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실 비치에서>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서툴렀다. 사랑도 사람도 모든 것이 그랬다. 그래도 서툶을 빌려 풋풋하다 하였다. 젊음은 아주 훌륭한 면죄부였다. 그렇기에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다. 조금은 느리고 실수해도 괜찮다 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결혼식 당일,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 된 두 명은 그렇게 사랑의 서약을 맺고 방안에서 서로를 보았다.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함께라는 시간이 그들을 여기에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시간 이전에 한 개인으로 존재했던 시간들이 만들어낸 간극이 있었다. 함께 쉼표를 찍고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야 할 그 순간에, 서로 다른 앞선 문장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도미닉 쿡 감독의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결혼의 순간에 놓인 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에드워드(빌리 하울 분)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 분), 이 두 연인의 첫 모습은 참으로 풋풋하고 애틋하다. 어색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결혼식 첫날, 그들은 단어 그대로 '첫날'이었다.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상상해봤을 그 순간이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그 무게는 실로 남달랐다. 그들의 흔들림은 결국 설렘을 넘어섰다.
첫눈에 반했다. 서로를 본 순간 서로의 마음을 느꼈다. 마냥 편하기만 한 연애는 아니었다. 에드워드에게는 아픈 어머니가 있었다. 학위를 수석으로 취득하더라도 기뻐해주지 못하고, 그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제공하는 가족이란 이름에 난 차마 떼어버릴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처음엔 그녀를 일종의 도피처로, 그 구멍에서 시선을 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녀는 그를 이해해주었다. 첫 만남부터 보여준 그녀의 능숙함은 분명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이해의 길이는 서로 달랐다.
이해는 배려가 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연장선으로 배려 또한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를 구하지 않고 먼저 배려받기를 원한다면, 분명한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해는 사랑의 시작 단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여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결혼이란 것은 또 다른 이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영화 초반 그들의 서툴렀던 '결혼 첫날'은 미소를 자아낼 정도로 풋풋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영화는 서로가 나눈 추억과 각자의 기억을 번갈아 보여준다. 장면이 쌓이고 쌓여 다시 결혼식 당일로 돌아왔을 땐, 스크린엔 불안감만이 가득하다. 불안감이 현실이 될 때, 역시나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추억은 아름답기만 했다. 이것은 불행이었다. 정말 좋았던 기억밖에 없었기에 서로의 아픔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
사랑은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상처를 꼭꼭 숨긴다면, 사랑은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상처를 서둘러 내밀었다간, 상대방에게 그 무게를 무책임하게 떠넘길 수도 있다. 때문에 '적당한 때'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서로 꼭 같은 건 아니다. 때문에 결혼보다도 상처는 더 늦게 드러날 수 있다. 플로렌스는 그때를 미루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에드워드는 코앞에서 마주한 그녀의 상처로부터 사랑의 완성을 부정당했고, 플로렌스는 이해보다도 먼저 배려해주길 원했기에 둘은 결국 서로 등을 돌렸다.
결국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의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주연에서 한순간에 조연이 되어버렸다. 제삼자가 되어 살펴본 그녀는 너무나도 완벽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는 단순히 진짜 남자 주인공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순간이라도 그를 사랑했기에, 몇 번이고 다시 돌아봤을 시행착오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시점에선 영원한 실수로, 이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녀가 남았다.
사랑은 서로에게 그렇게 남았다. 진심을 다했기에 가뿐히 넘겨버릴 사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미련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한번 더'는 없었다.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사랑이 흘러가는 시간은 달랐다.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이 참으로 꼭 맞다.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지만, 서로 사랑한다면 마침내 한 점으로 모여 완성될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운은 진하게 남는다.
사실 모든 사랑의 끝에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는 '한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에 완성되지 않은 사랑의 모양을 보고 실망하여 서둘러 가져간다면, 그 날카로움에 찔려 상처가 남을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그 순간을 보여준다. 그들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수도 없이 놓쳐왔을 그 순간이다. 그 순간 한 번 더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에 여유를 더했다면 어쩌면 그녀를 매일 아침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평생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녀를 말이다.
2018.09.20 개봉 예정 | 110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도미닉 쿡
(주연) 시얼샤 로넌, 빌리 하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