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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02. 2016

《당신에게 몽골을》 ::아홉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아홉 번째 기록 - 익숙하지 않은 것

  

  이렇게 크고 넓은 나무집에 수세식 화장실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이 집에 사는 작은 칭군에의 엄마가 의사고, 아버지가 공무원이라는데 화장실도 없고 싱크대도 없다니 신기하다. 내가 세수하며 쓴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 일, 그 물을 낑낑거리고 밖으로 들고 가 비우면서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하는 일, 내 똥이 떨어지는 속도로 수세식 화장실의 깊이를 가늠하는 일 등이 무척 새롭다. 마치 몽골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방은 있지만 문이 없고 잠금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다 함께 사는 몽골 가족의 의식을 보여주는 한 예일까?

  오늘은 칭군에, 어치르 커플과 시내로 나갔다. 보텅(지역 이름)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 역시나 용맹한 몽골인이 많았다. 이 지역에선 몽골인 최초로 우주에 다녀 온 사람, 올림픽 복싱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술에 절은 울란바타르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노라면 조금 안타까웠다. ‘그 친구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지역기반 서비스가 마련된다면, 그들이 소매치기가 아닌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한참을 둘러보았다. 연휴 기간이다 보니 문을 거의 닫았고, 비가 많이 와서 식당 찾기가 힘들었다. 마트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문을 열어서 얼른 들어갔다.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몽골의 일반 식당은 처음으로 들렀는데 뭔가 모르게 복고풍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 80년대에 드물게 있었던 경양식 집 느낌이었고, 특히 창문에 달린 커튼이 유달리 촌스러워 보였다. 이 식당도 역시나 물 대신 어릉이 띄워진 우유차를 내주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느글느글거려서 물을 주문했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로 세 접시를 주문했다.

  우리 뒤에 있는 테이블에는 몽골 전통 의상을 입은 할아버지 몇 분이 계셨고, 다른 테이블에는 가족 단위로 밥을 먹고 있었다. 먼저 주문한 양고기 완자 한 접시가 나왔다. 동시에 뒷 테이블에 계신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우리 테이블에 있는 한 접시의 음식을 한참이나 보셨다. 그리고는 곧 다른 테이블로 발길을 돌리셨는데 거기에는 아이들이 3~4명 있었고 엄마, 아빠로 보이는 분이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거기에 다짜고짜 앉더니 아빠로 보이는 분께 몇 마디하고선 음식을 떠먹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며 뭐라 뭐라 말하시며 웃으셨고, 부지런히 밥을 드셨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할아버지를 분명 모르는 눈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으래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다른 테이블에 가서 밥을 얻어먹다니? 게다가 아는 사이도 아닌데?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면서 음식을 먹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부모님께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테이블의 음식은 손대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우리 테이블엔 세 명이 있었는데 한 접시를 나눠먹고 있는 것을 나름 배려해주신(?) 것 같았다.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또 뭔가 모르게 애잔했다. 무질서 속의 질서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이랑 놀았다. 아이들이 자기 앨범을 꺼내왔다. 어렸을 때부터 찍은 사진을 봤다. 아이들의 사진은 내 사진 속의 모습, 느낌과 비슷했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보고 배우는 것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외국인이랑은 어떻게 결혼해서 사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 평생을 함께 살아도 모르는 것 투성이일 것 같다.

  아이들이랑 노는 것이 즐겁다. 나는 외동딸로 자라나서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는데, 이렇게 북적이는 집에 있으니 외로울 틈이 없다. 명절에 시댁 눈치 안 봐도 되고, 그저 반가움을 나눌 수 있는 이런 몽골 가정이라면 난 기꺼이 대가족이 있는 집으로 시집가고 싶다. 나도 어서 맘 맞는 짝을 만나서 함께 다니고 싶다. 전 세계 방방곡곡.

  가끔씩 그리운 건 은율이와 즐거이 대화 나눴던 시간들이다. 웃고, 떠들었던 때. 그런 기억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구름 지나가듯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나를 뜨겁게 안았던 그 아이도 생각났다.

  한국에 있었을 땐 혼자일 때도 오롯이 혼자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있어야 하는 때가 필요했음에도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함께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했고, 즐거웠던 그때를 되새기곤 했는데 몽골에 와서는 그게 덜한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가볍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결을 느낄 수 있고, 들풀 속에 숨어있는 딸기를 발견할 수 있다.



친애하는 독자님께,


안녕하세요, 야생화예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해를 맞이했답니다.

늘 게으른 업로드지만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오후 11시에 찾아올게요.

웹툰 『마음의 소리』 읽으면서 한 번쯤 찾아와 주세요.(전략적 글쓰기)


저의 글이 당신에게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만 글을 마칠게요. 언제나 당신의 행복, 평안을 기원합니다.

존재해주세요, 부디


야생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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