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Jul 01. 2018

삶의 끝, 쏘아올린 마지막 한 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보고

#0. 정리


 시작했기에 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그 진실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있게 한다. 더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끝이란 속성 하나 때문에 한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은 매우 큰 무게를 갖는다.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생명의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다.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간 찾아올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는 것뿐이다.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종교를 믿어 사후 세계에 정당성을 얻기도 하고, 어쩌면 의연하게 그 끝을 받아들이기도 어쩌면 마지막까지 부정한 채 분노로 가득 찬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여기 자신의 마지막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다. 미스터 모, '모금산(기주봉 분)'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웠고, 기다렸다면 기다려왔다. 그는 이미 자신의 아내의 빈자리를 둔 채 15년의 삶을 살아왔다. 시간의 흐름도 그것을 채우지 못했다는 듯이, 그의 달력은 15년 전 그날에 멈춰 있다. 그에게 죽음의 의미는 남달랐다. 이미 타인의 죽음에 자신의 삶을 실어 보내듯, 한 줌씩 자신의 삶을 잃어가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발사의 삶. 그리고 맞이하는 특별할 것 없는 병사(病死). 그것이 분명 원래의 시나리오였다.


내 시나리오다


#1. 시나리오


 모금산은 자신의 삶 마지막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써 내려갔다. 그것은 그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놨던 또 다른 '시 나리오'였다. 그의 아들 스데반(오정환 분)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스데반은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지독한 좌절감에 주저앉은 다리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미 아버지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있던 스데반에게, 아버지의 낯선 모습은 더욱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뿐이었다. 망설이는 그에게 모금산은 한마디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어야지!


 내뱉은 문장이 어쩌면 아버지다운 조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미한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 관계 속에서 그 문장은 허공을 울릴 뿐이었다. 스데반의 마음을 뒤흔들기엔 그의 머릿속 환상에 대한 믿음이, 현실의 색에 물든 지 오래였다. 그런 그에게 시나리오가 가져다주는 무게는 남달랐다. 부자(父子) 간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 영화감독이란 수식어와의 관계. 각자의 단어가 갖고 있는 거리감은 온전히 스데반을 짓눌렀다.


 이러한 거리감은 낯설지 않다. 모금산의 이발사와 영화 시나리오. 수영장 여인의 대화와 외로움. 어린 소년의 꿈인 경찰이 갖고 있는 돈과 정의란 이유. 꿈꾸던 이상과 눈앞의 현실. 우리도 그러한 거리감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리저리 재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때론 너무나도 확신이 들어 과감히 달려 나가기도, 어느 날엔 자신이 걸어가는 이 길이 한없이 불안하여 내민 손을 황급히 거두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공허하게 울린 아버지의 말은, 곱씹어볼수록 아쉬움을 가득 품은 향기가 서서히 퍼져나갔다.


왜 그러세요? 도대체 이거 찍어서 뭐하시려고요?


#2. 왜 그러세요?


 참으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던진 이 질문에 많은 대답이 생각났을 테지만, 아버지 모금산은 그저 숨을 한번 삼키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을 뿐이다. 이 문장 자체가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여전히 낯설기만 한, 가족이란 울타리 안의 타인. 어쩌면 질문은 위치를 바꾸어 스데반에게 '왜 그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스데반 역시 대답하지 못할 것이었다. 라는 질문이 그렇게 둘 사이에 커다란 벽이었다. 이해를 위한 과정이 결여된, 곧바로 대답에 도달하여 덩그러니 남겨진 단어만을 받아들이고 싶은 그런 관계였다.


 결론을 향해 가는 여정이 항상 달가운 것은 아니다. 때론 힘들기도 때론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과정 없는 결론은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지만,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 가운데 분명 대화가 필요하다. 영화는 흑백의 색조를 갖고 있다. 덕분에 그들이 나눈 대화는 더욱 뚜렷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각자의 대사가 선명한 음색으로 각자의 빈자리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대화는 특별하다. 음성을 향해 상대의 마음까지 닿는다. 눈짓이나 글과는 전혀 다른 울림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 겁이 나기도 하다. 내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소리는 곧 흩어져 사라지지만, 그 찰나에 담겨있던 감정은 단단히 각인된다. 그렇기에 목소리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두렵다고 피한다면, 내뱉지 못한 단어들이 고여 악취를 품겨 서로를 밀어내기만 할 것이다. 마치 모금산과 스데반처럼. 터지지 못하고 끝까지 품기만 하고선, 단어들이 투박하게 변해서는 힘들게 꺼내더라도 모질게 쏟아질 뿐이다.


불발(不發)


#3. 불발(不發)


 그는 마침내 영화를 완성했다. 삶의 끝을 준비하는 한 인간의 단막극. 마지막까지 자신을 폭발시킬 버튼을 누르지 못하다가, 마지막이 돼서야 결심한 듯 누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불발'.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도 그는 왠지 화가 나기만 하다. 마지막까지도 터지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듯, 안타까움에 쥐어짠 감정의 끄트머리가 보이는 듯했다. 그것이 그 자신이 만든 영화의,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한 삶의 끝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영화 속, 그리고 영화 밖 모금산을 조금 떨어져서 살펴보면 사실 꽤나 유쾌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에 충실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이 삶의 절정이 되었다. 상영회에 온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모금산을 기억하며 영화를 보았다. 스데반은 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예전 어릴 때 행복한 웃음과 뒤섞여 나오던 그 순간과 같이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침내 그동안의 시간의 간극을 뚫고 드디어 아버지 모금산에게 닿을 수 있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도 각자는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그의 삶은 불발이 아니었다. 15년 전 시간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그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모' 주변에 모였다. 모금산을 축복하듯 폭죽이 오직 그만을 위해서 하늘을 수놓았다. 불발인 줄 알았던 그의 삶은 결코 불발이 아니었다. 감정은 결국 터져 나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무성(無聲)의 영화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삶은 그렇게 끝을 이어간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과거 속에서 자신을 잃은 한 남자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누군가 다시 그의 삶을 묻는다면, 그는 자신 있게 마치 폭죽과 같이 화려한 빛과 같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2016)

Merry Christmas Mr. Mo


코미디 | 한국

2017.12.14 개봉 | 101분, 12세 관람가


(감독) 임대형

(주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매거진의 이전글 오목소녀, 악수(惡手)를 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