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연말이 되면 영화 채널 여기저기서 해리포터 전편을 틀어준다. 몇 번이고 본 영화인데도 너무 재미지다. 거의 2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요즘 봐도 참 괜찮다.
내가 유독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중학생 때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했으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딱 해리포터 책을 읽을 때만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도 힘들 때마다, 물론 공부 쪽으로만, 해리포터를 읽었다. 솔직히 스트레스 해소고 뭐고 공부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해리포터가 공부 때문에 힘들었던 학창 시절을 위로해준 건 사실이다. 해리포터가 없었으면 진즉에 공부 때려치웠을 거다.
학창 시절 난, 나도 저런 마법학교에 다니고 싶다. 그럼 이런 수학 따위 안 해도 될 텐데. 나 마법학교에서 공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그와트에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꽝스러운 여중생이지만 그때 난 진지했다. 사실 지금도, 해리포터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마다, 상상하긴 한다. 이젠 내가 다 커서 호그와트에 못 가니 우리 애들이라도 보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 가끔 멍하니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내 모습, 아니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면, 인생이 재밌어진다. 오버스럽긴 해도 판타지 세계를 꿈꾸는 건 스트레스를 잊게 해 주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진짜다. 한 번 해보시길.
아무튼,
그런데 최근 해리포터 20주년 개정판이 나왔다! 번역가도 바꾸고 표지도 바꾸고 그랬단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번역이 바뀌었다는 것.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떻게 번역이 바뀌었을지 너무 궁금하다. 20년 전에 번역한 거니까 아무래도 요즘 분위기와는 좀 다를 테니 20년 만에 새로 번역한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사볼까?, 싶다가도 전 권을 새로 번역한 게 아니고 절반 정도만 했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사지 못 하고 있다. 지름신이 살짝 발만 담그고 나간 느낌이랄까.
이 고민을 지난 주말부터 하고 있는 건데 나흘째인 오늘까지 계속된다는 건, 무지 사고 싶은 거다. 근데 어딘가 찜찜하다.
새로 번역이 안 된 나머지 절반은 언젠가 또 나올 테니까 그건 그때 사면 되지, 하는 생각과 그래 번역가 정신으로다가 번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 보자,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든다. 그런데도 선뜻 지르질 못하고 있다.
이를 어쩌면 좋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