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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20. 2018

단지 '어느 가족'으로  남고싶었던 그들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0. 어느 가족


가족이란 단어는 참으로 아득하다. 분명 눈 앞에 있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 끝을 그리다 보면 단어는 현실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덩그러니 남겨졌다가도, 한 지붕 아래 느껴지는 체온이 육체적·심리적 분리를 부정한다. 가장 단순하게 보면, 각 개인에게 법적 영향력을 지닌 울타리 하나를 씌운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강력한 무언가가 무겁게 담겨있다. 그 무게가 앙금인지 책임감인지도 모를, 어쩌면 선택할 수 없었기에 참으로 피학적인 운명에 짓눌린 그 무게가.


 가족은 그렇게 만난다. 하늘이 맺어준 필연으로,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우연으로 연이 맺어진다. 여기 '어느 가족'이 있다. 앞선 고민들이 무색할 정도로 참으로 애정 넘치고 서로를 위하고, 그 모습이 조금은 일그러졌다고 해도 만발하는 웃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평범한 어느 가족이다. 할머니 한 명,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부부, 그의 아들과 가족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여동생 하나. 그런 그들에게 또 한 명의 가족이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 조금 망가졌지만


 썩 모범적인 가족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용직에 소매치기로 연명하고, 어머니는 세탁물의 분실물에서 직접 팁을 수급하기도 한다. 한 번쯤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살펴볼 법도 하지만, 당장의 눈앞의 하루가 고된 이들에겐 먼 미래는 사치인 듯싶다. 그래서 당장의 내일에 감사할 수 있었고, 더욱 필사적으로 오늘을 살 수 있었다. 그런 가족이었을 뿐이다. 처음에 이 가족을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은 곧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시대 소시민의 단상임을 알게 되고, 그 순간 마음속 은연중의 적의는 사르르 녹아버리게 된다.


 때문에 어린 소녀가 새로 가족이 되는 과정은 참으로 낯설면서도 동시에 친근하다. 그곳에는 망가짐의 미학이 담겨 있다. 완벽함을 부정했을 때, 오히려 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난다. 소녀에게 보인 인도적인 부름이나 처마 밑에서 훔쳐보는 불꽃놀이 같은 것들이, 얼기설기 모여있는 마음의 조각들의 틈 사이를 유연하게 채워준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삶이 느슨해지지만,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해주며 더욱 단단히 서로를 붙잡을 수 있게 해준다.


 한 번쯤은 생각해봄직한 가족이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잘못해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더 추해져도 된다. 밑바닥 행동이 자랑이 되고, 스스럼없이 자기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 덕분에 불안정하고 위태로울수 있지만, 이런 구조가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이 가족은 매력적이다. 어긋난 모양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기에 그들의 세상은 더욱 아름답다. 그들을 있는 힘껏 비난하더라도, 휘청이는 세상에 맞춰 비틀댈 뿐이라며 태연하게 웃을 가족들의 얼굴이 말문을 턱 하고 막을 것이다.



#2. 돈 때문이지?


 그들이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불행히도 가장 현실적인 것이 놓여있었다. 부부의 연을 잇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돈이라고 일침 겸 자문자답을 날리는 아키에게 오사무는 배시시 웃으며 미소로 대답한다. 딱 그 정도의 부끄러움이었다. 돈에 의한 좌절과 절망은 그들의 삶에선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것이 돼버렸다. 돈이란 것은 그렇다. 사람 사이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커다란 결속력이다.


  숫자는 이유가 없다. 가장 정확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가장 다루기 쉬우면서도, 가장 가슴 깊이 들어와 거칠게 마음을 난도질하기도 한다. 그렇게 수십 번이고 상처가 생기고 아물고를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은 탄력을 잃고 느슨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돈이 첫 문제가 아니게 된 이상, 후보로 올라갈 수 있는 것들은 꽤나 많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영영 배제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1순위에 돈이 놓이는 삶과 그 다음 순위들에 돈이 놓이는 삶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정말 큰 위기는, 이따금씩 1순위로 올라오는 돈의 모습이다. 이 가족에겐 번번히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돈은 뒷전으로 놓고 재밌게 살다가도, 수시로 돈이 그들의 삶에 그림자로 덮쳐올때는 한없이 무력하다. 돈이 감정을 이기고, 돈이 사람을 이긴다. 바닥에 내려앉아 허우적댄 손끝에 간신히 걸린 지폐 몇 장에 안심하고는 또 다시 허우적 댄다. 그렇게 이 가족에 대한 애정이 투터울 때 쯤, 아슬아슬했던 현실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3. 가족이지만 또한 개인


  한 가족안에 있다고 해서, 각자의 감정의 웅덩이가 같은 넓이와 깊이를 갖는것은 아니다. 가족 사이에 감정의 크기는 더욱 민감하게 작용되기도 한다. 더 자주 마주치는만큼 더 많은 감정의 교류가 생긴다. 그 가운데 실망도 아쉬움도 쌓이곤 한다. 그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순간 찾아온다. 가족의 일원이 영원한 타인으로 느껴지는, 아주 작고 미세한 이질적인 순간이 어렴풋이 찾아올 때 그것은 결코 작은 착각이 아니다.


 가족 각 구성원은 또 한명의 개인이다. 이 사실은 인지하는 것 보다도 적응이 필요하다. 가족이란 단체 안에서 행동 범주는 암묵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기준을 넘어 하나의 벽이 되기도 한다. 그때 처음으로 가족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정말 지극히도 정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 일원이 가족의 벽을 부수고 싶다고 생각을 할 경우 적잖은 충격을 받곤 한다.


 이것은 붕괴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의 도약이다. 지금의 가족이 영원히 한 집안에서 유지 될 수 없음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이 사실을 망설인다. 변화를 맞이하는 과정은 두렵거나 괴로운것이 아닌, 발전과 완성의 증명이기에 어쩌면 정말 기뻐할 일이다. 영화 속의 가족은 이러한 과정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 개인으로 시작한 가족이 결국 다시 개인으로 존재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다시금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을 덩그러니 남겨놓는다.

 



 영화는 대답을 제시하기보단 오히려 고민을 하게 만든다. 영화는 단순히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를 정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단출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낸 듯 싶으면서도, 그 가운데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와 각자의 사정과 그리고 각자의 인간상이 담겨있다. 여러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정답이나 진실을 원하는 않는듯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쉽사리 단어 하나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마치 그냥 제목 그대로 '어느 가족'으로 남아있고 싶은 것 처럼, 그냥 그렇게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다.




어느 가족 (2018)

Shoplifters, 万引き家族


드라마 | 일본


2018.07.26 개봉 | 121분,  일본 PG12등급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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