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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Sep 25. 2023

바느질까지 할 줄은 몰랐네 - 오직 한 가지만 지었어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수집기 4 - 바느질

왜 그리 수시로 우울합니까. 인프피(infp)라 그렇습니까. 소심한 A형, 아니 그보다 더한 소문자 aaa형이라 그런 겁니까. 그도 아니면 (남편의 추측처럼) 과도하게 책을 읽어 그런 겁니까.


우울의 문턱에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다 무언가 잡고 선 일이 여러 번 있다. 그럴 때 그래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학습되었다. 사람에 기대 넋두리라도 하며 풀 수 있는 사람이 못되었다. 낮에 멀쩡하다 밤이면 무너지는 것을, 며칠 괜찮다 그보다 더 긴 며칠간 또 스러지는 것을. ‘이 정도면 울적할 만하잖아’ 내세울 만한 당당한(?) 우울의 근거도 딱히 없었다. 나의 고뇌는 늘 남의 것보다는 하찮게 느껴졌고, 그런 자각과 상관없이 나는 자주 바닥을 치는 우울을 앓았다(라고 쓰면서도, ‘이렇게 말해도 되나’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 ‘아프니까 아프다’라고 말할 자유를 내게 허용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뭐라도 하라는 의무를 주었고 대개는 그것이 통했으며 그 덕에 우울의 변곡점을 유연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결혼하고 십 년쯤 됐을 때 바느질로 단추를 다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남편. 

“너! 너, 너, 너? 바느질할 줄 알아? 네가, 니가?”

십 년을 살면서 처음 접한 낯선 광경이었을 테고, 나와 실, 바늘의 연결은 여러 겹의 물음표를 부를 만큼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던 게지. 그런 내가 바늘을 들었다. 바늘에 실을 꿰었고 한 시간도 꿰매었고 두 시간도 꿰매었다. 하나 둘, 작품인지 제품인지, 물건이 쌓였다. 단일한 그것, 티코스터. 

   

우연찮게 축제장의 원데이 클래스에서 오천 원을 주고 계획에도 없던 바느질을 배우게 됐다. 아무런 흥미나 관심도 없이, 이왕 온 거 그저 뭐 하나라도 참여하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낯설고 어색함에 비례해 몰입의 강도는 높았다. 바늘에 손이라도 찔릴 새라, 한 번의 실수로 꿰맨 만큼을 도로 풀게 되면 어쩌나, 숨죽인 채 오십여 분이 지나갔고. 눈앞에 어여쁜 티코스터가 나란히 두 개 놓였다. 잘 만들어 예쁜 게 아니라, 잔 꽃과 큰 꽃이 어우러진 패브릭 자체가 예뻐서 예쁜, 누가 만들어도 예쁠 수밖에 없는 코스터를 똥 손이 만들어냈다.




지도해 준 강사님께 따로 연락드려 예쁜 원단을 듬뿍 준비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바느질을 했다. 바느질만 했다. 티코스터 하나만 지었다. 바느질이 재미있으면 조금씩 단계를 높여 새로운 것에 도전해도 되련만, 단일 제품 하청 공장처럼 오로지 그것만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 중, 바로 이 순간이 클라이맥스다. 겉면을 안으로 마주 하고  속 감을 위로 오게 해 한 땀 한 땀 느릿느릿 바느질한 것을, 조금 남겨둔 창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숨어있던 겉 면을 살살 꺼낸다. 희끄무레한 속 감과 자로 그은 바느질 선에만 집중하다가 색이 쨍하고 무늬가 살아있는 겉감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아! 내가 무언가를 만들었구나. 이 곰손 똥손 막손으로 요 이쁜 것을 만들었구나!' 하는 감동이 생생하게 밀려들었다. 평소 아무것도 안 만드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환희였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백 개쯤 만들었을까. 예쁘지도 않은 것을 여기저기 건넸다. 그러고도 아직도 서랍 안에 수북이 쌓여있다. 



바느질 멍을 하면서 백팔 배를 떠올리기도 했다. 수행이며 수양이란 단어를 가져다 쓴다면 조금 과하려나. 욕심이나 욕망을 덧대지 않고, 어둠에 잠식당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일. 생각을 덧대지 않아도 습관처럼 저절로 되어가는 일. 부처님께 올리는 절이 그저 절이면 되는 것이지, 남보다 더 잘하는 절일 필요 없어 무심하게 백팔 번을 하게 되는 일처럼. 더 잘 꿰매려는 욕심이 없었고, 실력을 업그레이드해 다른 것을 만들려는 욕망도 없었다. 단순하게 같은 것을 무한 반복하는 일은 몸은 좀 고단해도 맘은 편해지는 것이, 해보지 않은 백팔 배와도 비슷하게 여겨졌다. 편안함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어질 땐 반드시 그와 유사한 일을 찾으리라. 무념무상의 상태로 무심히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일.

      

바느질 안 한 지 이제는 좀 오래지만 누군가 예쁜 원단을 보내준다면, 다시 시작할 용의는 있다. 단, 티코스터에 국한해서. 새로운 고난이 온다면 새로운 걸 짓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북 파우치라던가. 혹은 에코백이라던가. 실 바늘로 내가 지은 새로운 물건을 선물로 받게 된다면 나의 새로운 시련을 의심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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