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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Sep 20. 2023

산만하고 열심인 삶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 수집기 - 프롤로그


PM 10:00. 밤이 늦다. 삼 년 전쯤. 서강대학교 앞 한겨레 교육문화센터 인디자인 과정을 결석 없이 종강하고 돌아가는 길. 귀가 길에 두 시간이 든다. 바람이 소슬해 드러난 목 언저리가 서늘하다. 악착같이 다 배웠네. 배운 걸로 이제 뭐 한담. 시작할 땐 대단한 결의가 있었는데 매번 마칠 때쯤엔 ‘어우,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는 걸’, 꼬랑지를 내린다. 

‘왜 이리 극성을 떨고 살까, 가는 세월 붙잡고 싶어 이리 아등바등하는 건가, 그냥 좀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면 안 되나’ 쓸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럴 땐 돌아가는 두 시간이 더 길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 옆에 서서 나란히 걸어주고 싶다. 그때의 극성으로 지금의 내가 평온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괜한 배움은 없다고, 괜한 애씀은 없다고, 너는 계속 그렇게 살 거라고, 그러니 지치지 말라고 다독여주고 싶다. 인디자인으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해줄까 말까.     


한 우물을 깊이 파진 못한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뚜렷한 아웃풋이 없다는 이유로 종종 스스로를 비웃거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던 산만한 배움의 역사, 기웃거림의 역사를 이 제야 비로소 칭찬해주고 싶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다. 자주 허덕이던 우울의 늪을 그 덕에 건널 수 있었고 심란함에 갇혔을 때 잠시 마음을 쉬게 하는 딴 짓거리를 찾아 그에 기댈 수 있었다. 같은 노래, 같은 영화를 얘기하고 미래를 같이 고민할 수 있어 아이들과의 간격을 좁힐 수 있었으며, 남편의 회사가 어려울 때 배운 것을 꺼내 백지장을 맞드는 손이 되어줄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쑥쑥 자라진 못하지만 적어도 쭈그러들지는 않는 중이다. 튀는 사람은 아니어도 어느 자리에나 표 나지 않게 녹아드는 적당한 사람으로 융화될 수 있는 것도 다 산만한 배움의 결과임을 이제야 알겠다.


과다 감성과 몰입 형 공감으로 멘털이 자주 출렁대지만 읽고 쓰고 느끼며 산 덕에 굿 리스너가 되었고, 사랑이 많은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어디 내놔도 빠지지만 어디 내놔도 예쁨 받는 어른. (헙. 이런 말까지도!) 덕분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손톱만큼 이나마 자랄 수 있었으며, 눈곱만큼 이라도 넓어지고 콩알만큼 깊어질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어도 아직 다 채우지 못한 영혼의 빈자리는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읽고 쓰고 보고 배운 것의 흩어져 있는 기록을 한 줄로 꿰어보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나의 시선이 비관에서 낙관으로, 부정에서 호의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바뀐 시선을 유지하며 살아온 대로 또 산만하나 열심으로 살 테다. 호기심이 있는 한, 배울 것이 남은 한 늙어져도 낡아지지는 않는, 생동하는 삶이리라. 내일은 무얼 배워볼까. 무얼 읽을까.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말해야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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