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서울 환경영화제'를 참석하고
올해로 15번째로 막을 올리는 서울 환경영화제는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며, 다양한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더불어 여러 체험 프로그램과 GT(Green Talk)를 통한 감독님들과의 대화까지 마련되어, 영화 관람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자리들을 마련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영화를 몇 개 이곳에 소개하려 한다.
키리 바시의 방주 Anote's Ark (2018)
마티유 리츠 Matthieu RYTZ
키리바시는 적도지역에 있는 섬이다. 현재형으로 표현되는 이 섬은 이제 곧 과거형이 될지도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섬이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고, 역사 최초로 기후 변화에 의한 난민이란 수식어에 가장 가까운 국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물심양면으로 노력하는 키리바시 대통령인 아노테 통 대통령의 모습과 불가피한 선택으로 섬을 떠나온 한 여인의 모습을 담아내며 이 비극을 그려낸다.
시간이 갈수록 선택지는 적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평화롭기만 하던 섬에 불어닥친 이상기후에 의한 허리케인은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노테 통 대통령은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수영을 즐기는 아노테 통 대통령의 모습이 이 섬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보여준다. 환경에 대해 호소하고 국민들 이주를 위해 타국의 땅을 구매하는 그의 결정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키리바시를 떠나 뉴질랜드로 온 여인은 섬이 마냥 그립다. 섬을 떠나오고 그녀는 새 생명을 잉태했다. 새로운 생명은 엄마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만을 기억할 것이며, 키리바시를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미래는 철저히 과거와 격리되어 진행되기에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사랑하는 고향땅에서 자신의 아이를 기를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큰 비극일 테지만, 그녀는 더욱 굳세게 마음을 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그들의 싸움은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키리바시는 결코 끝이 아닌 비극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때문에 그들은 우리 모두의 시선과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아직 현실에서 끝나지 않았다.
요리의 여신들 The Goddesses of Food (2016)
베란 프레 디아니 Verane FREDIANI
영화는 세계 각국의 여러 여성 셰프들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동안의 여성의 공간으로 한정돼있던 부엌이란 공간은 이제야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와는 정 반대로 요식 업계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남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요리사 잡지'라고 검색하면 남자 요리사들이 주로 나온다는 것으로 보여준다. 관념과 산업이 별개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념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요식업계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들의 성별을 계산하여, 여성의 진출을 막고 있는 벽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더불어 여러 자리의 사람들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고 있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 여성 셰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산업 내의 잔존하는 편견, 고착화된 시스템.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며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그러다 영화는 '사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도 요리를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고 공부하는 여러 미래의 여성 셰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좋은 요리 앞에 성별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갖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모습은 남녀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 빛나고 있었다. 고리타분한 관념을 깨부수기 위해서 교육이나 산업 구조의 변화가 우선시 되기보단, 사람 그 자체로 시선을 옮겨 바라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그대 없이는 못 살아 Can't Live Without You (2017)
이명세 LEE Myung-Se
JTBC에서 진행했던 TV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서 만들어진 단편 영화들이 영화제를 꾸며주었다. 그중에서도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강렬한 색채로 기억된다. 두 명의 연인, 아니 어쩌면 그냥 스쳤을 우연한 만남. 그 두 명의 관계를 정의하기도 전에 둘은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서로를 향해 내뱉는 날 선 주먹들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빛이 흐르고 회전목마가 돌면 다시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하다. 그리고 다시 암흑이 찾아오면 다시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다.
사랑의 격정적인 순간들을 마치 의인화한 듯했다. 찰나의 순간으로 시작되어, 서로를 말 그대로 죽일 듯이 미워하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 잠재워진 감정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게 하지만, 사랑은 결코 쉽게 진정되지 않고 몇 번이고 날뛴다. 두 인물을 뒤흔드는 사랑이란 감정을 거부하지도 못한다. 계속해서 싸울 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간다. 누구 하나가 지쳐 쓰러지기도, 더욱 단단히 서로를 붙잡기도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대로 소멸하여 덩그러니 빨간 트렁크 하나만을 남겨놓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이었느냐면서.
랄라 랜드 Lala Land (2017)
이원석 Lee Won-Suk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 또한 '전체관람가'의 작품이다. B급 감성의 대표주자 이원석 감독의 연출은 주제를 잘 살리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거기에 '뮤지컬 영화'는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만들며, 건조하고 암울하게만 흘러갈 수 있는 영화의 내용을 흥겹게 만들었다. 어쩌면 B급의 B는 'Best'의 약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다.
영화와 현실 사이에 놓여 있는 두 명의 중년 배우는 화려한 과거의 명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그들의 자리는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트렌드에 맞게 힙합을 해야 하는 오디션을 향했다. 변해간 세상에 억지로 발걸음을 맞추며 나아가는 모습 속에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었다. 그동안 굳건히 지켜온 신념이 구식이 되어버린 순간에 그들은 현실의 벽에 막혀 또 한 번 무너지고 만다.
영화는 모든 지나간 것들을 위로한다. 시간은 불가항력이다.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누군가는 과거의 추억으로 하루를 이어가기도 할 것이다. 세상은 빠르기만 하고 돌아보면 불안한 마음 한가득의 자기 자신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영화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정답은 없다. 지나가면서 낳은 과거는 또 다른 누군가의 미래가 되고, 제자리에 앉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실컷 풀어나가도 괜찮다. 아직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아이엔쥐(ing)다. 랄라랜드가 특별한 이유는 그곳에 있다. 더 흥겨운 2절이 들어가기 전 간주 중일뿐이라며, 영화는 노래를 통해 그렇게 말한다.
'환경' 말고도 다양한 주제가 함께했던 영화들에 대해서, '그대 없이는 못 살아'에 출연했던 김설진 배우가 GT의 자리를 통해 말을 전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네요.
환경 영화제는 환경뿐만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을 두었다. 인간을 배제하고 환경을 말할 순 없었다.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인간들 사이의 유대감 또한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임을 상기시켜준다. 눈에 보이는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욕심이 한 조각씩 모인다면, 욕심이 아닌 희망과 이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더 나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