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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Sep 21. 2023

어쩌다 여행작가가 되었니 - 아파서 그랬지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 수집기 1 - 여행작가학교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의 끄트머리를 살짝 쥐고 지금 나는 제주에서 글을 쓰고 있다. 돌아보면 적당히 순조로운 길이었고 그 길에 의심 없이 나를 내줄 수 있었던 건 어느 날 늦은 오후 쏟아지던 햇살 덕인지도 모르겠다. 일 년 만에 해 아래 처음 선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았는가. 한 줌 볕도 없는 곳에서 일 년을 버텼음을 깨닫던 순간은 밝은 쪽으로 한 발 내딛던 순간이기도 했다. 슬프고 덜 슬픈 순간을 적당히 섞어 살아갈 수 있는, 침울하다가도 가끔씩 명랑할 수 있는 일상으로 살짝 방향이 틀어지던 날이었다. 



    

친구를 잃고 일 년의 시간은 컴컴한 굴이고 긴 터널이었다. 철저히 감정을 숨기거나 위장했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찾지 않았다. 친구의 이름은 내 주위에서 금기어였고 살다 간 친구의 자리는 없던 자리가 되었다. 꺼내지 못한 어두운 감정은 젖은 걸레 같았다. 검고 눅눅한 채로 곯아갔다. 남편과 아이들, 언니 오빠 친구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살아낸 일상은 견고해 보여도 견고하지 않았다. 자주 무너졌다, 아무도 없는 때를 잘도 골라서. 친구의 첫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던 무렵, 죄책감은 바윗덩이가 된 지 오래였다. 사는 게 무거웠다.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위장해 사는 일은 매일 해도 매일 힘든 일이었다. 멈춰, 잠시라도. 멀쩡히 잘 돌아가는 듯 보이는 일상에 발을 걸고 싶었다. 주저앉히거나, 다시 일으켜 세우거나. 그런 마음에 나는 새로움을 갈망했다. 낯설고 어리둥절해 정신이 버쩍 날만 한 일이 필요했다.    

   

여행작가학교 수강생 모집. 등록일 하루 전에 공고를 보게 된 것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새롭고 낯설면서도 아주 생경한 일은 아닌지라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열 시에 시작된 등록 절차가 불과 9분 만에 마감, 빡 센 시간 전쟁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과정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때를 못 맞춰 두 번 세 번의 학기를 기다렸다 들어온 사람도 제법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뭐라도 잡아보잔 심정은 절박했으나 새로운 삶의 국면에 접어드는 일은 짧은 시간 안에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불교학교에 등록할까를 동시에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당장 시작할 수 있어서 여행작가학교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불교 공부를 그때에 시작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디쯤에 있으려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돼있진 않겠지.

      

그렇게 시작한 석 달간의 공부. 수업 동기들과의 첫 번째 실습여행지는 성북동 북정마을이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달이 먼저 뜨고 달이 잘 보이는 마을이었다. 골목은 좁고 가팔랐다. 굽이진 골목을 돌고 돌아 꼭대기에 닿았을 때 거친 벽의 틈을 뚫고 자란 어린 풀이 눈에 들어왔다. 눈가가 시큰했다. 꽃샘추위를 막 지난 때라 봄은 미처 다 오지 않았는데, 풀이 먼저 나왔다. 검고 두터운 흙을 뚫고 여린 연두가 고개를 내밀었다. 괜한 감상이 스스로도 멋쩍어 고개를 돌리니 저무는 볕이 동기들 머리 위로 흩뿌리고 있다. 초저녁 바람이 보들하고,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한나절 함께 나들이하며 이제 막 친해진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도레미파솔, 딱 그 정도. 나도 자꾸 웃음이 났다. 연두 풀도 바람 따라 헤적였다. 너도 좋구나, 봄이라.  




그때에 곁에서 웃고 함께 사진 찍던 이들에게 지금도 나는 기대고 있다. 어느덧 7 년의 세월을 함께 지나고 있다. 다소 서먹하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던 이들은 내 상처가 궁금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그들을 다리 삼아 밝은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는 이의 위로보다 모르는 이와의 새로운 교감이 약이 되었다. 위로하는 일보다 위로받는 일이 더 어렵고, 상황 자체를 거세게 뚫고 나갈 힘이 없는 나에게는 새 일, 새 사람이 밥보다 좋은 보약이었다.


혼자서도 훌쩍 잘 떠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차츰 나도 잘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있기 위해, 혼자 울기 위해, 딱 하루 울음을 뱉을 수 있는 날을 만들려 월요일마다 하루나 이틀을 잡아 길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면 또 나머지의 닷새나 엿새를 잘 살 수 있었다. 그 하루의 여행을 ‘월요 방랑’이라 이름 지었다. 내 모든 방랑은 너를 향한다고 길의 시작과 끝에 친구에게 안부를 남겼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기도 하며 바깥과 접속하고 안을 꺼낼 수 있었다. 여행작가학교를 포함한 여행작가협회라는 환경 안에서 맺은 인연에 자연스레 젖어들며 혼자여도 함께여도 여행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여행에 잘하고 못하고가 있긴 한가) SNS에 올리는 게 다였지만 내 여행을 글로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잘 표현한다는 것이 잘 쓴다는 말은 아님에 유의)     



Photo by 정태균


그러다 어느 날 벼락같이 제주로 떠났다. 한 달을 떠돌고 왔다. 맘에 안 드는 나를 혼내준답시고 ‘유배에 처한다’는 다소 어이없는 구실로 제주 한 달 살기에 정체성을 부여했다. 하루하루를 기록했고, 기록은 ‘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라는 제목을 달고 책이 되었다. 과감하게 30일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계기엔 백만 원이라는 종잣돈이 큰 역할을 했다. 여행작가협회와 함께 한 신안군 ‘천사섬’ 여행의 기록을 잘 다듬어 해양수산부 주관 섬 여행 공모전에 응모해 최우수상과 함께 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여행기로 받은 상금을 여행에 쓰겠다는 어딘가 일관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결심은 떠나는 걸음을 당당하게 해 주었다. 엄마이자 아내인 사람의 긴 여행은 어떻게든 당당함을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상금 백만 원 안에서 숙박과 교통비를 해결한다는 의지가 있었고 그 기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여행을 해냈다. 헤프지 않고 분수에 맞는 여행, 현실은 조이고 감성은 풀어놓았다. 돈은 박해도 자연은 후했다. 명소에 가지 않아도, 핫한 카페에 앉지 않아도, 포토존에 서지 않아도 내 여행은 소박하게 빛난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에 그것을 책으로 엮을 용기도 낼 수 있었다. 얼결에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는 여행작가의 길의 ‘시즌 1’은 그 한 권의 책으로 매듭지어졌다 해도 좋을 것이다.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해 그만하면 값진 결실을 맺었다(두서없이 던진 원고를 책으로 엮어 주신 출판사 '푸른향기' 대표님께 절을 할 일이다). 지금은 시즌 2의 시작점. 업으로 삼고 있다 할 만큼의 활동은 그리 없는지라 ‘작가’라는 정체성은 여전히 미미하지만 열망은 미세하게나마 꿈틀대고 있다. 여행이 쌓이고 또 글도 많이 쌓고 하다 보면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돌탑처럼 느리게나마 높아지겠지. 조바심은 없다.

      



“엄만 꿈이 뭐야?” 

갓 중학생이 된 딸이 묻던 질문을 이따금 떠올린다. 꿈이 없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딸 앞에서 문득 무색해져 가난한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더했다. 지금 나는 그에 비슷하게 살고 있다.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기엔 좀 부족하다 해도 나의 정체성에 ‘여행’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따금 별러서 하는 여유롭고 편한 여행은 할 수 없어도 옹색하고 불편한 여행을 일상에 녹이며 흔하게 하고 있다. 그래도 되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여행자가 많은 세계에 발을 디디며 서서히 알아갔다. 일도 없고 돈도 없고, 현실은 궁하지만 마음은 흥하는 중이다. 아픈 데가 나아가고 있는 것, 그것을 흥하는 일이라 말해도 되겠지. 


일 년 만에 햇빛을 만나던 그 무렵 나는 내 세계를 억누르고 있는 통증의 무게가 없는 세계로 건너가고 싶었을 것이다. 우울로 필터링하지 않은, 누구에게나 온전히 똑같은 해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해가 나를 피해 간 게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슬픔을 이마에 대곤 세상을 다 가릴 그늘을 억지로 지어 스스로를 가둔 것임을 차츰 알게 되었다. 밝은 곳으로 나가라고 내몰아 밝은 곳에 닿았다. 애도와 추념을 거두어서 밝아진 게 아닌, 씩씩하게 길게 오래 애도할 수 있는 건강한 애도와 건강한 추념의 마음. 다행히도 그런 길을 잘 찾아갔고 그 결과 나는 지금, 미미하게나마 여행작가다. 


작은 한 걸음이 그렇게 큰길을 내기도 한다. 작은 시도가 엄마와 아내, 중년이나 노년과 구별되는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주었다. 늦게 찾은 실존은 그 무엇보다 확고하고 무엇보다 오래갈 것이다. 잔잔하게 나를 빛낼 것이다. 이제는 벗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친한 여행작가 학교 동기, 그중에도 우리 조 사람들에게 이제야 고백한다. '덕분에 잘 살아냈습니다.'


내 방랑의 모든 끝엔 친구가 있음을, 매일 명심하며 길을 떠난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는 늘 친구를 위해 찍는다. 친구가 바랐을, 씩씩하고 명랑하게 슬픈 내가 지금 여기 걷고 쓰는 사람으로 잘 살아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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