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땅은 이곳에 있다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에서 찾은 '희망'의 의미

by 나호정
생존


현재 생존이라고 한다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하지만 과거 문명이라는 것이 이 세계에 정착되지 않았을 때, 불안이 도래하던 시대에는 생존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목숨을 지키는 것과 결부됐다. 그 시기에는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자신의 것을 사력을 다해 지켜야 했다. 이 장면들은 머릿속에 아주 옛날의 모습으로 상상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모습뿐만이 아니다. SF 장르 내에서는 예전부터 미래의 모습을 이러한 요소들로 가득 채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을 내세워 인간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아 그 안에서 인간이 비인간적인 모습이 정상이 되는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 소개할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에서도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중에서도 핵전쟁으로 인한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민다.





핵전쟁 이후 문명사회를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자원이 곧 권력과 힘이 되는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중에서도 물과 기름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는 '임모탄'이 이러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대자로 나온다. 임탄은 사람들에게 '물에 중독되지 말아라. 그것이 없어졌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물을 폭포수처럼 뿌린다. 이것은 임모탄의 권력이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며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물에 대한 중독의 현상은 오히려 권력에 취한 자신을 향한 경고의 말이었음을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알 수 있다.


그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인간의 가치를 단순 사용가치로만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사회 구조 내에서 애를 낳거나, 모유를 생산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가리켜 물건이라고 칭하고, 주인공인 맥스에게도 '피주머니'라고 하며 단순히 수혈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모습이 나온다. 이러한 사용가치의 개념은 순전히 물건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에서는 사람이란 존재를 소모품으로 여기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수용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영화 속 세계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이면 속에서도 이러한 권력을 앞세워 사람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권력과 힘을 내세워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현대의 많은 사례들이 영화 속 장면들을 낯설지만은 않게 만든다. 임모탄은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극도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모습들을 영화에서는 임모탄이 내뱉는 반 인륜적인 말들로 보여준다.


맹신


이러한 그에 대한 사람들의 맹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절망적인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는 보통 사람들과, 그에게 도움을 받고 목숨을 다 바쳐 싸울 수 있는 '워보이'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워보이들의 임모탄에 대한 믿음은 꽤나 광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는 황폐화된 세계에서 절망만을 맛보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는 병이 들어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한 상태에서 절대자라는 단어는 매우 신뢰를 주는 단어였고, 그들은 임모탄을 맹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모습은 과거의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의학적, 기술적으로 발전이 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꽤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영화 속에서 임모탄의 역할은 종교라는 것이 대신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임모탄과 종교는 엄연히 다르다. 종교는 정신적 가치를 앞세워 많은 사람들의 신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임모탄은 자원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우선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념은 다소 가식적이고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임모탄에 대한 잘못된 신앙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임모탄의 죽음 앞에서 보이는 사람들과 그를 맹신했던 워보이들의 모습에서 슬픔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생존만을 목표로 살아간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임탄의 다섯 아내들과 희망의 상징인 '녹색의 땅 (The Green Place of the Many Mothers)'으로 향한다.


희망과 구원


퓨리오사에게 녹색의 땅은 그녀의 고향이자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품고 있었던 희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녹색의 땅은 이미 황폐화되어 영화 중반의 까마귀와 기괴한 모습의 장대 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보여진다. 그렇게 희망은 사라진 것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퓨리오사의 고향 사람인 한 노파가 갖고 온 씨앗이었다. 영화에서 총알을 '죽음의 씨앗'으로 비유한 것과는 달리, 고향 사람이 보여준 것은 '진짜 씨앗'으로 새로운 희망을 뜻했다. 후에 임탄의 부인이었던 은발의 여자는 그것을 영화 후반에서 그것을 챙겨가는 것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희망을 새로운 시대에 무사히 전달한 노파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미소로 가득했다.


퓨리오사는 희망을 품었던 것과 동시에 또 다른 것을 원했다. 바로 그것은 구원이었다. 과거 혼돈의 시대에서 종교의 힘을 빌려 추구했던 구원이라는 것을 퓨리오사는 근미래 속에서 원했다. 그녀에게 희망을 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던 맥스는 또 다른 제안을 한다. 바로 그들이 도망쳐온 도시인 시타델을 빼앗자고 한다. 이것은 구원이란 단어를 빌려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임탄을 죽음으로 내몰며 구원을 일궈냈다. 그리고 퓨리오사는 몰랐지만 씨앗을 통해 희망 또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인간다움


영화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같은 단어와 모습으로 다른 뜻을 전달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눈에 도드라지게 보인 것은 워보이 눅스의 모습이다. 처음에 '기억해줘!(Witness me!)'라고 말하며 임모 탄에 대한 잘못된 신념으로 죽음을 두려워않고 전투에 임한다. 그가 말한 '기억해줘!'라는 말에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도구로 쓰인 것에 대한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잔잔한 위로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희생을 하며 죽음의 문턱 앞에서 또 한 번 저 문장을 말한다. 여기에는 그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눅스는 자신이 죽음을 통해 반할라(천국)로 갈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며 절망하고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듯 보인다. 하지만 임모 탄의 부인 중 한 명인 케이퍼블은 그런 그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며 이해와 공감을 통해 워보이로서 단순히 도구로만 여겨졌던 그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되는 것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임을 보여준다. 시각적으로도 초반 새하얀 색의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멀었던 그의 피부는 어느새 분홍이 맴도는 살색의 빛을 띠며 인간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맥스의 모습에서도 이런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초반 피주머니라고 불리며 수혈을 해주는 도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맥스는 후반 퓨리오사가 과다 출혈로 죽음 앞에 섰을 때, 수혈하는 것을 자처하고 퓨리오사를 구해낸다. 험난한 여행 과정 중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인간적 교감을 통해, 처음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기를 서슴지 않았던 모습에서 이렇게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는 사이가 된 것이다. 즉,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공감해주고 이해해줄 때 마침내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인 '매드 맥스'의 주인공 맥스는 유독 영화에서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도 맥스는 군중 속으로 사라지며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엄청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 아닌, 단지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들 중 누구라도 맥스와 같이 한 시대를 바꿔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승강기를 들어 올리고 물을 뿌리는 사람은 더 이상 독재자 임모탄이 아니었다. 그리고 승강기에 오르는 사람들도 어떤 대단한 사람이 아닌 그 누구라도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퓨리오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녹색의 땅'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는 질문 하나를 드러내며 끝을 마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답은 영화를 본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최초의 역사가 (The First History Man)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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