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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May 24. 2016

킬러와 소녀, 그리고 어른과 아이

영화 <레옹>에서 찾은 '어른'이 되는 길

'어른'스럽다.


대한민국에서는 만 19세 이상부터는 법적으로 '성인(成人)'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이 보통 어른스럽다라고 형용되어지는 말의 어른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어른이란 단어는 신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숙이 가미되어 뜻을 나타낸다. 성인이 되어서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할 경우 '어른스럽지 못하다.'라고 말해지며 행동을 지적받기도 하고, 반대로 어린 나이에는 어른스럽다며 행동을 칭찬받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과연 어른이란 무엇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현대의 많은 청년들이 20살이라는 나이 이후에도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더불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경계가 모호해져, 성인이 돼서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것을 철부지라고 했던 과거와는 달리, 어린아이의 취향을 갖고 있는 성인을 나타내는 '키덜트(Kid+Adult)'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 이와 같은 질문을 품은 킬러와 소녀의 이야기가 세상에 소개된다. 영화 <레옹>에서는 한없이 고독해 보이는 중년의 킬러와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린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아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갈등의 시작점에 놓는다. 두 명의 '어른, 아이'를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제발 문 열어주세요... 제발... 제발이요...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분)는 화목하지만은 않은 가정에서 살았다. 그녀의 삶은 세상 어느 곳에도 놓여있지 않은 듯했고,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는 하나뿐인 남동생이 전부였다. 이웃집에 사는 킬러 '레옹(장 르노 분)'은 그런 그녀에게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엷은 동정심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암울한 시대는 그녀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노먼 스탠스필드(게리 올드먼 분)는 그녀의 소중한 것을 앗아갔고, 그녀의 집을 참극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그 비극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에게는 다행히도 험난한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빠른 눈치가 있었다. 그녀의 양손에 가득 들고 있는 짐은 냉혹한 현실을 맞이한 두려움을 감추기엔 충분했으나, 새어나온 공포심에 떨리는 목소리만은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레옹의 집 문 앞에 서서 연거푸 부탁한다 '제발 문 열어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려왔고,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고통스러운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꾸며주었다. 그 모습은 냉혈한의 킬러인 레옹의 모습을 흐트러뜨리는데 충분했고, 이윽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에게 열리는 문은 마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천국의 그것과 같았고, 빛이 되어 그녀의 얼굴에 쏟아졌다.


그녀와 그의 나날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그녀는 마음 한쪽 구석이 검게 물들어 버린 듯했다. 레옹의 직업이 청부살인업자라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고 멋있다고 말하며, 서슴지 않고 창밖으로 위험한 총탄을 날리기도 한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더욱이 그녀를 어린아이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녀의 행동들은 좁은 방의 공기를 긴장시켰고, 레옹이 거부할 대답들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그녀는 어린아이가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어른의 모습과도 거리가 멀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의 반대말이 어른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순수함이 냉혹한 현실앞에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바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교육의 의무는 어느새 부모의 욕심 때문에 교육의 강요가 되었고, 이는 곧 아이에게서 순수함을 지워버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많은 학원을 다니는 것이 부모들에게 자랑거리이자 아이에게 족쇄가 되었고, 이것은 아이에게서 꿈을 향해 마음껏 날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행복은 부모들이 현실이라는 단어로 강제로 위로받았고, 그들이 납득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떠나보낸 뒤였다. 때문에 그들의 소원은 순수하게 무언가 갖는 것이 아닌 서둘러 어린 시절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에서도 이와 같이 마틸다 또한 자신의 어린 모습을 부정하며 끊임없이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


키스 한번 할까요?
영화처럼 말이에요.


그녀는 어른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사람을 향해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인생의 일탈을 마치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듯 호텔 안내인에게 자신은 레옹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들은 오히려 그녀의 이성적이지 못한 아이다움을 부각하고, 영화에서는 그녀의 게임에서 보인 우스꽝스러운 배우들의 분장 모습을 통해 그녀가 아직 아이일뿐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녀는 레옹에게 어른들의 사랑 표현 중 대표적인 키스를 하자고 말하며, 술을 무작정 들이키기도 한다. 그리고는 이런 모습에 당황하는 레옹의 모습을 보며 크게 웃으며 그녀의 말과 행동은 사랑이 담겨있을 뿐인 장난이었음을 말해준다.


레옹은 이런 그녀에게 잘못됨을 꾸짖고 올바른 생각을 심어주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는 그 또한 어른이 아님을 말해준다. 영화에서는 레옹의 입을 통해 '나랑 반대구나. 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지. 문제는 아직 어려서 그렇지.'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말해준다. 영화에서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돼지의 장갑을 끼고 장난을 친다거나, 그녀의 게임에 동참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그 또한 완전한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의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 아니면...
죽음이에요...


그녀는 레옹에게 사랑한다는 갑작스러운 고백을 한다. 레옹의 반응은 단지 '안된다'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레옹에게 그 마음을 끊임없이 확인시키고 확인하려고 한다. 레옹은 그녀의 행동에 많은 혼란을 일으킨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과 그녀가 자신의 삶에 일으켜준 변화 사이에서 마음의 뱡향을 함부로 정하지 못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킬러와 소녀사이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준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사랑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 중년 킬러와 어린 소녀의 모습을 낭만스러운 모습으로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레옹의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은 막무가내의 아이의 모습이 아닌, 내면 깊숙이 그 가치의 숭고함에서 나온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기쁨보다 레옹에게서 사랑을 확인했다는 데에 더욱 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신뢰에서 우러러나온 진심은 둘을 가깝게 만들었다. 그녀를 구출한 뒤에 레옹은 자신의 첫사랑이야기를 해주며, 마틸다뿐만이 아닌 그 어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마틸다는 그의 말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그가 단지 침대에서 편히 자기만을 바란다. 이것은 그의 진심이 마틸다에게 닿았고 마틸다는 그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침대에서 안고 자며,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을 초월해 더욱 고귀해짐을 보여준다.


네 덕에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 도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네가 또 혼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한 단계 나아가도록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결여되었던 삶의 목표를 찾도록 해주었다. 레옹에게는 킬러로 살며 자신의 삶에서 제외되었던, 그리고 자신이 없애기도 했던 생명력을 마틸다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이전의 생활에선 느낄 수 없었던 보살핌을 레옹에게 느끼며 그것을 사랑으로까지 발전해갔다. 이렇게 킬러와 소녀라는 묶이기엔 서로에 대한 이질감이 들던 단어는 그 안에 숭고한 가치들로 인해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레옹은 그녀와 헤어지는 순간에 영화 내내 보여주지 않았던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의 이름에 담긴 사자의 모습으로 포효하며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마틸다에게 보여준 빛으로 묘사되었던 구원의 모습을 문밖에서 느끼며 죽음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마틸다에게 준 화분은 그에게 있어서 분신과 같았다. 문밖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단지 오늘 하루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하듯 창문에 놓여 빛을 쬐는 것이 전부였던 모습은 그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마침내 마틸다가 그 화분이 땅에 뿌리를 내려 식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것처럼 레옹에게 인간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아주었다. 그녀는 "여기라면 우리가 잘 지낼 거예요, 레옹."라고 말하며 앞으로 그와 함께할 나날들을 말한다.




킬러와 소녀라는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단어는 사랑을 통해 함께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둘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놓여 서로에게 결여된 것들을 채워줌에 있었다. 마틸다의 마지막 모습은 더 이상 거짓이나 투정이 아닌 진실과 함께 삶에 대한 의지가 엿보이는 모습이었고, 이는 그녀를 어른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또한 과거의 그들과 같이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서 어디로 향할지 모른 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그들이 보여준 숭고한 가치들로 삶의 의미를 채운다면, 참된 의미의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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