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이란 수식어

영화 <위대한 개츠비> 속 '위대한'의 의미

by 나호정
시민의식(市民意識) :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태도 또는 마음의 자세. (두산백과)


현대에 있어서 이 단어의 가치는 더욱 드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 이후 급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 시민의식이라는 단어는 주목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발전 사이에서 발맞추지 못하는 시민의식은 많은 사례들을 통해 부각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화로 일컬어지기까지 하는 갑질 문화나 일부 무개념을 뜻하는 맘충과 같은 단어들이 부족한 시민의식을 대변하곤 한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시민의식이 있는 사회상은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 물질적 풍요를 맞이한 미국에서도 이와 같이 시민의식이 결여된 결과로 도적적, 윤리적 타락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승전국인 미국에 찾아온 평화는 향락으로 이어졌다. 손을 뻗는 어느 곳나 술이 놓여 있었고 재즈의 부흥은 이에 활기를 불어넣어 광란의 시대를 선사했다. 1920년대의 미국은 세상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겉모습에 드러나는 화려함에 도취돼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다. 그러나 축제의 불빛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결여된 시민의식이 가져온 많은 희생이 있었고, 그것을 보이기 위한 많은 작품들이 있다. 1925년에 출간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그러하다.


출간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야 빛을 보기 시작했고 이후에 몇 번의 영상화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2013년에 개봉한 '바즈 루어만'감독의 <위대한 개츠비>는 출중한 배우들을 필두로 세련된 영상미와 함께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가 보여주는 1920년대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사실은 내가 개츠비라네.


현대에 있어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는 1920년대의 모습은 다채로운 색감을 살려 눈을 즐겁게 하고 쉴 새 없이 들리는 재즈 음악은 분위기를 흥겹게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뉴욕 월 스트리트의 증권 거래소는 물질적 풍요를 가속시켰고, 그 가운데 시행된 금주법(禁酒法)은 결여된 시민의식을 통해 술의 밀수업을 성행하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한 인물이 있었다. '제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롱 아일랜드에 사는 부호이다. 대저택 안에서 매일 밤 호화스러운 파티를 열며 많은 사람들과 밤을 보내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는 작품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 분)'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이해와 신뢰로 가득 찬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런 젠틀한 모습은 그의 으리으리한 저택과 화려한 불꽃들과 함께 그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돈으로 꾸며진 완벽함 뒤로 그에겐 결여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타인의 마음이었다.


그는 언제나 부자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닉은 그를 친구라고 여겼다. 개츠비의 인생에서 모든 타인과의 관계는 상호 이익을 따지는 거래와 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닉에게 부탁을 할 때에도 물질적인 보상을 해주려 했다. 하지만 닉은 단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거절하며 개츠비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부탁 또한 개츠비에게 결여되었고, 언제나 쫓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멍청했으면 좋겠어. 그것이 여자에게 최선일 테니까. 예쁘고 여린 멍청이.


'데이지 뷰캐넌(캐리 멀리건 분)'은 부잣집 딸내미로 개츠비가 사랑하는 여자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금발의 모습의 그녀는 꽤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인 '톰 뷰캐넌(조엘 에저튼 분)'은 내연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었고, 데이지 또한 마음속 깊이 개츠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데이지와 개츠비는 닉의 도움으로 만나게 된다. 그 어떤 화려한 파티와 신나는 음악과 많은 사람들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그의 공허함은 데이지 한 명만으로 넓은 저택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 뒤로 그들이 떨어져 있던 5년이란 공백의 시간은 그들에게 높은 현실의 벽을 만들었다. 때문에 다시 만나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던 중 데이지는 갑작스레 울었고, 이유를 묻는 개츠비에게 그녀는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이렇게 좋은 셔츠는 본 적이 없어서요.'라고 말하며 이러한 꿈같은 시간이 냉혹한 현실에 놓여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그녀는 자신의 딸이 차라리 멍청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까지 자신에게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막연히 떠나고 싶다고만 말하며 현실을 고려하는 개츠비와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개츠비가 고집한 완벽한 현실이 오히려 그와 그녀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선 무엇이 그를 완벽해 보이는 현실 속에 있도록 만들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상상력과 초록 불빛, 이 두 가지가 그를 완성시켰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상상해왔죠.
미래의 축복받을 운명이라고.


그의 화려함 뒤로 '제임스 가츠'라는 본명과 함께 '가난'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밝은 별을 보며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왔다. 때문에 그가 만든 상상력의 힘은 그에게 한계라는 단어를 지워버렸고,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에게 큰 힘을 주었고, 그것으로 그는 16살의 나이에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쉽게 갖지 못하는 모습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맘대로 정해버리고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개츠비가 자신의 미래를 맘껏 상상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어떤 모습으로도 그려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현실이란 것을 핑계로 단정 짓지 않고 정말 불가능이라고 생각할 만큼 맘껏 상상해본다면, 어느새 그곳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츠비는 자신의 거부할 수 없는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 낸 현실에서 언제나 초록 불빛을 쫓고 있었다. 그것은 데이지의 집 앞의 부두에서 빛나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그 지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따랐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고귀한 것이며, 그의 남은 평생의 인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목표였다. 하지만 초록의 불빛은 단지 사랑만을 보여주는 붉은빛이 아니었고, 현실을 저버린 고독만을 보여주는 푸른빛도 아니었다. 그 초록빛은 현란한 세상 뒤로 자신의 사랑과 함께 안정과 평화를 취하고 싶었던 그의 목표였고, 그는 데이지를 자신의 삶을 안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초록 불빛은 이미 그를 지나쳐 그의 뒤에 놓여있었음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면서도 해류에 맞서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른다.


물질적 풍요로 이루려 했던 휘황찬란한 미래는 광란의 시대 속 내재된 혼란에 의해 어느새 시대를 지나치고 있었다. 1920년대 부족했던 사람들의 시민의식은 결여된 도덕성과 타락한 윤리적 가치관들을 낳았고, 이것은 온갖 불법적인 일들로 세상을 채웠다. 그러한 불법들 속에 거짓으로 꾸며진 개츠비의 삶은 '또 다른 거짓'에 의해 망가져버린다. 그가 놓쳐버린 초록 불빛은 이미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감춰져 버렸고, 개츠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그것만을 쫓았다. 과거에 얽매인 그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죽음 이후에도 그의 비참함은 이어졌다. 장례식에는 파티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전무했고 개츠비에게 돈이 아닌 마음을 주며 친구로 여긴 닉이 유일했다.


개츠비는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 당연히 할 수 있고 말고!'라고 말하며 데이지와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리려 부단한 노력을 했다. 비록 그의 과거는 불법적이며 거짓으로 꾸며진 것들이었지만 그것은 사회의 풍토였으며 그는 그것을 죄의식 없이 '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런 정상적인 현상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닉은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물질적 풍요의 상징인 뉴욕이란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후에 그는 개츠비에 대한, 그리고 개츠비를 위한 글을 쓰며 그것의 제목에 '위대한'을 넣어 그의 안타까운 삶을 위로했다.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 그는 위대했다. 현실의 향락보다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했고, 결국엔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에게 붙여준 '위대한(The Great)'이라는 타이틀은 1920년대의 사회상에 희생된 그에게 소소한 위로와 함께, 이런 그를 위대하게 만든 썩어빠진 세상을 역으로 시니컬하게 비판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제 다시 21세기 현대로 돌아오자. 우리의 사회상은 어떠한가. 부족한 시민의식이 만든 현대 사회가 많은 희생자들을 낳고 있다. 그 희생은 단단히 잘못된 사회 속에서 순수함을 지킨 자들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가족, 이웃, 힘없는 약자들, 그리고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그렇게까지 초록색 불빛을 향해야 하는가 싶기도 한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닉은 개츠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이었던 '넌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전부 모아놓은 것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해준다. 그리고 그 뒤로 '넌 위대해!'라는 말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위대한(The Great)의 타이틀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런 사회 속에서 취해야 할 행동인 초록색 불빛을 쫓는 데 있었다.


우리가 온갖 거짓과 불법인 사회 속에서도 동조되지 않고 끝까지 정신적 가치와 진실된 것을 추구한다면, 마침내 우리에게도 '위대한______'의 빈칸에 들어갈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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