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2020 새해가 밝았다. 아니, 아직 해가 안 떴으니 새해가 밝은 건 아니고 밝기 직전이라고 해야 맞겠다.
작년 12월 다이어리를 구경할 때부터 느낀 거지만 2020 숫자 조합이 참 이쁘다. 왠지 좋은 일이 듬뿍 일어날 것 같이 생겼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2020 새해처럼 감흥이 없었던 적은 또 처음이다. 12월 31일이면 늘 밤 12시까지 연말 시상식을 보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새해의 소원을 빌고 잠에 들기도 하고, 일출을 본다며 강원도까지 가기도 했는데 이번엔 강원도는 개뿔 종소리도 개뿔 10시에 자버렸다. 깨어있으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 하겠다. 전에는 새해를 알라는 종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빌어야 돼. 그래야 소원이 이루어진대, 라며 열정적으로 12시를 넘겼는데 이젠 그 믿음이 온데간데 사라졌다. 간절함이 사라졌나 싶기도 하고...
어젠 가족들과 조금 특별한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들었다. 꼭 자려고 한 건 아니었다. 물론 깨어있으려 노력한 것도 아니지만. 뭐, 가요대제전을 본다 한들 아는 노래가 없으니 재미없을 테고, 연기대상도 올해 드라마를 본 게 없으니 수상자를 가려내는 재미도 느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까 제야의 종소리까지 기다릴 재간이 없었던 거다.
그렇게 2019년의 마지막 밤을 특별하지 않게 보내고 새해의 아침을 맞이하니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게 뭐 별건가, 싶기도 하다. 2020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야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데, 나이가 들어서(?) 뭔가 들뜨는 마음이 사그라든 걸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아쉬우니까 특이하게 이따 저녁에 새해의 첫 달님을 보고 소원 빌어야겠다. 2020년에도 화이팅,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