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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단어 속 포기

불행의 세대, 청춘의 자세

by 나호정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과거부터 많은 단어들이 젊은 층의 세대를 대표하곤 했다. 90년대의 ‘X세대’, 2000년대의 ‘N세대’가 그 사례다. 이 단어들은 이전 기성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거나 컴퓨터의 보급으로 펼쳐진 정보화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그렇다면 2016년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그 답은, 불행히도, ‘N포세대(世代)’라고 할 수 있겠다. ‘N개의 것들을 포기했다’라는 뜻의 N포세대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청년층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단어가 한 세대를 대표하는 말이 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세대라는 거대한 단어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은 존재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덕분에 우리는 ‘N포세대’라는 단어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된다.한 세대 집단을 나타내는 단어의 등장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변별성을 보여줄 뿐 만 아니라 해당 세대 젊은이들의 무비판적인 수용과 은연의 소속감을 함축, 형성하기도 한다. 불안이 도래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지금의 N포세대 역시 그러하다. N포세대의 시작은 3포세대부터였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는 인간관계 형성과 사회 유지의 필수적 요소들을 포기 대상으로 둔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포기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들불처럼 번져나가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5포세대의 등장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이제는 건강, 외모관리등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전포 세대(全抛世代)라는 단어까지 낳기에 이르렀다.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포기하는 것을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닌 단순한 현상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나의 어려움을 세대와 공유한다는 거짓된 안도감 에 사로잡혀 N포세대라는 단어에 대한 저항감 없이 이 단어를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로 너무나 쉽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단어의 힘은 대단하다. 한 때 이슈가 되었던, 국립국어원에서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의 ‘연인(戀人)’ 항목 의미변화가 좋은 사례다. 당시 이 항목의 의미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으로 변경되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점은 단어가 지니는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단어가 힘을 갖는다면, 그것의 부정적 영향력 또한 긍정적 영향력만큼이나 상당할 것이다.

우리가 현대사회 최악의 단편상을 보여주는 N포세대와 같은 단어들을 무력하게 수용하기 보다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경계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대의 문제점을 수용하지 말고 그것을 직면하고 개선해나가려 움직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상적인 변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 N포세대라는 단어를 과거 한 때의 시대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학주보 2016.05.09에 기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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