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권의 역차별

아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굿파트너]

by NH

내가 겪은 아픈 현실을 너무도 아름답게 미화시킨,

드라마 굿파트너가 화제다.

바람을 피운 남편을 징벌하는

권선징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나,


나에게는 매우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가

더 마음을 긁었다.

양육에 1도 관심이 없던 엄마가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가는 이야기.


나는 아이를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이를 가지게 된 순간부터는

아이는 호불호의 영역이 아닌

책임과 의무의 영역이었다.


아이에게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대하면서

아이가 예뻐 보이고 정이 들고 친근해져 갔다.


통잠을 자기 전까지 몇 달간은

나는 출근해야 하고 전처는 휴직 중이었음에도

정확히 전처와 2교대로 2시간씩 아이를 돌봤고


아주 일찍부터 어린이집 등원 훈련을 시키면서 주간 시간을 독립시켜 갔다.


출근이 빨랐던 내가

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는 아이와 먼저 마주하고

돌봐왔고,


퇴근도 빨랐던 내가

주로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놀아주는 담당이었다.


양육을 절반씩 부담했다기엔

내가 조금의 지분이라도 더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도 그런 아빠와 노는 것을 좋아했고

엄마도 아빠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며 자라왔다.


아빠가 만들어주는 떡국을 좋아하고,

아빠 등에 매달려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법원의 시각은 달랐다.


내가 선임한 변호사의 첫 멘트는,

"양육권은 포기하고 재산분할에만 초점을 맞추시는 거죠?"


"아니요, 양육권을 꼭 가져오고 싶습니다. 저는 그럴만한 자격도 능력도 있거든요."


"음, 통상적으로 미취학 아동의 양육권을 아버지가 가져올 확률은 2% 미만입니다, 판례 상. 아이 엄마가 바람을 피워도, 아이 엄마가 경제능력이 없어도, 사기를 쳤어도 엄마가 양육권을 원하는 경우 엄마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단지, 아이 엄마가 약물 중독이나 정신 질환 같은 심신 미약의 경우 정도만 아빠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거든요."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난 2년간의 지루한 법정 다툼 끝까지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의 양육 부담 정도와 아이와의 친밀감 정도, 앞으로의 계획 등을 소명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2년 간, 아이를 전처와 격주로 양육했고 양육주에는 어린이집 등하원,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 냈다. 어린이집 행사에도 빠짐없이 나가서 엄마들 사이에서도 무리 없이 부모 역할을 했다.

심지어 소송 중에 그 시작이 언제일지는 모르는 외도의 증거까지도 잡아냈다.

그러나 결과는 일고의 고민도 없이 엄마에게 넘어갔다. 판례대로였다.

심지어 재산분할은 결혼생활 동안의 내 기여도에 대항 주장이 거의 다 인용되었는데도 양육권만은 내가 넘을 수 없었다.


딸은 민감성 때문에 아빠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을 터부시 한다는 말도 있으나,

아들을 엄마에게 주는 것은 그렇게도 당연해 보였다.


경제적 양육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명은,

그럼 양육비를 최대치로 주면 되겠다는 판결로 돌아왔다.


전처도 아이에게 진심이었던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육권이 아이 엄마에게 넘어간 것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 법 제도가 맞는지를 생각한다.

아빠의 양육을 권장하고 육아휴직을 권장하며, 엄마의 커리어를 권장하며 부부가 공동육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치는 작금의 시대에

법원은 그러한 시대정신에 따라 판결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굿파트너]의 바람피운 남편을 두둔하고 싶지 않다. 외도도 내가 당해봤기에 그게 얼마큼의 충격이고 배신감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양육에 기여는커녕 손도 안 댄 엄마가 양육권을 들먹일 수 있다는 법 자체가 우습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아빠는 양육권을 들먹인 순간 말 같지도 않은 주장 하지 말라는 판사의 꾸중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10년 동안

양육에 소홀했던 엄마가

갑자기 이혼을 앞두고 내가 더 잘할게, 더 노력할게 라는 말로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지금 대한민국 법의 현실이다.


내 아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고,

양육비도 당연히 자동이체로 지급되고 있으며,

2주마다 돌아오는 아빠와의 면접일을 기다리고

신나게 놀다가 돌아가서 또 엄마랑 잘 지내며

그렇게 7살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손가락질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르나,

전처와 함께하는 나날들은 매일매일이 싸움과 고통의 연속이었기에 아이도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며 자라는 그 또한의 아픔이었다.


차라리 각자가 아이에게는 진심이기에,

각자의 영역에서 아이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쌓아나가는 게 모두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 선택의 실수였고,

내 시행착오로 인한 고통이 맞지만,

나 또한 아빠이기 이전에 실수 투성이인 한 인간으로 자라고 있는 중이기에,

내 실수를 내가 바로잡으며 성장하는 중이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믿는다.

고통을 받는 모든 이가 같은 방식의 성장과 극복을 해 내는 것은 아니나 더 높은 확률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 자란 사람이 더 크고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전쟁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기술이 개발되며,

결핍을 통해서 사람은 진보한다.


탈모의 원인이 영양 과잉이라는 연구도 있다.

영양소를 섭취하면 체 내 우월한 세포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하고 열등한 세포들을 도태시키는 작업들이 일어나는데, 영양의 과잉으로 열등한 세포까지 모두가 살아남아 여러 가지 불균형과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가설.


결핍을 양분 삼아 나는 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아이도 그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우리 사회는,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맞추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양육은 더 이상 엄마의 고유 영역이 아니며,

양육권도 더 이상 엄마의 고유 권한이 아니다.


법이 사회의 기틀을 지키는

가장 보수적인 최후의 보루라는 시점도

틀린 말은 아니나

가장 앞장서서 사회를 이끌어야 하는 것도 법이다.


입법의 영역뿐 아니라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법의 영역도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빠르게 캐치하고 해석하여

올바름과 바르지 않음을 판단해 내서

바른 시대정신을 이끌어 보여줘야 함이 아닌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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