 사실 참으로 여리다. 불안감에 순응하고 불완전을 내포한다. 이후 찾아올지 모르는 책임은 온전히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의 것이다. 다른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 구멍조차 내지 않는 것이 바로 모른다라는 대답이다. 무방비하게 본인 스스로를 내비치기에 이 대답은 여리고 나약하다. 때문에 모른다라는 대답은 텅 빈 채로 어떠한 울림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른다는 것은 잘못됐을까?'. 위치를 바꿔 던진 질문은 다른 색을 띤다. 이 또한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모른다고 말이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답은 정답이 될 수 있다. 당장 내일로 다가오는 미래조차 정말이지 알 수 없다. 때문에 모른다라는 대답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초행이었으므로.


지영 : 나 너무 무서워!


#3. 나 너무 무서워!


 아름다운 일출 앞,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터져 나오듯 고백한 문장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았다. 무섭다는 말 하나가 좁은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메아리치는 듯했다. 그녀가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홀로 써보았던 문장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 무게는 상대에게 전해진다. 불안감의 표현은 감정의 해소로 이어진다. 감내하기 힘든 것들에 대해서의 의연함은 포기해버리는 것과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빛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무섭다는 외침이 보여주었다.


 마음 밖으로 꺼내놓지 않은 속내는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버린다. 가슴 한편에 웅덩이를 하나 마련해놓고 그 안에서 수백 번도 더 말해보지만, 구멍만 더욱 깊어지고 나중엔 본래의 문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다. 그렇게 털어내지 못하는 목소리가 만든 구멍을 하나씩 짊어지고 살아간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다 버티다 나온 문장은 더욱 어둡고 아플 것이다. 서둘러 내뱉고 싶어 지는 문장들이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영은 거침없이 내뱉었다. 부끄러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용감했다. 덕분에 마음의 구멍에 수현이라는 사람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또 한 발자국 걸어나갔다. 조금 느리고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치밀한 계획보단 '잘 하고 있어, 괜찮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더욱 필요했던 그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향한 곳은 희망으로 가득 찬 빛의 향연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또 한 번 웃고 어쩌면 한바탕 울기도 하고, 그렇게 함께 초행을 나설 것이기에.




초행 (2017)

The First Lap


드라마 | 한국

2017.12.07 개봉 | 100분, 12세 관람가


(감독) 김대환

(주연) 김새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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