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향수>에서 찾아낸 인간적 순수함
향수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인에게 각자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를 원한다. 이는 곧 치장으로 이어져 여러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그것의 방법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향기'이다. 후각은 꽤나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덕분에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것들 중 하나로 좋은 향기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몸 자체에서 좋은 향기를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향수'이다.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면서 자신을 후각적으로 표현한다. 어떤 향수를 뿌리느냐에 따라, 약간은 매콤한 향기로 시크한 도시인이 될 수도 있고 때론 봄 향기를 몰고 오는 따스한 여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후각적인 요소는 우리에게 중요한 표현법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향수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 때가 있었다. 18세기의 프랑스, 온갖 악취가 진동하던 그때에 엄청난 후각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결여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며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청난 후각이었다. 그는 단순히 냄새를 구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냄새들을 알고 싶어 했다. 냄새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를 한 여인으로 이끌게 된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고 좋은 향기를 갖고 있었다. 그르누이는 그 향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실수로 그 여인을 살해하게 되면서 기회를 영영 잃게 된다. 그리고 그는 수 세페 발디니의 향수 집에서 일하며 향기를 가두는 법을 배우게 되고, 더 큰 배움을 얻기 위해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그라스로 길을 떠나게 된다.
이동을 하던 중에 그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대사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존재하는 것의 영혼은 향기다.(the soul of being is their scent.)' 즉 그르누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며 무취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으로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결여된 것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성격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고, 흔히들 말하는 재능이나 어떤 분야에서의 지적 능력 또는 운동신경 등 여러 부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비어있는 그 부분을 채우길 원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그르누이도 그러했다.
그는 자신에게 결여된 향기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세상에 증명해 보이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그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에게 살해 된 사람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이 희생으로 표현된 방법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
그는 냄새가 없었기 때문에 자취를 남길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죽음으로써 끝마치게 하여 그조차도 남기지 않게 했다. 그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르누이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고, 이는 그를 더욱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영화에서는 그르누이의 인생에 희생된 것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희생인 죽음을 사용하였다. 영화의 부제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살인자라는 것이 단순히 그가 행한 살인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한다. 그것들은 자의적인 희생들과 그 외의 희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의적인 희생들에는 자신의 시간이나 돈과 같은 내부적으로 소비되는 것들이다. 반면에 그 외의 희생들은 타인과의 관계 등 외부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같은 타인이 자신의 내부적인 것들을 희생시켜 '나'에게 주는 도움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외부적인 요소들에 대해 꽤나 관대한 태도를 취하곤 한다. 영화에서는 그르누이 자의에 의해 발생한 희생과 그 외의 희생들을 죽음이라는 것을 결과로 사용해 두개의 가치를 동등하게 놓았다.
이러한 희생의 결과로,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결여된 향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하지만 곧 그르누이는 진정 자신이 원하던 것은 향기가 아녔음을 깨닫는다.
사랑
그가 13명의 여자들을 희생시켜 만든 향수는 파괴적인 힘을 가져왔다. 결국 살인죄로 잡힌 그르누이는 처형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사형대로 나온 그르누이의 모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사람들의 보좌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향수로 사람들을 매혹시킨 것이었다. 그의 향수는 특별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여인들을 희생시켜 만든 '사랑'의 결정체였다. 때문에 그의 향수에 매료된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그것을 확인했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힘을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로 만들 수 있는 힘으로 묘사하며 그것의 가치를 말해준다.
그때 그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향기가 아닌 사랑이었다는 것을, 처음 그가 원했던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살인자와 인간의 순수성
영화에서 향기가 담긴 스카프를 던지자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그 스카프를 쫓았다. 그것을 본 그르누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향기는 허울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향수는 사랑받았지만 그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르누이는 자신이 희생시킨 여인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들 때, 기꺼이 손을 벌리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처벌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아버지도 그가 만든 향기에 그르누이를 죽이지 못한다. 그르누이는 자신이 만든 허울에 올바른 심판도 받지 못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르누이는 결국 살아남아버렸고, 그는 세상을 굴복시킬만한 사랑이라는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르누이가 향한 곳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었다. 그곳은 그르누이가 애정이라는 것을 받지 못한 장소였다. 결국 그르누이는 스스로에게 향수를 부어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랑이란 감정을 처음 표현하였고, 이것은 성욕이 아닌 감정이 결여된 식욕으로 표현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의 최후를 보고 드는 감정은 안도나 기쁨은 아니다. 여기서 영화의 초점은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살인 모습이나, 그의 광기 어린 행동들이 아녔음을 보여준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그의 모습에게서 '인간의 순수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영화의 겉에 드러나있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그의 모습은 살인을 저지르며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처럼 그르누이가 한 행동들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방법들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조금 깊숙이 살펴보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결여된 냄새와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의 모습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 그는 사랑이라는 그 무엇보다 숭고한 가치를 추구했다. 영화는 그르누이를 통해 부제인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속에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녹여냈다. 때문에 그의 최후는 슬픔을 넘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바쁜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그르누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사랑이라는 것도 요즘 시대에는 사치라고 불리곤 한다. 때문에 영화 '향수'에서 나온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찾기 위한, 순수한 마음을 보여준 그르누이의 삶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현재 타인의 시선들에 사로잡혀 짜맞춰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삶과 자신의 순백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그르누이의 '인간적 순수함' 사이에서 무엇이 더 '인간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진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