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진실 속 정의(正義)의 시작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찾아낸 '정의'의 의미

by 나호정

현대의 세상은 정의(正義)에 의해 존속되고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지만 그것이 마치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다. 과거부터 논란이 되온 '일본 위안부 문제'나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등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보이지만 끝끝내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들의 분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이념을 잃고 권력에 이용당해 진실을 감추는 세상이 되는 것이 비현실적인 얘기만은 아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명의 영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Daum Movie


정의(正義, Justice)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에서는 DC 유니버스의 간판스타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과 슈퍼맨을 등장시켜 영화의 포문을 열었다. 둘은 모두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달랐다. 배트맨에게 정의는 외부적인 완전한 악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초반 브루스 웨인의 어릴 적 모습을 빌려, 범죄에 의해 자신의 어머니를 잃고 어둠 속으로 떨어진 그를 박쥐들이 빛으로 인도해주는 모습을 넣었다. 그것은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에게 있어서 스스로에게 행하는 하나의 구원의 방법이자, 어둠 속에 사는 박쥐를 통해 그는 세상의 뒤편에서 범죄자를 벌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을 가진 슈퍼맨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마찬가지로 정의를 추구하지만 그에게서는 외부적인 악을 제거하면서 정의를 추구하는 배트맨과는 다르게, 내면적 선함에 의해에 의해 그것을 추구한다. 또한 그는 사랑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말하며 배트맨과는 다른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두 명의 상반된 모습으로 정의에 다가서는 방법을 보여준다. 방향은 다르더라도 둘은 충분히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손을 내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다. 때문에 서로를 확인하는 것은 언론에 의한 방법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영화에서의 언론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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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민주주의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세상의 여러 현상을 면밀하게 보여줘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언론은 그러지 않다. 한없이 왜곡된 진실을 그려내고 진실에 다가가지 않으려 위험하다는 핑계를 빌려 애써 외면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언론이 초반에 갖고 있던 창립 이념은 과거의 잔여물로만 여기며 철저히 무시한다. 올바르지 못한 언론의 모습은 비단 영화 속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상황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유일하게 진실을 파헤칠 수 있었던 열쇠인 민주주의는 '렉스 루터'라는 잘못된 사상과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악인(惡人)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지게 된다. 영화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순간에 폭발이라는 극단적인 연출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였다.


이렇게 언론과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진실을 구해낼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는 언론에 의해 온갖 거짓으로 얼룩진 꼬리표들로 가득 찬 두 명의 영웅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들은 역시 꾸며진 언론에 의해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고, 결국 정의를 추구하는 목적은 같지만 방법에 있어서 대립하여 싸움이 일어났다. 양립할 수 없었듯 보였던 둘의 가치관은 어떤 가치에 의해 하나가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류애(人類愛)적 공감(共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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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人類愛)적 공감(共感)

영화에서 슈퍼맨은 신으로 일컬어지며 거대한 동상까지 세워질 정도로 추양을 받는 인물이다. 전지전능하다고 생각되는 신인 슈퍼맨은 설정상 외계인일 뿐이며 신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는 그의 초월적인 힘을 경계하며 무조건적 선함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또한 언론에 의해 왜곡된 슈퍼맨의 모습에서 그의 선함을 의심한다. 영화는 그런 브루스 웨인에게 아버지와의 상상 속의 대화를 통해, 영웅이 되기에 필요한 것은 브루스의 어머니(마샤 웨인)가 가르쳐준 선함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됨을 말해준다. 그리고 후에 둘의 싸움에서 슈퍼맨이 결정적인 순간에서 배트맨의 어머니와 동명인 슈퍼맨의 어머니의 이름인 '마샤'를 말하며 둘의 관계는 개선된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만 여기기엔 그것이 가져다준 의미가 꽤 크다. 그 둘을 이어준 마샤를 통해 슈퍼맨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배트맨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배트맨은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알려준 선함에 대한 믿음을 상기시켜 슈퍼맨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선하다'라는데서 비롯된 인류애는 둘을 오해에서 벗어나 진실로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열쇠의 역할을 한 것이다.


악인인 렉스 루터는 파괴된 정의에서 비롯된 증오로 가득 찬 악을 탄생시키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것은 '둠스데이'라고 불리는 괴물로 그려지는데. 그 이름이 가진 뜻은 '죽음의 날'이 된다. 이것은 세상에 진실이 묻히고 정의란 것이 사라질 때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인류애적 공감을 통해 하나가 되어 마침내 정의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고, 둠스데이를 물리치게 된다. 이렇듯 정의는 승리하고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슈퍼맨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표현은 왜곡된 것이 아닌, '공포의 밤, 상실의 아침'이 되어 슈퍼맨의 죽음을 상실로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언론은 악인이었던 렉스 루터가 국회의사당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을 기사로 내며 마침내 진실된, 다시 말해 참된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영화에서의 몇몇 상황들은 낯설지가 않다. 언론이 조작되고 진실이 왜곡되며, 그사이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진실들에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어떤 큰 일이 아니다. 인류애적 공감을 발휘하여 힘이 약한 편에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은 묻히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인류애가 추구하는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마침내 옳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상의 방향을 바꾸어 '저스티스(정의)의 시작'을 이룩할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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