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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 Jan 13. 2020

캡슐커피 하나에 손이 덜덜

보통날

 남들은 다 캡슐머신을 사서 커피를 마신다고 하는데, 나는 주방이 좁기도 하고, 조리대 위가 복잡한 건 영 싫어서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구입한 비알레띠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었다. 비알레띠로 커피를 마시는 게 좀 수고스럽긴 하지만, 비알레띠의 고무패킹이 생각보다 금방 헐거워져서 그 틈새로 커피가루가 마구 들어가긴 하지만, 나름 괜찮다며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독일 여행에서 남편이 계속 네스프레소 영업점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아니, 커피머신도 없는데 왜 저래?, 생각하며 거기서 뭐해? 라고 물으니 남편이 회사에 네스프레소 기계가 있어서 캡슐커피를 좀 사서 가져다 놓고 싶다고 했다. 네스프레소 캡슐이 독일이 제일 싸다는 말과 함께... 영업점으로 들어갔더니 직원이 시음을 권했고, 마침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난 원래 네스프레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기꺼이 받아 마셨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오 맛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이건... 내가 알던 맛이 아닌데? 

 네스프레소가 커피콩을 바꾼 건지, 아님 내가 나이가 들어 입 맛이 변한 건지, 무튼 참 맛있었다. 

 

 사실 예전에, 한 8년 전에 친구네 신혼집에 갔을 때 처음 네스프레소를 먹었는데, 그땐 쓰기만 하고 너무 맛이 없었다. 또 커피머신은 어찌나 비싸던지. 당시엔 일리 커피머신도 그렇고, 네스프레소도 그렇고 그 돈 주고 살만한 가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난, 커피 머신은 다 너무 비싸고 그저 그래. 캡슐도 너무 낭비고, 라며 캡슐커피를 홀대했다.


 그러던 내가! 시음용 커피에 뿅 가서, 마지못해 들어간 독일의 그 네스프레소 영업점에서 이 커피머신을 사면 80유로어치 캡슐커피를 드려요, 라는 행사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아주 자세히 살펴봤다. 한국에서의 가격과 비교하면서. 행사하는 머신이 우유 거품 기능 없고, 여러 가지 조절 버튼 없는 아주 심플한 것이었다. 물론 자리 차지도 많이 안 하고. 나한텐 아주 딱이었다. 보니까 그 머신을 한국에선 15만원 정도에 팔고 있었고, 독일에서는 이래저래 따져보면 단돈 2만원에 살 수 있었다! 안 사고 넘어갈 수 없어서 낼름 커피머신을 샀다. 캡슐도 왕창.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신나게 네스프레소를 마시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80유로어치의 캡슐커피와 독일의 그 영업점에서 추가로 구입한 캡슐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되게 많은 것 같았는데 벌써 별로 없다. 이제 3줄 밖에 안 남아서 커피 보관함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사도 되는데, 무엇 때문인지 자꾸 커피를 아껴먹게 된다. 손을 덜덜 떨면서...

 한국이 독일보다 비싸 봤자 개당 100원 좀 넘을 텐데 그게 그렇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네스프레소 사러 독일이나 가면 좋겠다. 그러면 캐리어 하나에 가득 채워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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