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빅토리'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찾은 '진실의 힘'

by 나호정

2016년 3월 2일 대한민국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었다.


많은 논란과 함께하던 테러방지법은 문구의 모호함을 거들어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낳았고, 이는 9일간 이어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끝으로 3월 2일 통과되었다.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조사권 또는 추적권을 국가정보원에게 부여한다는 법안의 내용은, 악용될 경우 무고한 시민의 기본 인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만들었다. 이러한 테러방지법은 아직까지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여전한 논란거리이다. 또한, 작년 말에는 '복면 시위 금지법'의 법안이 상정되었다. 시위 중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가면을 포함한 복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 법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러한 법안이 상정되었으며 또한 사람들이 우려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0년 전 하나의 영화가 개봉했다. 현재의 논란거리인 기본권 침해와 가면 두 가지의 키워드를 모두 포함한 채,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회상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직역하자면 '피의 복수를 위한 V'가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피의 복수(Vendetta)는 무엇일까. 영화는 1605년 영국에서 일어난 화약 음모 사건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사람이 아닌 신념을 기억하라.


1605년 11월 5일, '가이 포크스'는 당시 영국의 의사당을 폭파시키려다 실패한다. 당시 영국의 왕인 제임스 1세의 암살 계획을 세우던 가이 포크스는 계획 시작단계 잡혀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에 있어 가이 포크스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 영국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11월 5일이 되면 폭죽과 함께 축제가 열리곤 한다. 그는 어찌 보면 하나의 테러 미수범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현장에서 체포당한 후 고문을 받다가 처형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여러 사람이 뜻을 기리는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신념에 있었다.


믿을 신(信), 생각할 염(念)이 합쳐져 만든 단어로 '굳게 믿는 마음'을 뜻한다. 믿다, 생각하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가진 두 어가 갖고 온 것은 단지 추상적이다라는 개념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상이 되며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칠 수 있게 된다. 과거 여러 위인들이 남긴 신념들이 책을 포함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세상 곳곳에서 뜻을 전하며 여전히 그들의 길을 이어가고 있고, 한 사람에게 있어 그 단어는 자랑스럽기도 어쩌면 무겁기도 한 가히 가볍게 넘겨짚어 생각할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가이 포크스 '한 개인이 한 나라를 상대로 싸울 수 있다.'라는 신념을 남겼고,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된다.


그의 신념을 다시금 주목받게 한 사회적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영화에서는 극단적으로 통제된 세상을 보여주며,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혼란이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통금시간에 맞춰 정해진 시간 외엔 밖을 돌아다닐 수 없으며, 이를 통제하는 공권력 또한 자신들의 권력을 악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까지 나오게 된다. 자국민들에 대한 도청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아닌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다. 겉보기에는 질서 정연한 고요의 사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재되어있는 혼란의 도화선에 차마 불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 불을 지피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 'V'이다.


이 마스크는 값싼 허영심이 아닌 자취를 감춰버린 여론을 상징하며, 또한 과거의 분노를 상기시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국민을 탄압하는 사악한 벌레들을 멸할 도구지.


자신을 '브이(V)(휴고 위빙 분)'라고 소개한 그는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가 착용한 가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가이 포크스가 남긴 신념' 쫓고 있었다. 온갖 거짓으로 대중들을 선동하고, 사실과 다른 달콤한 언행으로 잘못된 사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국가의 주요 일이 된 영국 사회에서 그는 진실을 보여주려 했다. 파우스트의 글귀에서 따온 그의 좌우명 '나는 진실의 힘으로 생전에 세상을 정복했다.(Vi Veri Veniversum Vivus Vici.)'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진실의 힘을 믿고 있었다. 진실이 정의(正義)안에 놓여있고, 그것이 세상 밖에 꾸밈없이 드러날 수 있을 때 세상을 정복할 만큼의 거대한 힘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정의의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브이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위해 행한 재판소 폭발 사건은 정부에 주도하에 단지 붕괴 위험성이 있는 건물의 재건축을 위한 갑작스러운 선택이었다는 거짓으로 감춰진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것을 바로 잡아줄 하나의 역할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언론이라고 불리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대표적인 언론 매체인 방송국은 많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책임감 또한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언론은 그렇지 않다.


이비 : 당신한텐 모든 게 장난이에요?
고든 : 중요한 문제만!
이비 : 체포되면요?
고든 : 그럴 일 없어, 의장한테 사과하고 자선행사를 하면 돼. 시청률은 치솟겠지. 걱정할 거 없어.


영화 내의 대표적인 TV 방송국인 BTN의 인기 방송 진행자인 고든(시티븐 프라이 분)의 모습은 타락한 방송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브이가 방송국을 침입해 사람들에게 전했던 진실을 담은 메시지는 단순히 그에게 방송의 소재일 뿐이며, 중요시 여기지 않고 있다. 방송인과 공인으로서 그가 행했어야 하는 모습은 이러한 시청률만을 바라보며 사건의 진실을 감추고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렇듯 언론이 단순 시청률과 조회수만을 늘리기 위해 사건의 전말을 단순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모습은 영화 밖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안산 토막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히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범인의 평범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많은 언론의 제목들이 이에 주목한 듯 평범한 외모나 멀쩡한 외모로 칭하면서 기사를 기재했다. 이러한 기사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사건의 전말이나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상황과는 동떨어진 채, 사건을 단순 이야깃거리로만 여기게 되곤 한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언론의 모습에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는 어이없어하고, 브이는 자신의 진정성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에 대해 분노한다.


결국 고든은 통과되지 않은 방송에서, 영국의 독재자이자 의장인 아담 서틀러(존 하트 분)를 희화화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게 된다. 이비 또한 끌려가게 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다른 어떤 것과 싸우게 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브이는 이런 말을 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이 말은 아직도 화자 되며 여전히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흘러 현대에 들어와서 글 초반에 서술한 일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문장이다. 내재된 혼란의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두려움에 의해 행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 영화는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끌려간 이비가 맞이한 것은 이러한 두려움이었다. 지하 감옥에서 브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납치범에게 온갖 고문을 당하지만 끝끝내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지하감옥 구석에 숨겨져 있던 편지를 통해 '발레리(나타샤 위그트만 분)'란 인물의 삶에 대해 알게 된다. 그것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하게 무너뜨린 현 정부의 진실이 담겨 있었고, 편지 마지막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지는 사랑을 담아 끝맺었다. 그녀가 보여준 사랑은 거짓의 세상에서도 때 묻지 않은 하나의 숭고한 가치가 되었고, 그것은 희망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두려움을 없앨 수 있게 해주었다. 납치범으로 위장했던 브이는 그녀에게 마침내 두려움에서 벗어나 맘껏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낼 수 있는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핀치 : 그는 누구였지?
이비: 몬테크리스토 백작. 제 아버지였어요. 또 어머니였고요. 동생이었고 친구였으며 당신이자 나였어요. 우리 모두였죠.


11월 4일, 브이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나누어 주고, 자신은 마지막 전투에 임하게 된다. 빅토리아역 안에서의 혈투를 벌인 브이는 결국 목숨을 거두게 된다. 그는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어느새 모두 브이와 같은 가면을 쓰고 의회 앞으로 한뜻을 모아 거리를 나서고 있었다. 브이의 신념은 바로 그곳에 살아서 의회와 빅벤(Big Ben)이 폭죽처럼 폭발하는 것을 보며, 흘러나오는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으며, 감춰버린 여론의 가면을 벗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만끽했다. 그것의 모습은 하나의 참극이 아닌 축제와 환희가 가득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밝아오는 나날들을 맞이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티브이 앞이 아닌 집 밖으로 나설 수 있었을 때, 마침내 거짓으로부터 진실의 힘이 승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초반 가이 포크스가 전한 '한 개인이 한 나라를 상대로 싸울 수 있다.'라는 말은 한 명의 브이와 정부의 싸움에서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정의를 추구하는 다수와 진실의 힘앞에 처참히 무너지는 정부를 그려내며, 그의 신념을 실현시켜주었다. 브이는 특별한 한 위인이 아니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브이'가 될 수 있으며, 그 대상자 바로 '우리 모두'이다.




2006년 개봉 당시 '브이 포 벤데타'의 홍보문구는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가상현실!'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 영화를 가상현실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현실에서 브이라는 개인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의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에서 그가 믿었던 진실의 힘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신념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현실에서의 브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브이 포 벤데타>와는 조금 다른 제목을 지어주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처럼 진실의 힘을 찾아 승리를 향해가는 <브이 포 빅토리(V for Victory)>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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