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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 Jan 14. 2020

번역가는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을까?

보통날

 일단 답은 절대, 네버, 전혀 그렇지 않다, 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진짜 잘 나가는 번역가들은 모르는 단어가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샬라샬라 말할 줄 아는 편이 아닌데도 겁도 없이 출판 번역계에 뛰어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땐 제2외국어로 남들 피하는 독일어를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외국어로 밥 벌어 먹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한참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던 시절, 내가 할 줄 아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거를 쫓다 보니 '독일어'에 다다랐고 그때부터 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번역 분야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또 기술번역은 별로고 꼭 출판 번역을 하고 싶었다. 워낙에 독서를 좋아해서 그런 건지, 그냥 있어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거 아니면 안 해, 이러고 있었다.


 처음 독일 원서를 펼쳐 들었는데, 이건 뭐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이건 내 실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란 생각이 딱 들었다. 서점에 깔린 수많은 역서들이, 그걸 일궈낸 수많은 역자들이 신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 실력을 쌓아서 내 역서 하나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몇 년을 노력하고, 알아보고, 조사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운 좋게도 첫 번역 계약을 했고 현재 내 역서 하나가 서점에 깔려 있긴 하지만, - 공교롭게도 첫 책은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 아직도 난 갈길이 멀다. 아직도 원서를 펼치면 모르는 단어가 많고, 급하게 원서 검토서를 작성해야 하는 때에는 마감기간을 맞추기 위해 눈이 벌게지도록 네이버 사전, 독독 사전을 두드리며 원서를 읽는다. 그럴 때마다 어휘력이 풍부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럼 속도가 훨씬 빨라질 텐데,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중고등학생 때처럼 단어 암기를 시작했다. 확실히 나이가 드니까 예전처럼 빠릿하게 외워지지도 않고, 이래 저래 할 일이 많으니 많이 외우진 못하고 하루에 딱 다섯 단어만 예문과 함께 외우고 있다. 대신 주말 빼고 매일매일. 당장 괄목할만한 효과가 딱 나타나진 않겠지만 꾸준히 해보려 한다. 언젠간 빛을 발하리라 믿으면서...


 솔직히 처음 번역가를 꿈꿨을 당시, 번역가로 데뷔하면 단어 수만 가지는 알고 있는 상태일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꼭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만 스타트 가능한 건 아닌 것 같다.  일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많은 단어를 익히게 되겠지만, 그때도 역시 완벽하진 않겠지.

 달리 생각해보면, 너무 완벽해서 빈틈없는 삶을 사는 것보단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살아가는 게 더 재미있는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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